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왕국을 개국한 초대 왕 A는 재위 22년, 나라의 기초를 다지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의 길을 텄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2대 왕 B는 2년간 왕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이웃 이민족 국가를 토벌한답시고 군사를 일으켰다가 이 전란을 틈탄 부하 C의 반란으로 살해 되었습니다. 북 왕국의 제1 왕조가 끝났습니다.
제2왕조는 반란을 일으킨 C 왕에 의해 시작되어 재위 24년간 이어 졌습니다. C왕이 죽자 아들 D에게 왕위가 이어졌습니다. D왕도 재위 2년째 되는 해에 그의 심복이었던 전차부대 사령관 E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2왕조도 달랑 2대로 막을 내렸습니다.
제3왕조는 전차부대 사령관 E 가 왕위에 올랐으나 왕의 충실한 부하 F가 쿠데타를 이르켰습니다.
재위 7일만에 이 왕조 역시 끝장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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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모습을 감춘 지 41일만에 재등장했다. 조선중앙방송은 14일 김정은 위원장이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사진=YTN 캡쳐 |
무슨 나라가 이 모양이냐고 생각을 하는게 당연합니다. 이 나라가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되었다는 유대 민족이 기원전 931년에 남 왕국과 북 왕국으로 분렬된 후 북쪽에 세워진 이스라엘 왕국의 건국사 일부입니다.
남북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온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유대민족의 남북 분단사가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유대 민족의 역사서에 기록된 그들의 분단사는 한마디로 진흙탕 속에서의 개싸움을 연상케 합니다.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은 2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후 60세에 별세했습니다.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은 당연히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궁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영토의 북쪽에 정착한 여러 부족의 장로들이 그를 찾아와 새 왕의 등극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한 12개 부족중 북 쪽 10개 부족의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직접 북쪽 부족의 대표들을 만나 담판을 지어야 겠다고 작심했습니다. 심복 부하들을 데리고 북쪽 부족의 중심지 셰겜으로 향했습니다.
모처럼 다음 왕위에 오를 전왕의 아드님이 왕림했는데도 북쪽 부족 대표들의 반응이 썰렁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예상치 못했던 이런 사태에 놀랐습니다. 북측 부족들의 대표는 적대국 이집트에 망명해 있다가 솔로몬 왕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귀국한 여로보암이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들을 제시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중세(重稅)와 과도한 노동을 요구해 우리를 고통속에서 살도록 했다.그로 인해 궁정은 번영했지만 우리 백성들의 생활은 곤궁에 빠져 있었다. 우리에게 부과했던 가혹한 노동과 무거운 세금을 걷어내 달라. 그렇게만 해 주면 우리는 당신을 새로운 왕으로 인정하고 충성을 다하겠다.”
르호보암은 난처해 했습니다. 그에게는 국가를 다스리기 위하 블루 프린트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솔로몬 왕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위에 오를수 있다는 생각만 해 왔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그는 “생각해 보자. 나에게 3일간의 여유를 달라. 3일뒤에 다시 만나자.”고 응답했습니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르호보암은 부왕 솔로몬 왕을 보필해 온 옛 충신들이 한결같이 회유책을 건의했으나 그들의 충고를 뿌리치고 자신의 동년배 아첨꾼들의 건의를 받아 들였습니다. “왕이여. 처음이 중요합니다. 시작부터 약하게 나오면 어리석은 백성들의 요구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들은 새 임금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민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요. ‘내 새끼 손가락은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 나의 아버지가 너희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면 나는 너희의 어깨위에 더 큰 바위 덩어리를 얹어 주겠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매질로 다스렸다면 나는 대들보로 너희를 치겠다.’고 큰소리로 외치라”고 했습니다.
3일뒤에 르호보암은 젊은 옛 친구들이 가르쳐 준대로 거드름을 한껏 피웠습니다. 결국 나라가 두 쪼각으로 갈라 섰습니다.
북쪽 왕국은 이스라엘, 남쪽 나라는 유다 라는 두 나라로 분열되어 서로 싸우고 죽이는 원수지간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의 편에 선 부족은 유다와 베냐민 두 부족이었고, 북 왕국은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한 10개부족의 연합체 형태의 왕국으로 출범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210년간 국가의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210년간 북 왕국은 9개의 서로 다른 왕조가 혈투를 거듭하면서 권력을 나눠 가졌고 19명의 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들 왕중에 8명이 암살 또는 자살로 수명을 마쳤습니다. 여로보암 왕으로 부터 나답, 바아샤, 에라, 짐리, 옴리 등의 순으로 왕위가 이어져 갔습니다.
북 왕국은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의 침략에 의해 멸망했고 주민은 포로가 되어 전승국 앗시리아로 끌려 갔습니다. 북 왕국을 구성한 10부족의 이름은 이 난을 겪은 다음 단 한번도 역사의 무대위에 등장한 일이 없습니다. 영윈한 유민(Diaspora)이 그들의 운명이었습니다.
한반도 북쪽의 김씨 왕국에 탈이 났습니다. 백두 혈족(白頭血族)이란 허구의 카리스마를 붙들고 권력의 정점을 독점해 온 김정은의 신변에 이상 기류가 흐르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지난 4일 북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가 이끈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방한했을 때, 그들을 테우고 온 비행기는 김정은최고 지존의 전용기라 했습니다.
그리고 황병서의 앞뒤에는 선글라스를 낀 양복차림의 건장한 남성들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황병서가 우리 측 인사들과 회담하고 인천공항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의 옆을 지켰습니다.
북한 소식 전문매체 뉴포커스의 장진성 대표는 “황병서에 대한 경호는 북한의 수령절대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거나 북한에서 수령절대주의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고 풀이했습니다.
사실 권력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북한에서는 수령인 김정은 이외에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호위를 받을수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수령 절대주의가 약화되고 김정은의 리더십에 탈이 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의 황병서가 군복을 입고 온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김정은이 건재하다면, 감히 누가 이 절대권력자의 전용기를 타고 해외나들이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합니다.
김정은 의 모습이 노동당 창건일인 10월10일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적 37일째입니다. 미국의 CNN방송은 김정은의 ‘정신 질환설’까지 보도했습니다. 장진성 대표는 "권력의 정점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김정은이 외삼촌 장성택의 숙청까지 겪었기 떼문에 공황 장애를 이르킬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김정은이 수술의 실패로 뇌사상태에 빠져 있는것으로 보인다며 완전회복까지는 상당한 시간 (길게는 1년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습니다. 불과 1개월 여 전까지만 해도 두 다리를 절면서 그 육중한 체구를 이끌고 전방 시찰을 하고 다니던 그의 모습이 아직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의 와병이 좌골 신경통에서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정신적 스트레스에 기인 된 것인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의 완전 회북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게 일치된 의견인듯 합니다. 절대 권력을 에워싼 세력들이 병상에 있는 1인 통치자의 쾌유를 기한없이 기다려 준다는 전제는 너무나 순진한 발상입니다. 권력의 속성이 그런 기다림을 용납하지 않으니까요. 권력 찬탈을 에워싼 내투(內鬪)가 한층 치열해 질지 모릅니다. 그 불길이 남쪽에 까지 번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 정부는 김정은 이후 (포스트 김정은)에 대비한 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양준용 재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