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증인 채택...기업인, 민간단체 대표자 비율 급증

   
▲ 이동응 경총 전무
요즘 산업현장에서 노사가 밤을 새워 힘겹게 진행하는 노사교섭의 모습이 점점 줄어든다. 그래서 노사관계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교섭을 갑자기 중단하고 국회에 달려가서 정치권에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 결과 기업인들은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불려 나와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노조 대표는 ‘참고인’으로 나와서 기업인을 질책하는 국회의원의 호통에 맞장구친다.

국정감사 일반증인 채택 증가 추세, 특히 기업인과 민간단체 대표자의 비율이 급증

최근 몇 년간 상당수의 상임위에서 국정감사에 기업인과 민간단체 대표자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2000년 ~ 2013년 기간 중 연평균 200명이 넘는 일반증인이 채택되었으며 최근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16대, 17대 국회에서 평균 200명 미만이던 일반증인 수가 18대 국회에서는 평균 267명으로 급증하였고, 이번 19대 국회에 들어서는 300명을 넘더니 2013년에는 359명의 일반증인이 국회에 불려왔다.
특히 환노위의 일반증인 수는 2000년대 초반까지 10명 미만이었으나, 2013년 47명으로 급증하였다.

 

2013년 주요 상임위에서 채택된 기업인‧민간단체 증인 수는 177명으로 80명이었던 2011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하였고, 일반증인 대비 기업인‧민간단체 대표 비율도 2012년 70.8%를 기록한 이후 작년에는 67.3%를 기록했다.

<1> 16~ 19대 국회 국정감사 증인채택 현황

 

   

자료 : 각 연도 국정 감조사 통계자료집(국회사무처) 편집)

 

 

   
▲ 자료 : 각 상임위 2011년 ~ 2013년 국정감사 결과보고서(국정감사정보시스템, 재편집)


국정감사는 행정부 견제가 고유의 목적

국정감사 제도는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만이 운영하는 독특한 제도이다. 영미법계 국가인 미국과 영국 의회에서는 각 위원회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감사청문회’와 ‘위원회별 조사활동’, 그리고 특정 안건에 대해 정부감독권한 행사를 목적으로 설치되는 특별위원회가 존재할 뿐 우리나라처럼 기간을 정해 놓고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국정감사 제도는 없다.

대륙법계인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에도 국정 감독권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하위법령에서 대정부 질의나 조사위원회 구성, 특정사안에 대한 조사위원회 설치와 공개청문회 개최 정도가 규정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헌법 제62조에 ‘양 의원은 각각 국정에 관한 조사를 행하며, 이와 관련하여 증인의 출두 및 증언, 기록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국정감사권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이후 단기간 수차례의 헌법 전면 개정을 통해 국정전반에 대한 국정감사와 특정 사안에 대한 국정조사에 대한 규정이 삭제와 부활을 반복 하였다. 현행 헌법은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동시에 규정하는 형태로 개정이 이루어짐에 따라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현행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2조와 제3조」에도 감사와 조사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고, 그 요건도 서로 상이하지만 현재 국정감사는 실제 집행에 있어서 청문회나 국정조사에서 다루어져야 할 특정 현안들이 안건으로 선정되는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정책이 아닌 현안 위주로 국감이 운영되다보니 부실・정쟁(政爭)국감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국정감사의 ‘대상’ 측면에서 살펴보면 국정감사는 제도 도입 취지 상 국회와 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원리를 실현하는 대정부 통제 수단으로서 그 대상은 국가기관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현행법 규정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7조」는 국정감사의 대상으로 국가기관, 일부 지자체 및 공공기관 등을 열거하고 그 외의 기관은 본회의가 의결한 경우에 한해 감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즉, 국정감사는 원칙적으로 국가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만약 정부의 정책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관련 기업의 경영활동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의 파악이 필요한 경우에도 그 대상은 해당 기업을 감시・감독하는 행정기구가 원칙이고 해당 기업에 대한 감사는 극히 예외적이고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국정감사는 대규모 기업인 증인채택으로 ‘기업감사’라는 오명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노동계 등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슈화된 사업장의 대표 경영진들을 소환하여 노사합의를 종용하는 등의 실태에 대해 편향적인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역대 국정감사에서는 장기파업 사업장, 비정규직 문제, 산업재해 등이 기업인 소환의 단골 메뉴가 되어왔다. 특히 장기파업 문제의 경우 정치권은 과거 노조에게는 불법행위 근절을, 사용자에게는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방지를 요구하는 등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하여 권고안이나 중재안을 제시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경우 법원의 합법․불법 도급 판단에 관계없이 국정조사․감사 등을 통해 사용자에게 직접고용을 촉구하거나 근로자성을 인정하도록 압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완성차 업계 등 제조업에서 백화점, 콜센터 등 유통업과 서비스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산업재해 문제 또한 산재은폐‧축소, 산재인정 요구 등을 중심으로 대표이사의 직접적인 사과, 재발방지 방안 마련 요구 등이 매년 국정감사에서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하급심에서 입맛에 맞는 판결이 나오면 기업에게 상급법원에 재판받을 권리를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등 국정감사를 앞세워 정치권의 논리를 강제하려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더욱이 상당수의 상임위는 진실을 규명한다는 명분 아래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실무진이 아닌 기업의 대표를 선호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모든 개별사안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대표 경영인을 최종 결정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환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청취하기 보다는 정치적 해결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생산적‧효율적인 국감 운용 방안이 강구되어야

기업인에 대한 국정감사 출석요구는 경영진에 대한 심리적 압박과 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 대표들이 국정감사 출석 요구에 대응하느라 사업경영에 전력을 쏟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도 비효율적인 인력배치가 일어난다.

무엇보다 기업 대표가 국감 출석 당일 전체를 소모해야 하는 현행 국감제도의 현실을 감안할 때, 기업 경영상 고도의 의사 결정이 필요한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여도 즉시 대처가 어려울 우려도 있다. 또한,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국회에 소환되어 일방적인 몰아세우기식 질의를 받는 형태의 감사가 진행될 경우 기업가 정신이 훼손될 우려가 있고, 해당기업에 대한 反기업정서가 확산되거나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최근의 국정감사를 보더라도 막상 증인이 출석하면 의원이 원하는 답변을 듣기 위해 기업인을 추궁하거나, 호통치는 식으로 질의하는 경우가 많아 기업 입장 청취와 정책방향 제시라는 증인 신청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국정감사는 국가기관에 대한 질의와 일반증인에 대한 질의가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기업인 증인이 답변하는 시간은 대개 30분 미만, 짧게는 2~3분 정도에 불과하여, 해당 사안에 대한 충분한 입장 설명이 불가능하다.

실례로 2011년 정무위 국정감사 당시 모 은행의 은행장은 증인으로 채택되어 답변을 위해 23시까지 대기하였으나 총 답변시간은 10여분에 불과했다. 심지어 증인으로 출석하여 질문 한마디 받지 못하고 대기만 하다가 돌아가거나, “예/아니오” 한마디만 대답하고 돌아간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반면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해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문제점은 지속되고 있다.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에 따르면 2008년 ~ 2012년 국감에서 514개 사안에 대해 1703회, 즉 사안 당 3.31회를 반복해 질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해 한 시민단체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증인 채택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과거에는 의원별 증인출석 요구를 공개하였으나 2012년 이후부터는 대다수 위원회가 출석요구위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특히 정무위, 환노위 등 기업인을 다수 채택한 위원회는 출석요구위원을 ‘위원회’로만 표기하고 있다. 증인 선정 자체를 비공개로 진행하다보니 상임위나 당차원에서 사전 조율이 되지 않아 동일인을 같은 신문요지로 각기 다른 상임위에서 중복 증인 채택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올바른 견제와 통제라는 국정감사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정감사의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운용이 중요하다. 정부 정책에 객체일 뿐인 기업인의 참고 진술이 필요한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보조적이고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특히, 국정감사 본연의 목적과 무관하게 어느 일방의 주장을 종용하거나 개별 기업의 경영에 깊숙히 개입하기 위해 기업인들을 국정감사에 소환하는 것이 아니냐는 항간의 의혹을 이번 국감을 계기로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의 판단이나 사법기관의 판결이 진행 중이거나 이미 종결한 사안에 대해 한쪽 당사자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다른 쪽 당사자를 출석하도록 하는 것은 권력분립 차원에서도 재고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인이 피치 못해 증인으로 출석한 경우에는 정당한 예우와 함께 충분한 의견개진 기회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원하는 답변을 유도하기 위한 추궁이나 호통, 증인에게 충분한 답변이나 의견 개진의 시간을 주지 않는 일방적인 단답유도형 질의로 일관하거나 마치 죄인을 다루듯 고압적인 분위기를 조장하여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경우는 현안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기업에게는 유‧무형의 피해를 끼칠 우려가 크므로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정책목표가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지, 일회성·전시성 정책들은 없는지 등 정부정책에 대한 효율적인 국정감사로 국민 경제와 기업 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생산적인 국정감사가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 중의 하나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