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더멘탈(fundamental)이 튼튼하다는 말의 추억...-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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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
최경환 장관이 한국경제설명회 차 뉴욕을 방문하여 10월 9일 한국 언론들의 뉴욕특파원 간담회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한국경제 펀더멘털이 신흥국들과는 다르다면서 우리나라가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최근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신흥국에서 달러가 빠져나간다고 하면서 그것을 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17년전인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당시 정부가 했던 말이 겹쳐서 떠오른다. 당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거쳐 북으로 올라와 필리핀, 대만으로 외환위기가 번지던 때였는데, 대한민국 경제 당국자들은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는 이야기를 합창했다. 마치 태풍이 올라오는데 뿌리가 튼튼하니 나무가 뿌리뽑힐 일은 없다는 듯이...
그러나 그 당시 상황을 되돌이켜 보면, 우선 외환 위기 이전에도 5조를 투입한 한보그룹이 부도나고, 삼미그룹이 부도나고, 진로, 삼립식품, 대농, 해태, 한신공영 등이 어려운 상태에 빠졌고, 기아자동차도 부도 상태였다. 문제는 이들 기업들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해외에서 이자율이 낮은 단기 자금을 빌려와서 장기로 대부해주었다는 데 있었다.
큰 기업들이 부도가 나서 물렸을 뿐 아니라, 해외로부터 대출연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은행권 전체가 연쇄적으로 쓰러질 판이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설상가상으로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했던 사람 중의 하나인 DJ는 기아자동차는 꼭 살리겠다고 압력을 가했고, 인수합병 등 구조조정 신속처리를 지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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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일 미국 워싱턴 IMF에서 열린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 참석,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
여기에 1980년대 3저 호황 이후 벌어진 잔치판이 한국경제의 경쟁우위를 많이 상실하게 하였다. 한국경제는 자원이 빈약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공무역형 수출을 하는데, 기술력 상승 속도를 앞질러 임금이 높이 올라 경쟁력이 날로 하락하였다. 노동자의 인권을 신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던 노동조합들이 어느덧 역으로 경쟁력 상실의 주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노동유연성이 필수적이었는데, 비대해진 노조는 이를 막았다.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노동법개정안은 1996년 12월 26일 새벽에 날치기로 통과되었으나, 조직노동자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노동계의 강력한 저항과 야당의 반대 등 후폭풍으로 좌초되었다(결국 외환위기 후 IMF의 경제신탁통치 하에 타율적으로 원래의 날치기 개정안대로 노동법을 다시 개정해야 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부관료들은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 당시 한국인들이 정부 관료들의 그 말을 믿고 안도하는 사이, 외국인들이 돈을 빼서 빠져나갔고, 외환이 부족해졌다. 우리는 당시 '은행부문'의 부실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펀더멘탈은 언제 튼튼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무리 경기가 어려워도 회사는 상품이 팔리면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실현 위기(realization crisis)가 도래된다. 이것은 소비자를 발견하지 못해도,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아도, 그것도 아니면 소비자가 지갑을 닫아도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실현위기는 소비자의 뜻대로 생산을 맞추어나갈 때만 극복될 수 있다. 그 경우에만 펀더멘탈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는 한, 현금 시재도 바닥이 날 수 있고, 공장의 기계도 머지 않아 고철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경우에는 펀더멘탈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작금 삼성전자의 분기 실적이 4조원대로 반토막이 난 어닝쇼크(earning shock)를 준 것, 그것이 샤오미 등 중국의 저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일어난 것이라는 점 등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또한 그동안 중국 특수(特需)를 누렸던 제조업들이 최근 중국내 경쟁 회사의 경쟁력에 밀려 대중국 수출에 애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무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것들은 모두 실현위기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기업에 자본을 투자한 주식 투자자들도 어려워지고, 이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증권시장에서 손을 빼면 증권시장은 침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거기에 운영자금 기타를 대출해준 은행들도 동반해서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 여파가 작지 않다.
외환 부족은 또한 이와 별개로도, 외국인들이 자기네가 불안하다고 여기던가, 아니면 자국에서 더 좋은 투자기회를 발견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잠시 피난한다는 생각으로 돈을 빼던가 해서 외환수요가 급증할 때 일어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실물부문과 관계없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여진이 채 가셔지지 않은 상태에서 양적완화가 막대하게 이루어졌고, 그 돈이 신흥국들로 흘러갔다. 그러나 그 신흥국들이 최근 과도한 투자로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미국에서 양적 완화의 감축 즉 테이퍼링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신흥국들로부터 돈을 빼어 미국으로 가져가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돈을 빼갈지 여부는 우리의 결정에 달린 것이 아니다. 물론 돈을 빼간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있는 실물 공장 설비를 뜯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들이 달러를 바꾸어서 가지고 나가면 일시적으로 달러부족 사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은행의 경우도 해외 자금을 꾸어 온 경우 그들이 만기연장을 해주지 않으면, 현금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국내에서의 개별 은행에 대한 뱅크런(Bank Run)은 중앙은행 차원에서 막는다고 하더라도, 국제적 단위에서는 우리나라가 1997년에 겪었듯이 IMF 등의 협조에 의해서만 막을 수 있다. 이것이 외환위기의 본질이다. 이런 일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다.
이때 은행의 위험한 대출 관리가 있으면 은행이 위기에 취약해지게 된다. 외국 자금을 빌려온 기간 내에서 운용하지 않고 그 범위를 벗어나서 운용하게 되면, 외국 은행의 대출연장 중단에 의해서 언제든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위기 상황을 가정해서 스트레스 테스트 등을 하며, 위기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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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다르기념관에서 열린 IMF/WB 연차총회에 참석,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
이러한 점을 감안해볼 때,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및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최경환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현 상황에 대한 판단을 제대로 하고 일치되고 일관된 대응을 하고 있는가가 주목된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미국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경환 장관의 낙관적 전망과는 달리, 이주열 총재는 “한미 간 금리차가 축소되면 투자 자금이 유출될 수 있다”며, “지금의 소비나 투자 부진에는 구조적인 영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구조개선 정책을 병행하지 않으면 (부진에서 벗어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경제의 최고 사령탑 격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판단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과연 일관되게 효과적인 위기관리를 해낼 수 있을까가 염려된다.
<선순환의 길을 찾는 것이 진정 가장 좋은 펀더멘탈 론(論)이다>
실물이건 금융이건 선순환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대한 기업도, 거대한 은행도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말은 옛 이야기다. 휴대폰 세계1위 기업 노키아가 스마트폰 등장과 더불어 불과 몇 년만에 순식간에 무너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떠한 재력을 쌓아놓아도 실현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펀더멘탈이다.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면, 그 실상을 정확하게 공유하고, 위기 의식을 공유하며, 위기 극복에 나서야 한다. 지금 신흥국에서의 자금탈출 현상, 삼성전자의 어닝 쇼크, 대중 수출의 애로 등 심상찮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듯하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냉철한 상황인식과 대응이 필요한데, 괜찮다고만 연발하다가 갑자기 위기다! 라고 하면 놀람을 갑자기 자극하여 과도한 쏠림현상을 유발하여 피해를 오히려 더 키울 수 있다.
'펜의 힘'이란 글이 생각난다! 2차대전 때 영국이 계속 이긴다고 보도하는데 실은 독일에 계속 밀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보도지침'을 어기고 오히려 진상을 보도하자, 영국국민들 사이에 애국주의 분위기가 일어 더 잘 싸우고 마침내 히틀러의 독일을 물리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계기가 바로 진상보도였다는 이야기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진상 파악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선순환의 길을 찾는 것이 위기극복방법이다. 과거 1997 외환위기 시 외환확보 방법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첫째는 구조조정의 이름 하에 회사를 팔고 자산을 팔고 직원들을 해고하며 외환을 확보하는 방법이었고, 둘째는 수출을 통해 부족한 외환을 구해오는 방법이었다. 수출 28억달러를 예상했던 DJ정권 신흥 관료들은 전자의 방법을 택했고, 수출 500억 달러를 주장했던 전경련(회장 김우중)은 후자를 주장했다.
대우는 해체되었고 기획해체설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김우중의 처방이 옳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거국적인 금모으기가 20억 달러의 효과를 거둔 반면, 그해 416억 달러 수출로 막대한 외환을 확보하였기에,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환율이 1800원대로 두 배 가량 오른 것이 오히려 수출에는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선순환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가운데서 오는 단순한(?) 자금 이탈 등의 위기는 통화스와핑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2008년 미국의 비우량고객 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 관련 금융위기가 왔을 때 이명박 대통령이 그 여파를 차단하고자 미국 부시대통령과 통화 스와핑을 합의해냈다.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기업들에 대해서 분석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자금경색에는 그리 놀라지 않았기도 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비교적 안전하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최경환 장관은 국내용 발언으로 들리는 펀더멘탈 이야기를 하기보다, 수출확대전망에 대해서, 또 그것을 위한 규제철폐 전략에 대해서, 또 대한민국이 사업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나아가 최장관은 은행권 스트레스테스트 등으로 위기대응력을 강화시키고, 또 알려야 할 진상이 있다면 그 진상을 알리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분발을 하자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소비자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자고 촉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종운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