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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정 기자 |
[미디어펜=김소정 기자]2005년 북핵 6자회담의 성과로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이후에도 북미는 성명에 포함된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로 샅바싸움을 이어갔다. 경수로 제공 시기인 북핵 폐기의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이 논쟁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이는 미국 행정부가 승인해도 의회가 반대한다면 불가능하다며 백악관은 ‘출발선을 떠날 수 없는 경주마’(nonstarter)에 비유하기도 했다.
여기에 성명 발표 직후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계좌를 동결했고, 이는 북한만을 겨냥한 것이 아닌 미 재무부의 시스템적 조치였다. 한미는 이 사건과 6자회담은 별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북한의 반발로 6자회담은 무너졌고, 2006년 10월 북한은 핵실험이라는 레드라인을 넘었다.
2018년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1년반에 걸쳐 추진된 북미 비핵화 협상을 돌이켜보면 북한과 미국의 상황은 지난 부시 행정부에서 추진한 6자회담 때와 달라진 게 없어보인다. 9.19공동성명 채택 과정에서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은 물론 핵협상 자체를 크게 반대했다.
최근까지 트럼프행정부에서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의 핵포기 의지를 믿지 않고 북한이 원하는 ‘행동 대 행동’이 아닌 ‘선 핵포기 후 보상’ 주장을 강력히 주장했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볼턴 보좌관은 북한의 비밀 핵시설 자료를 담은 노란색 봉투를 들고 나타나 결론적으로 협상 결렬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볼턴 보좌관을 전격 경질하면서 대북 협상에 있어서 협상의 틀을 바꾸려는 신호를 내비쳤다. 이 때문에 한달 뒤인 10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미 실무협상이 전격 성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북미 협상은 또다시 결렬됐고, 북한은 스스로 정한 ‘연말 시한’까지 도발을 암시하는 등 긴장 수위를 높여갔다.
최근 북한이 선제 조치로 영구 폐기하겠다고 주장했던 ‘동창리 시험장’마저 재가동에 들어갔고, 1월1일 ‘김정은 신년사’에 무슨 내용이 담길지에 따라 북한의 ICBM 시험 발사를 포함한 고강도 군사 도발도 예상되는 상황을 볼 때 지난 1년반에 걸쳐 추진된 북미 비핵화 협상은 사실상 진전된 것이 전혀 없게 됐다.
가장 먼저 북한의 핵포기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1년반동안 북한의 핵동결조차 이끌어내지 못한 북미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일어도 지나치지 않다. 앞으로 북미 협상이 다시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포기는 커녕 핵동결이라도 목표점이 되면 다행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많아졌다.
당초 핵보유국을 목표로 삼은 국가에 핵포기를 요구하면서 상응조치가 부족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또 북한은 핵 억지력을 주장하면서 핵개발을 해왔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정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정면 도전한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습통치를 하는 경제적으로나 인권적으로 열악한 국가라는 점에서 공감을 받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북한이 공개적으로 핵포기 의지를 확고하게 보인 적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이 전부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19일 평양 5.1경기장 연설 때 15만명 평양시민들 앞에서 “남북 정상은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을 확약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나타낸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지금은 흔들리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새로운 길’을 선언했다. 북한의 새로운 길은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설정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북한이 중국‧러시아의 지지를 등에 업고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려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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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미디어펜 |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공교롭게도 연말 시한을 앞두고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렸고, 이를 계기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북한의 비핵화를 다시 강조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북한이 독자적으로 핵개발에 나선 시기가 한때 중국‧러시아와 단절 위기를 겪은 1990년대 초 한‧소 국교수립과 한‧중 수교 때라는 점에서 낙관할 수 없다.
지금은 북한의 ‘새로운 길’이 무엇일지 긴장하면서도 북미 대화 재개를 대비하는 이중적인 상황이다. 미국의 주장대로 ‘창의적 해법’이 제시된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이 결렬된 배경에 대북제재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결렬 뒤 북한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발끈했지만 볼턴의 ‘선 비핵화’는 더 이상 미국정책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행정부의 핵협상 내면을 들여다보면 ‘볼턴 경질’ 전후로 협상의 큰 틀 자체가 구분되는 게 사실인 것 같다. 이번에 방한한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균형 있는 합의” “유연한 협상”을 언급한 것은 북한의 주장대로 상응조치를 병행적으로 할 의사를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북한의 경고는 미국의 상응조치에 그들이 진짜 원하는 ‘대북제재 완화’는 없기 때문에 나왔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거짓말’이 아니라면 북미 협상은 2020년 미국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재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북핵 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으려고 마음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북한 문제를 재선에 이용만 했다면 정반대의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북한 역시 어떤 행정부든 미국이 대북제재를 건드리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면 ‘핵무장’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복잡한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문재인정부는 ‘북한 편들기’로만 일관하다가 북미협상이 결렬되자 북한의 ‘대남 무시’를 샀다는 점에서 패착의 길을 걸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과거 6자회담의 수석대표였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북한 견제를 위해 전술핵이 필요하다”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합의나 판문점선언과 달리 ‘북한의 완전한 핵포기’를 명시한 9.19 공동성명을 교훈 삼아 최소한 ‘일말의 희망’에 기대는 대북정책은 끝내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3차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최대의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국제사회의 견고한 대북제재의 벽에 막혀 북미대화가 완전히 무산될 경우를 대비한 새 전략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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