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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응 경총 전무 |
최근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기업인도 사면이나 가석방을 할 수 있다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최경환 부총리의 발언이 잇따라 나오면서 경제계는 물론 국민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한다. 이 평등의 원칙은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특혜를 받거나 법 집행의 사각지대에 머물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공약으로 “기업인 불관용 원칙”이 제시된 이후 오히려 기업 경영인들이 불평등한 처우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대선 전후로 몰아닥친 경제민주화 바람에 기업과 기업인들은 움추려 들 수밖에 없었다. 부총리의 지적대로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인 사면에 대해 반기업정서의 편협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경제살리기에 일조할 수 있도록 공론을 모아야 한다.
현행법상 가석방이나 사면의 요건을 갖추었는데도 불구하고 반기업정서 가 작용해 역차별을 받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된다. 유전무죄(有錢無罪)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유전중죄(有錢重罪)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모범적으로 형기를 채워가고 있는 모 기업 총수는 가석방 심사를 거쳐 가석방 될 수 있는 형기의 3분의 1을 이미 넘겼지만 가석방 될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대기업 총수라는 이유로, 법률이 규정한 요건을 충족시켰는가 보다는 정치논리와 여론논리가 가석방 여부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횡령, 배임과 같은 죄명이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하면 그 기업 경영인은 씻을 수 없는 죄인의 오명과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일생 기업을 경영해온 기업인의 경영상 판단에 형식적인 법의 잣대를 들이대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늘 정의에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위기가 상시화된 현대사회에서 무너져가는 계열사를 살리기 위해 다른 기업에 다소 손해를 입히는 경영상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현행 형법상 배임죄를 적용하려고 하면 문구상 배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되는 경우가 나올 수밖에 없다. 기업인에 대한 형법 적용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업은 경영자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새롭고 도전적인 경영상 결정을 내리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이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 책임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이 신규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결정을 책임지고 할 사람이 수감되어 있다면 기업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세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기업이 신규투자를 멈추는 것은 곧 그만큼 늘어날 수 있는 일자리가 늘어나지 못하고 없어진다는 의미이고, 해외의 경쟁업체들이 그만큼 시장을 잠식해 나가는 것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지금 우리 경기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2기 경제팀이 ‘경제살리기’를 기치로 다양한 경제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으나 기대만큼의 성과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분기 경제성장률은 1년 9개월 만에 최저인 0.5%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더욱이 2분기 실질 민간소비는 1분기보다 0.3% 줄어드는 등 세월호 영향으로 인한 내수 부진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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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기업인도 사면이나 가석방을 할 수 있다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최경환 부총리(사진 왼쪽)의 발언이 잇따라 나오면서 경제계는 물론 국민들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
이 같은 경기 침체 속에서 경제살리기의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대기업들은 그룹의 총수 부재로 인해 투자와 고용을 미루고 있다.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로 각종 과도한 규제들도 있겠지만 총수 부재에 따른 영향도 매우 크다. 과감한 투자에 따른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릴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총수가 구속 수감 등으로 부재중인 그룹들은 해외진출이나 인수‧합병을 포기하거나 투자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SK그룹의 경우 전기차 배터리 사업 등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사업이 총수의 장기간 공백으로 차질을 빚게 되었으며, 에너지저장장치 사업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CJ그룹 역시 애초 계획했던 투자액 가운데 상당부분이 집행되지 못하는 등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전문 경영인으로 하여금 임시로 공백을 메워가고는 있지만 총수의 공백으로 인해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 등 성장엔진은 완전히 멈춘 상태가 되었다.
사실 기업인들에 대한 처벌은 대부분 모호한 배임죄의 적용을 받은 경우가 많다. 심지어 배임죄 앞에서는 모든 기업인이 잠재적인 피의자라는 말까지 나온다. 연혁적으로 배임죄는 나치 치하의 강력한 전제정권하에서 처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33년 독일형법에 정비된 것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이를 수정하여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독일도 합리적인 경영자의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매우 엄격한 법적용을 한다. 같은 유럽의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물론 영미법계에서도 배임죄를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배임죄는 독일이나 일본보다 구성요건 범위가 넓어 사법부나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남용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이는 기업인의 경영판단 실패로 회사에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대부분 배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신의 혜안(慧眼)을 믿고 정면 돌파를 위한 과감한 결정을 해야 하는 기업인들에게는 마치 투자와 경영의 아킬레스건과 같게 느껴질 것이다.
세계 최초로 배임죄를 형법에 규정한 독일은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법을 적용해 배임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 더욱이 독일은 2005년 주식법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하여, 회사 업무에 관한 경영상 결정이 적절한 정보에 근거하고, 회사 이익을 위해 성실하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경영행위로서 책임을 묻지 않는다.
배임죄는 없지만 유사한 취지의 금융재산남용죄가 있는 미국 역시 1829년 판결 이후에 ‘경영판단의 원칙’을 확립하여 적용하고 있다. 회사의 경영의사결정에 참여한 경영진들이 선의로 내린 결정이라면, 그 결정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하더라도 법원이 사후적으로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독일과 미국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법치주의 국가이고 사법부가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이 나라들이 경영판단의 원칙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보다 불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인가? 2008년 경제위기 상황을 헤쳐 나온 미국은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고, 독일은 지금 전후 최대의 호황을 누리면서 유럽의 정치․경제적 맹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속히 기업인들을 기업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 방법이 가석방이 될지 사면이 될지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면 사회적 논의도 있어야겠지만, 그 시점은 더 미뤄져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우리 기업들이 급변하는 경제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재도약할 기회를 영원히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