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병역 특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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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경수 전 청와대 춘추관장, 언론학박사 |
인천 아시안게임이 2주간의 열전을 뒤로 하고 10월 4일 막을 내렸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처럼 큰 대회는 물론 작은 대회라도 경기가 모두 끝나면 언론에서는 그 대회의 성과나 운영 등에 대해 평가를 내리게 마련이며 그 평가에 따라 종종 대회운영의 성과가 좌우되기도 한다.
이번 아시안 게임도 역시 폐막되자마자 언론의 평가가 잇따랐다. 한국대표팀이 79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비록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본의 추격을 뿌리치고 2위 자리를 무난히 수성했다는 평가, 하지만 대회 운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회 평가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지난 대회들과 다른 점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그에 따른 병역특례에 대한 것이 유독 많았다는 점이다. 이제 아시안 게임 금메달, 더 나아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대한 병역특례를 다시 생각해야 되지 않느냐는 보도가 주를 이루었다. SBS와 중앙일보 등 기존 언론은 물론 많은 인터넷 신문들도 병역특례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급기야 국정감사 현장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야구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은 과연 힘든 일이었을까?
아시안 게임 금메달 수상자의 병역특례에 대한 논란은 야구 대표 팀이 촉발시켰다. 야구 금메달을 두고 이렇게 논란이 일어난 이유는 한국은 참가만 하면 우승할 실력인데 그렇게 딴 금메달이 과연 진짜 금메달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제기지만 그 기저에는 금메달을 병역특례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일부 야구 대표선수들의 얄팍함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깔려있었다.
야구 대표 팀의 유중일 감독이 “금메달까지 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라며 값진 금메달임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한 발언이었지만 이 발언은 국민들에게 오히려 감독이 항변할 정도로 야구 금메달이 힘들지 않았구나라는 반증으로 다가왔다. 그럼 한국 야구 대표 팀의 금메달은 유중일 감독 말처럼 힘든 금메달이었을까?
아시안게임은 물론 모든 운동경기에서 쉬운 금메달은 없다. 그러나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야구 금메달은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야구는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인기 있는 스포츠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그다지 인기 있는 종목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현재 올림픽에서 조차도 야구는 정식종목에서 빠져있다.
이는 야구를 좋아하는 국가가 그만큼 한정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아시아에서도 리그를 구성해 야구를 정기적으로 하는 나라는 프로리그가 있는 한국, 일본, 대만과 아마리그가 있는 중국 4개 나라에 불과하다. 나머지 아시아 국가에서는 야구를 한다 하더라도 아마추어 동호인 야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이번 아시안 게임의 야구 종목에 참가한 국가는 모두 8개국이지만 우승을 다툴 수 있는 참가국은 단 4개국이며 그 가운데서도 야구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중국을 제외하면 겨우 3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는 야구종목에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만으로도 동메달을 확보한 셈이며 한나라만 이기면 은메달을, 두 나라를 이기면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번 인천 아시안 게임은 개최국의 이점이 있는데다 참여하는 다른 국가의 수준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떨어졌기 때문에 우승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우리는 아시안 게임 참여를 위해 프로리그까지 중단하고 선수를 선발하였지만, 일본은 프로선수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사회인 야구팀에서 선수들을 선발했고, 대만도 프로리그를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국리그의 일부선수와 시즌이 끝난 미국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선발했다.
따라서 한국 야구 대표 팀은 우승을 못하면 망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수준이 떨어지는 아시안게임 야구에 왜 한국은 프로리그를 중단하면서 까지 참여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걸린 병역특례라는 혜택 때문이다.
금메달을 대하는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의 자세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프로 야구선수들은 인천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뽑히는 순간 바로 병역면제라는 말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대표팀 선발을 로또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어떤 선수는 부상을 숨기고 대표팀에 뽑혀 제대로 경기에 임하지도 못했다. 결국 대표팀 선발을 두고 각 포지션별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제대로 뽑힌 것이냐, 각 팀별로 골고루 병역혜택을 누리기 위한 안배 차원 아니냐는 둥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대표팀에 선발되기 위해 치열한 눈치작전까지 벌여야 했던 이번 아시안게임과는 달리 작년에 열렸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은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한국 야구계는 WBC 대표팀 구성을 위한 선수 차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WBC에서 메달을 따도 병역혜택이 주어지지 않자 군대에 가지 않은 선수들도 대회 참가를 꺼렸기 때문이다. 혜택도 없는데 괜히 가서 부상만 당하면 자기 손해라는 인식이다.
각 프로 야구팀 감독들도 자기 팀 선수들이 대표팀에 너무 많이 뽑힐까봐 전전긍긍했다는 후문이다. 야구 대표팀 구성을 둘러싼 이 두 가지 사례는 이제 한국에서 야구 국가대표선수라는 자격은 국가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나, 국위 선양과는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이제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은 병역특혜가 없으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럼 이런 풍토가 과연 야구에만 만연되었을까?
야구대표팀의 경우는 특수한 경우일까?
운동선수의 금메달과 이에 따른 병역특례가 문제가 되는 분야는 야구종목 뿐만이 아니다. 올해 초 열렸던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는 안현수 아니 빅토르 안의 금메달을 보며 국내 쇼트트랙계의 파벌에 대해 개탄한 적이 있다. 그런데 빅토르 안의 러시아 귀화 과정 역시 병역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빅토르 안을 구타한 것으로 알려졌던 선배의 구타 이유는 '너는 금메달을 따서 군 면제도 받았으니 이번에는 내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양보하라'는 것이었음이 그 후 한 쇼트트랙선수에 의해 알려졌다. 안현수 선수는 지금까지 쇼트트랙 분야의 암묵적 약속 -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을 따 병역특례를 받고 포상금까지 챙겼으면 다른 선후배에게 양보 -을 깨고 국가대표를 더 하고자 하다가 한국 쇼트트랙계에서 배척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안 선수도 이러한 쇼트트랙계의 묵인으로 인해 초기에는 혜택을 봤을 수도 있지만 이처럼 병역특례가 대표선수의 가장 큰 유인이라는 것은 한국 스포츠계 전반에 걸쳐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이쯤 되면 병역특례가 아니고 병역 기피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역브로커는 대한체육회라는 일부 네티즌의 농담 역시 허투루 흘려보낼 것이 아니다.
병역특례 근거는 아직도 유효한가?
현재 병역법 제33조와 병역법시행령 68조에 의해 올림픽대회 3위 이상 입상자나 아시아경기대회 1위 입상자에게는 병역특례 혜택이 주워진다. 병역특례 해당자들은 훈련소에서 4 주의 군사 훈련을 마치고 2년 10개월 동안 자신의 종목에서 선수나 지도자 등에 종사하면 병역을 마친 것으로 간주된다.
병역특례의 근거는 헌법 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으며 특히 스포츠는 국가대표로서의 국위선양과 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든다. 그러면 이 기준은 과연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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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안 게임 금메달 수상자의 병역특례에 대한 논란은 야구 대표 팀이 촉발시켰다.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스포츠도 전쟁처럼 무조건 이기기만을 바랬던 우리의 인식, 그래서 승리를 위한 유인책으로 병역특례를 주던 그런 인식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만일 병역특례를 단번에 없앨 수가 없다면 대체복무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
먼저 국위선양이라는 것은 그 기준이 모호하여 일부 인기 종목은 여론에 따라 병역특례의 기준이 바뀔 때도 있었고 (한국 축구 2002년 월드컵 4위로 병역특례 시행),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처럼 쉽게 우승하면서 그것이 무슨 국위선양이냐는 비아냥을 들을 때도 있다. 또한 국위선양을 병역특례의 기준으로 하면 한류로 전세계에 한국의 이미지를 고양시킨 아이돌 가수나 배우 등 한류스타들에게도 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가장 유명한 한류스타중 하나인 싸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군대를 두 번이나 다녀와야 했다).
두 번째 기준은 개인희생이다. 국위선양을 위해 활동하느라 개인을 희생했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 논리는 아마추어 스포츠나 비인기 종목에서는 합당할 수 있다. 육상이나 핸드볼 등 여건이 어려운 종목의 선수들은 힘든 가운데서도 국가대표로서 오직 메달하나 바라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야구나 농구, 축구처럼 프로스포츠가 발달한 종목들은 자기 직업인 스포츠로 연봉을 몇 억 원씩 받고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까지 거두면 해외로 스카우트까지 되어 몸값마저 올라가는데 이들에게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과연 개인희생인가. 아니다. 이들에게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출세를 위한 지름길이지 개인희생이 아니다. /곽경수 전청와대춘추관장,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강사(언론학박사)
외국에서 인기 높은 아이돌 그룹이 국위선양한다고 해서 개인희생을 거론하는 사람이 없듯이 프로선수가 국가대표가 되어 경기에 나서는 것은 개인과 국가가 윈윈하는 것이지 결코 선수 일방의 개인적 희생이라고 할 수 없다.
병역특례의 또 다른 존재 이유로는 군입대로 선수의 경기력이 쇠퇴해 선수로서의 생명이 줄어드는 것을 막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운동선수는 전성기가 짧아 입대로 인한 경력 단절의 영향이 훨씬 크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상무나 경찰청처럼 군에서도 지속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또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현역선수로서의 활동기간이 예전보다 길어졌다.
따라서 예전에는 입대와 함께 운동선수로서의 생활을 접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군에 다녀오는 것을 새로운 동기부여의 기회로 삼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프로야구나 축구 선수들에게서 이러한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병역특례조항 없애든지 대체복무로
한국의 병역특례제도는 한 때 미국에서도 힐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서 추신수 선수가 병역특례를 받자 미국 뉴저지에 있는 한 신문이 “Something's wrong with deal"이라는 기사를 통해 추선수의 병역특례에 대해 힐난했다.
즉, 3만 명의 주한 미국 장병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즉각 투입되어 수많은 사상자가 나올 텐데 한국인인 추신수는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병역 혜택을 받아 메이저리그에서 돈과 명예, 그리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것이라는 취지의 기사다.
미국과 한국은 병역제도나 국가대표 제도 등 여러 가지가 다르기 때문에 이 신문이 한국의 상황을 100% 이해하고 기사를 썼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기사를 주목하는 것은 이 기사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특권을 없애자는 시각 때문이다. 수많은 경쟁을 이기고 국가대표선수가 됐다는 것은 그 자체가 영광이다. 선수들은 가슴에 태극기를 붙이고 경기를 하는 내내 가슴 벅찬 경험을 할 것이다. 그것 하나면 족하리라. 국가대표라는 자부심보다 더 큰 영광은 없다. 거기에 병역특례니 하는 조건이 붙으면 오히려 이 영광이 묻힐 수가 있다.
병역특례 제도는 이제 그 수명이 다해 간다는 생각이다. 특히 프로 스포츠가 있는 종목에서는 더욱 그렇다. 남북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스포츠도 전쟁처럼 무조건 이기기만을 바랬던 우리의 인식, 그래서 승리를 위한 유인책으로 병역특례를 주던 그런 인식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만일 병역특례를 단번에 없앨 수가 없다면 대체복무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현재보다 범위를 더 넓혀 국가대표를 지낸 선수들은 현역에서 은퇴한 뒤 시골에 있는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에서 코치로 3~4년 동안 대체 복무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일부에서 우려하던 선수로서의 경력단절도 해결되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사회체육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