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음 달부터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장사가 300곳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한진칼, 효성, 대림산업 등의 기업 주총에선 국민연금이 쟁점 사안에 대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 그 적합성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는 모습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다음 달인 3월부터 국내 상장사들이 본격적으로 주총 시즌에 돌입한다. 한국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지난 7일까지 파악한 내용을 보면 내달 24일 정기 주총을 열겠다고 밝힌 기업이 총 238개사로 이날이 ‘슈퍼 주총데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이 가운데 올해 주주총회의 경우 국민연금의 ‘입김’이 특히 강해질 것으로 보여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장사는 이미 300곳을 넘어선 상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국민연금이 전체 주식 지분의 5% 이상을 보유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가 총 313곳이라고 밝혔다. 

지난 2018년 말에만 해도 292곳 수준이던 이 수치는 약 1년 만에 21곳(7.2%) 늘어난 모습이다.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이 10% 이상인 상장사만 해도 96곳이나 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KT, 포스코, 네이버, KT&G,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9곳은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인 상태다.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회는 작년 12월 27일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의결하며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예고한바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민연금은 횡령이나 배임, 사익편취 등 기업가치가 추락했는데도 개선 의지가 없는 투자기업에 ‘주주 제안’을 통해 이사 해임과 정관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 

세칭 ‘5%룰’이 완화된 것도 국민연금의 활동에 속도를 붙이는 중요한 변수다. 5%룰이란 투자자가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대량으로 보유하게 되거나,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는 경우 5일 이내에 보유 목적 및 변동사항을 상세히 보고하고 공시하는 규정을 뜻한다.

그동안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활동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대량주식 보유를 통한 ‘경영권 영향 목적’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적극적인 주주 활동이 제한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5%룰을 완화시키는 내용의 시행령이 통과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번 달부터 배당 관련 주주활동, 단순한 의견 표명, 회사 및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응하는 해임 청구 등은 ‘경영권 영향 목적’ 활동에서 빠졌다. 여기에 해당하는 주주활동은 간단하게만 보고하거나 보고기한을 연장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은 지난 7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대한항공 등 기업 56곳에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배당이나 지배구조 개선에 관여할 수 있는 ‘일반 투자’로 변경했다. 이는 주총 시즌을 앞두고 적극적인 행보를 시작하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현시점에서 국민연금의 활동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이는 주총은 한진칼, 효성, 대림산업, 삼성물산 등이다. 일단 한진칼 주총에서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상정될 예정이다. 조 회장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경영권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에 약 3.5%의 지분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어느 쪽 편을 드느냐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효성그룹의 경우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임기가 만료돼 올해 정기 주총에서 조 회장의 연임 안건이 상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효성 지분 9.97%를 갖고 있다.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의 임기가 다음 달 만료되는 대림산업 주총에서도 이사 연임 안건이 주총에 상정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은 대림산업 2대 주주다. 

주총장에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커지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다. 대주주의 ‘횡포’를 견제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면서 결국엔 경영간섭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은 기관이라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짚으면서 “정부 입김과 정치논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명운을 결정짓는 판단을 맡기는 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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