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몰락 전통시장 부상...소비자 선택 무형의 시장질서 재편

재래시장 소상공인이 처한 어려운 상황은 근본적으로 시장의 변화 및 소비자들의 선택과 맞닿아 있다.

경제발전과 도시로의 인구 집중 등 전반적인 사회변화와 맞물려 대중의 소비 행태 또한 변천을 거듭해 왔다.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재래시장은 지역 중심지 읍면에서 상설시장 또는 3일장 5일장의 형태로 발전했다. 각지의 상설시장은 도보 접근 거리 내에 생겼고, 상인들이 3~5일에 걸쳐 도보 및 우마로 수송 가능한 더 많은 상품을 취급함에 따라 3일장 5일장 등은 더 넓은 영역을 커버하는 거점지역에 형성되었다.

이후 근대를 거쳐 현대로 접어들면서 만물을 취급하는 백화점이 등장했으며, 1970년대 이후 아파트 등 다세대 주택으로의 도시공간 변화 양상에 따라 지역밀착형 중소규모 슈퍼, 인근 식당, 소매상, 다방 등이 추가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소비자의 접근성 및 생활반경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공간적으로는 도농 간의 인구 이동이 매우 빈번해졌으며, 이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인구집중이라는 양상을 띠었다.

   
▲ 세계 최대 가구공룡 스웨덴 이케아의 국내상륙을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토종가구업체를 초토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케아 상륙은, 국내 가구업체들이 품질및 마케팅을 강화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가구 소비자들에게는 좀 더 넓은 선택권을 주기도 한다. 올해 말에 입점예정인 이케아 광명점 조감도 

소비자(일반대중)의 이동성 및 수송성은 서울올림픽을 거쳐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리면서 더욱 커졌다. 1990년대 초중반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심야시간까지 커버할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이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1990년대 후반 대형할인마트가 등장함으로서 단일 매장의 확장성에 방점을 찍었다.

이제 모든 소비자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곳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선택의 기준은 다양하다. 젊은 맞벌이 부부는 주말에 인근 대형마트에 들러 집중적으로 장을 볼 것이고, 엠티를 가는 대학생들은 먹을거리를 가장 수월하고 값싸게 구할 수 있는 곳에서 장을 볼 것이다. 도시에서 싱글로 살아가고 있는 미혼 직장인은 주중 주말 상관없이 인근 편의점이나 조그만 슈퍼에서 식료품을 간단히 구매한다.

조그만 슈퍼나 개인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소상공인들 또한 자신의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품목 대다수를 인근에서 가장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에서 구매한다.

이처럼 다양한 개인 선택 양상에 있어서, 누구나 인정하는 공통 기준이 존재한다. 바로 구매가격과 서비스의 질이다. 누구나 값싸면서 질 좋은 상품을 구매하고자 한다. 이 원칙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재화의 범위 내에서 가장 괜찮은 상품을 사고자 하는 것은 정부를 포함한 다른 누군가가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선택’ 영역이다.

   
▲ GS25 ‘버터갈릭맛팝콘’/세븐일레븐 ‘포테이토칩갈릭솔트’. 최근 대형마트에 이어 편의점이 차별화를 강조한 유통사 자체기획상품(PB)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9월 16일 업계에 따르면 주스·스낵·빙과류 등에서 많은 편의점 PB상품이 유명 브랜드를 제치고 판매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 또한 시장의 새로운 물결이다. 

이제 재래시장과 소상공인에게 눈을 돌려보자. 그들이 제공하는 상품이 소비자로부터 선택 받을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가. 엄밀히 말하자면 여러모로 부족하다. 소비자는 에누리와 흥정을 통해 구매가격의 불확실성을 감수하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된 구매가격의 선명함을 선호한다. 에누리와 흥정은, 관광지 인근 재래시장에 들러 지방특산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관광객의 입장 혹은 재래시장 매장 주인과 스스럼없이 흥정을 벌이려는 극소수 소비자의 입장에서 선택하는 옵션이다.

유통기한 및 제조출처에 대한 신뢰성 또한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택 기준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 자체의 쾌적함과 접근성(주차 편의 포함) 또한 주요기준이다. 가격을 제외하고서라도 제품 질에 대한 신뢰성 및 공간 쾌적성,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재래시장이나 소상공인을 통해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면, 소비자는 이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1990년대 이후로 거의 모든 소비자의 구매 패턴은 재래시장 및 소상공인들의 노력이나 기존 상권과는 상관없이 점진적으로 변화해 왔다. 대형마트나 일부 프랜차이즈의 행태는 이에 부합해 왔을 뿐이다.

   
▲ 누구를 위한 대형마트 휴점일인가? 재래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이루어진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재래시장도 못살리면서 대형마트도 매출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박탈한 것도 심각한 문제다. 대형마트에 공급하는 중소협력업체들은 매출감소로 종업원을 줄이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소비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조속히 폐지돼야 한다. 지난 6월 이마트의 전국 점포별 유점일 안내판. 

대형마트 영업제한에 대한 논란도 이를 보여준다.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한다고 해서 재래시장이 그에 상응한 수혜를 입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주말 하루, 장을 못 보게 하면 그 전날 보면 그만이다. 영업시간을 제한하면 서둘러 장을 보거나 급한 것만 인근 슈퍼에서 구매한다.

오히려 된서리를 맞은 것은 대형마트 입점 소상공인들과 대형마트 취업희망자 들이다. 월 수백만 원의 임대료를 고정비용으로 지출하는 입점 소상공인 입장에서 한 달에 이틀, 그것도 주말 영업을 정지하는 것은 매출의 10~15% 가까이가 감소함을 의미한다. 영업제한이 시행된 이후 거의 모든 대형마트의 인력고용계획은 잠정 보류되었거나 축소되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나 일반 소상공인들만 서민이 아니다. 정규직은 물론이고 마트에서 비정규직 캐셔라도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형마트의 입점 소상공인 또한 서민이다. 그런데 기존 소비니즈를 일정 수준으로만 유지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그만인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침묵하는 반면에, 재래시장 상인들 및 대형마트 외부 소상공인들은 서민이라고 자칭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침묵하는 절대다수와 목소리를 높이는 소수 중, 과연 누구의 편익이 우선일까. 대형마트 영업제한제도는 재래시장 및 일부 소상공인의 자연스런 몰락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심정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모순된 조치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대형마트와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공세 속에서도 활황을 거듭하고 있는 재래시장 및 소상공인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쇠퇴해가던 부산의 한 재래시장은 시장 한복판에 대기업 대형마트가 들어섬에 따라 도리어 매출이 급신장했다.

마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바로 옆 재래시장의 매장에서도 적극적으로 구매하였고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추어 시장이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전국 각지의 몇몇 재래시장은 인근 대형마트 공세에도 불구하고 보관시설 구축, 편의시설 마련, 구매쿠폰 개발, 고유아이템 구축 등 지역 정체성을 살린 공동마케팅과 문화행사 시행 등을 통해 소비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소상공인 또한 마찬가지다. 고유의 깊고도 뛰어난 맛을 지닌 대전의 제빵점은 인근 백화점이 읍소하여 최상의 조건으로 입점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맛집들과 군데군데 숨어 있는 가게 명소, 골목 후미진 곳에 있어도 동네 아주머님들 마실 장소로 각광받는 맛좋은 동네커피가게의 존재 또한 소상공인들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소비자 수요와 맞물리면서 '시장’은 변천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대형마트의 시대이지만, 향후 10~20년 뒤 대형마트는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 이미 한국만 해도 소비자들 사이에 해외직구(웹을 통한 해외직접구매)가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이케아(가구), 레드버켓(수입과자)으로 대표되는 '단일품목 저가’ 도소매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아마존과 구글은 무인기 드론과 무인카/로봇을 앞세워 상거래의 혁명을 꿈꾸고 있다. 지금의 '대형마트’ 시대가 저물고 향후 '상거래 혁명’ 시대가 온다면, 재래시장 상인이 아니라 대형마트 직원과 택배기사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거리시위에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소비자 선택과 이에 부합하려는 기업가들의 끊임없는 혁신은 시장의 변천을 지속적으로 야기한다. 이는 필경 한 시대를 접고 여는 무형의 질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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