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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
Black Coal, Thin Ice.
중국 영화 백일염화(白日焰火) 영어 제목이다. 중국 북부 탄광 도시가 나오니 검은 석탄(Black Coal)이고 영화에서 야외 스케이트장이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니 하얗고 얇은 얼음(Thin Ice)으로 작명했나보다. 어찌 보면 공안 강력계 형사로 나오는 남주인공 랴오판(廖凡)이 Black Coal이고 신비로운 여인 구이룬 메이((桂綸美)가 Thin Ice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다.
뉘앙스가 또 다른 중국어 제목 白日焰火는 영화 속 변두리 나이트클럽 이름이면서 막바지에 퍼붓는 폭죽 불꽃을 말해준다. 아무튼 이 2014년산 영화는 현재 중국 문화산업 실력과 과제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되어주고 있다. 한국 미디어산업 향방과도 관련해 결코 소홀히 넘겨버릴 일개 콘텐츠가 아니다. 다소 생경하겠지만 경제 비평과 산업 해설로 뻗치는 이 현대 중국영화 심벌을 정면으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영화 <백일염화>은 올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즉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디아오 이난(刁亦男)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1999년 중국 북부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조사하다가 중상을 입은 전직 형사가 5년 후 또다시 발생한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범죄 스릴러물이다.
중국에서 3월에 개봉해 괜찮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고 한국에는 이번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대되어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바다와 바람의 도시 부산에서 <백일염화>는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륙스럽다..”, “중국 영화가 이 정도 발전한 줄 몰랐다..”는 반응 일색이다. 영화비평도 거센 호평 바람이다.
여기서는 조금 색다르게 문화경제학적으로 이 영화를 들춰보고자 한다. 우선 고유가치( intrinsic value)로 접근해보자. 고유가치란 인간의 생활과 생명에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는가를 뜻한다. 19세기 영국의 다산 정약용이라고 할 경제사상가 존 러스킨은 부의 원천을 재화의 내재적인 성징에서 찾았는데 그것을 고유가치라고 보았다. 재화의 가치를 교환 가능성이나 희소성으로 매기는 것과는 달리 예술 문화성이 없고 인간의 생명과 생활을 방해하는 재화들은 무가치한 것이라는 조금은 급진적인 견해가 러스킨의 고유가치론이다.
영화 <백일염화>는 이 고유가치 측면에서 중국 스마트폰의 대명사 샤오미와 빼닮아 있다. 샤오미는 우선 애플의 아이폰, 삼성의 갤럭시폰과 같으면서도 다른 재창조성을 지녔다. 후발주자의 숙명이기도 한 카피캣(복제), 미 투(me too)를 하면서도 뭔가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을 갖는 재창조(re-creation)를 달성했다. 영화 <백일염화>도 흡사 홍콩 느와르 <무간도>나 <영웅본색> 아니면 할리우드 코언 형제 영화 <파고>를 보는 듯 서사와 비주얼이 익숙하다. 그러면서도 스타 캐스팅 아닌 채로 전형적인 현대 중국인 캐릭터를 살려 낸 재창조(re-creation)를 이끌어냈다.
중국 영화로서 세계 영화제를 제패한 추억으로는 장 이모우(張藝謨) 감독과도 자꾸 오버랩 된다. 장 감독이 27년 전 1987년 <붉은 수수밭>으로 역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했을 때가 중국 현대영화 원천이었다면 이번 영화 <백일염화>는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상당히 다르게 발전한 미디어산업 판 샤오미 수준의 재창조(re-creation)임이 분명하다. 때문에 고유가치 차원에서 <백일염화>가 상징하는 중국 문화산업, 미디어산업은 창의성에서 자유롭고도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은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자기 브랜드를 세우지 못한 채라는 분석이다.
그 다음 볼 것은 스튜디오 모델이다. 할리우드 영화 100년사가 뽑아낸 자체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한 이 스튜디오 모델은 영화 상품을 기획해내는 메이저 스튜디오 경영진의 힘, 즉 총괄 프로듀서를 핵심역량으로 삼는다. 중국의 경우 아직은 관제 스튜디오와 영화학교, 공적 파이낸스 시스템, 폐쇄 시장구조에 기대는 중소제작사 형태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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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영화 '백일염화'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대되어 연일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대륙스럽다...”, “중국 영화가 이 정도 발전한 줄 몰랐다...” 등 호응 일색이다. |
그 증거는 <백일염화> 감독 디아오이난(刁亦男)이 옹호하고 나선 영화의 상업화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제64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백일염화(白日焰火)’의 디아오이난(刁亦男) 감독은 지난 8월 신화사와 인터뷰에서 “영화의 상업화를 굳이 회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업화로 인한 일부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애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영화의 예술성과 상업성의 관계에 대해 “영화도 일종의 상품으로 시장 매매 관계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예술영화이든 상업영화이든 힘을 지닌 영화는 영화시장에서 환영 받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이나 이면을 보면 감독이 영화비즈니스 원톱 역할을 자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른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확실한 영미식 스튜디오 모델과 달리 예술이라는 저작(소유)과 산업이라는 경영이 마구 혼재된 무질서한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진정한 스튜디오 모델은 예술과 상업이 공존하기 위해 서로 계약과 거래라는 튼튼한 가교를 두고 거리를 유지하는 조화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직 예술을 대변하는 감독이 상업과 산업, 자본과 비즈니스까지 크게 개입하는 낮은 차원에 머물러 있음이다.
끝으로 인간의 향수 능력, 즉 이용할 능력을 봐야 한다. 고유가치가 있는 우수한 콘텐츠를 만들어 공급하는 동시에 그것을 사용할 능력을 생산하는 것이 문화산업, 미디어산업의 최대 미션이라는 관점이다. 영화 <백일염화>라는 고유가치가 어느 정도 높은 콘텐츠와 중국은 물론 전 세계 감상자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시장의 연결이 관건이 된다. 존 러스킨 말처럼 “생이 없으면 부가 존재하지 않는다(There is no wealth but life)”라는 메시지 그대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영화 <백일염화>는 스마트폰 샤오미와 같이 애플 아이폰, 삼성 갤럭시폰과 겨뤄 이용자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 샤오미가 그러하듯 국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글로벌 무대에서도 폭풍 다크호스로 떠오르면서 지금까지는 선전하고 있다.
대단한 성취다. 동시에 샤오미가 부딪히는 것처럼 명품이라는 아우라가 없거나 미약한 팔로우 전략의 한계에 놓여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무협 액션이라는 홍콩 영화와 차별화되고 정통 사극이라는 중국 관제 영화, 드라마류와 구별되고 할리우드 스타일과도 섞이지 않는 자신만의 특별한 컬처 코드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이 같은 도전은 당분간 아주 고통스럽게 이어질지도 모른다.
<백일염화> 감독이 상업화를 의식한 것처럼 중국의 문화산업 창작자들이 갑자기 몰아치는 자본 유입, 마케팅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면 조급한 대응으로서 할리우드 아류, 홍콩 영화 아류가 재생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한류가 있고 한류를 넘어설 아시아류 전략이 논의 중이다. 중국도 인도 영화 볼리우드처럼 내수 시장에만 머물 생각이 아니라면 중남미 마야문명, 잉카문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혼성주의 명작 콘텐츠인 텔레노벨라 모델을 눈여겨봐야 한다.
멕시코와 브라질이 양대 축을 형성하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젖어들고 스며드는 텔레노벨라 50년 역사를 주도해온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이 두 개 수레바퀴로 붙어 텔레노벨라를 능가하고 할리우드와 견줄 수 있는 아시아류 콘텐츠 연구, 개발에 즉각 나서야 하는 이유다.
스마트폰은 같이 만들고 함께 팔기 어렵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합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텔레노벨라가 그러하다. 중남미 여러 나라, 미국 내 히스패닉 등등 생각은 다르지만 하나 우산 속에서 한 가지 꿈을 잉태한다. 그것도 할리우드 코 밑에서.
우리도 하나로 묶어 크게 리드하는 동아시아 콘텐츠 브랜드를 키워보자. 중국 영화 <백일염화>가 선배 <붉은 수수밭>과 결합하고 동시에 한국 영화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명량>과 혼합할 대통로를 만들어줄 때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