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손혜정 기자]4.15 총선을 30여 일 앞두고 '국민개헌발안권'을 담은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안'이 여야 국회의원 148명의 서명·동의를 받아 지난 6일 발의됐다.
'국민개헌발안권'이란 국민 100만 명 이상이 청원하면 개헌을 발의할 수 있게 하자는 것. 현재 헌법상 개헌 발의권은 대통령과 국회에만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국가 정체성을 담은 헌법이 100만 명의 청원만 있으면 그 어떤 조항과 국가 정체성도 바꾸자는 시도가 가능하게 됨을 의미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일부 개헌론자들 사이에서조차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가운데, 개헌안이 오는 27일 본회의를 통과하게 될 지 정치권에서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이 개헌안 '제안이유'에는 "국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광장민주주의'를 '투표민주주의'로 전환"하겠다고 제시돼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개헌발의 남발 우려와 이로 인한 소모적 국회 운영 ▲광장민주주의 폐해 ▲'정권 심판론' 희석 등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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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일 민주당 김무성 통합당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은 국민발안개헌추진위원회./사진=연합뉴스 |
우선 발의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미디어펜'과의 통화에서 "21대 국회에서 전면 개헌의 마중물을 놓기 위해 국민발안 원포인트 개헌안을 추진하게 됐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21대 국회의 개헌 작업에 대한 선행 단계라는 것이다.
또한 이 관계자는 '국민발안'에 대해 "국회 논의를 거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되는 것이므로 '포퓰리즘' 우려는 너무 지나친 것"이라며 "모든 논의가 국회 중심으로 이뤄저야 하기 때문에 (국민발안권이라는) 통로를 열어놓음으로써 국회 논의를 좀 더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헌안을 추진한 김무성 통합당 의원도 9일 페이스북을 통해 개헌발의권의 분산 자체가 '권력의 나눔'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미래에 제일 필요한 것은 '제왕적 권력의 분산'"이라며 권력분산형 개헌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국민발안의 남발과 국회의 소모적 운영을 크게 우려하는 눈치다. 민생법 처리 지연은 물론, 동원 가능한 이해집단의 영구적인 이권 나눠먹기가 횡행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100만 명의 숫자는 전국 조직과 각종 시민단체를 산하로 아우르는 세력과 진영이 언제든 동원 가능한 규모다. 가령 이번 개헌안을 추진한 '국민발안개헌연대' 구성원 중 하나인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합)의 총 조합원수는 지난해 4월을 기준, 101만 4845명으로 집계된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9일 국회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 중 이 대목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100만명 이상은) 전교조, 민노총만이 동원 가능하다. 어찌 이용될지 뻔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선 김무성 의원이 입장문을 통해 100만 서명의 발의만으로 개헌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한 바 있다. 그는 "국회에서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고, 그 후에 국민투표에서 다수의 찬성을 얻는 등 두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며 전교조 민노총 등 세력에 의한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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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방안개헌안 제안 이유 일부와 주요 내용./사진=국회 의안정보시스템 |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헌법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해관계가 달린 집단의 동원에 의해 흔들린다는 것을 뜻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는 "광장민주주의보다 더 크고 더 위험한 민주주의 위기에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국민 참여를 독려하고 직접민주주의를 활성화하려는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국민이 헌법이 아닌 입법에 참여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원법과 국회법을 손질하여 입법청원의 요건을 더 완화하고 국회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검토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국민발안권 개헌안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뜻이다.
김영환 통합당 최고위원도 "명백히 대의제, 의회정치에 대한 부정"이라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내용이고 특정한 정치세력에 의해서 헌법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야권에서는 "개헌 때문에 심판론이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통합당도 김무성 의원 등 22명이 헌법개정안에 동참했지만 '판데믹' 현상이 우려되는 코로나19 사태와 총선을 앞두고서는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 원내대표는 "(4.15 총선은) 좌파독재를 심판하는 선거"라며 "개헌 이슈 때문에 문재인 정권 심판론이 희석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개헌은 21대 국회 원구성이 이뤄진 후에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여 21대 국회의 개헌 추진에 찬동의 뜻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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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통합당 대표는 지난 1월 2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총선 압승으로 '개헌'을 이루겠다고 발언했다./사진=미래통합당 |
스스로 '분권형 개헌론자'라고 자처하는 한 변호사는 "(4.15 총선은)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는 총선"이라며 "지금의 개헌발의는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시기상조'임을 강조했다.
한편, 박종운 자유공화당 사무총장은 '미디어펜'에 이번 국민개헌발안권은 사회주의 세력의 전술 변경이라고도 주장했다.
박 사무총장은 "국민개헌발안권 개헌은 2018년 사회주의 개헌 실패('자유' 삭제 시도) 때문에 전술을 바꿔서 촛불선동정치로 개헌을 하기 위해 사회주의 2단계 혁명론의 맥락에서 국민개헌발안권 개헌, 사회주의개헌이라는 2단계 개헌 전략전술을 실행하고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헌 시도 자체가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연방제 개헌'과의 거래용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지난 6일 발의된 '원포인트 개헌안'은 강창일 민주당 의원과 김무성 통합당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들과 2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민발안개헌연대'의 주도로 발의됐다. 개헌연대에는 민노총과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한민국헌정회 등 시민단체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날 발의된 개헌안에 대해 대통령은 20일 이상 공고해야 하며, 공고일 60일 이내 재적 의원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의결되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즉 개헌안이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의결되고 4.15 총선에서 국민투표로 과반수가 찬성할 경우 헌법이 개정되는 것이다.
[미디어펜=손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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