종로3가 낙원상가 허리우드 극장이 실버 영화관으로

영화표가 2000원인 영화관이 있다. 종로에 위치한 실버 영화관이다. 57세 이상 노인들에게만 특혜가 부여되는 실버 영화관은 노인 세대들에게 벌써 명소로 자리 잡았다. 위치는 과거 허리우드 극장이 위치한 낙원상가 4층이다. 허리우드 극장이 실버 전용관으로 새롭게 개관한 것은 1년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막 돌이 지나 걸음마 단계인 실버 전용관 김은주 대표를 만나봤다.

실버 전용관의 부대시설로 설치된 추억더하기 음악관.
▲실버 전용관의 부대시설로 설치된 추억더하기 음악관.

낡고 허름한 인사동 골목 깊숙히 자리잡은 낙원상가는 옛날, 고풍스러움, 전통, 노인 등 다양한 이미지로 가득차 있었고, 실버 영화관 포스터가 붙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올랐다. 아침 10시 20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활짝 미소를 머금고, 매표소에서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오늘 상영하는 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시’이다. 최신작이다. 그래도 어르신들에겐 2000원이다.

들어가는 입구엔 ‘추억더하기’ 코너가 눈길을 끈다. 고풍스러운 DJ음반은 노인들의 학창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그곳엔 국화빵 제조기도 놓여있다. 쇼파에는 벌써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학창시절 학생처럼 미팅을 한다. 싱그럽다. 재갈재갈 여고시절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기홀에도 삼삼오오 어르신들이 거울을 보면서, 담소를 나누고, 영화 시간만 기다린다. 티켓팅이 시작하자, 어르신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모두 먼저 들어갈 기세다. 줄을 세우고, 어르신들은 마냥 좋은 듯, 함박 웃음이다. 곳곳에 붙여진 포스터며, 장식품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년층을 특히 배려한 디자인들로 되어있다.


실버 영화관은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다.
▲실버 영화관은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다.



어르신들은 모두 영화관에 들어가고, 김은주 대표를 직접 찾았다. 2009년 11월 노동청이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한 실버 영화관은 서울시가 후원하는 전용관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유일한 노인들만의 문화공간이다. 그 내면에는 김은주 대표의 독특한 실버 사랑이 있었다.

젊고 야심찬 김은주 대표는 “1년 전 실버 전용관으로 새롭게 오픈한 후, 어르신들이 좋아하고, 기뻐하고, 격려를 해주고, 열혈 팬이 되신 어떤 분은 친구들까지 데려오기도 한다”면서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어르신들을 위해서 특별히 배려된 것들이다”고 설명했다.

추억더하기 코너가 특히 그렇다. 김 대표는 “80세가 넘는 할머니들이 LP판 음악을 들으시면서, 이곳이 생겨서 화장을 하고, 거울을 보고, 여자가 됐다”면서 “여기에 올려고, 가발도 사고, 옷도 사고, 인생의 활력을 찾았다고 말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영화 관객들은 대부분 노년층들이고, 은행장 출신, 학교 교장 등 교육자 출신, 공무원 출신들도 많고, 문화를 향유하길 원하는 어르신들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이에 김 대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효를 생각한다”면서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노년층만을 위해서 고풍, 고전, 전통, 추억 등을 문화적으로 서비스하는 영화관은 없다”고 말했다.





“영화사업으로 이윤은 남느냐”고 묻자, 김 대표는 “서울시와 SK케미칼, 유한킴벌리에서 후원을 받고는 있지만, 영화표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아직은 적자다”면서 “돈을 벌려고 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당차게 말했다. SK케미칼은 전년도에 이어 올해도 후원한 기업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상영한 영화는 벤허, 미션, 맘마미아, 기적, 사랑하는 사람아, 만다라,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미워도 다시한번, 하모니, 국가대표 등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친구들과 함께 와서, 클래식도 듣고, 추억을 향수할 수 있는 쉼터 뿐만 아니라, 영화표도 비싸지 않아, 노년층들 사이에서 문화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실버 영화관의 핵심 모토는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 복지 공간이다”면서 “오늘 날 한국을 이뤄내시고 이제 은퇴하신 분들에게 영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마련하고자, 실버 영화관을 개관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실버 영화관을 실버 문화관으로 확대 운영할 목표도 가지고 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어르신들이 직접 자신들의 문화를 알리고, 소개하는 활동도 펼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서 “노동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아서, 노인 세대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여주고, 더불어 일자리 창출까지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피력했다.

영화가 끝나자, 추억더하기 코너에선 국화빵을 무료로 나눠준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어르신들은 벌써 동심속에 들어와, 얼굴 가득 기쁨이 넘친다. 노인세대들 사이에서 실버 영화관은 벌써 “그 영화관에서 만나자”고 할 정도로 명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