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임새 모르는 골퍼는 자격 없어...칭찬 없는 라운드는 사막과 같다

방민준의 골프탐험(27)- 추임새가 없는 골프는 사막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오래 전 호남지역에 출장을 갔다가 저녁에 소리를 감상할 기회를 가진 적이 있다. 식사 전에 판소리 하시는 분과 고수로 구성된 2인조가 일행 앞에서 30여 분간 공연을 펼쳤는데 일행은 모두 소리의 깊고 오묘한 세계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우리가 너무 우리 것을 모르고 살고 있구나!’하는 자탄과 함께.

그때 공연 직전 판소리 하시는 분의 말이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다.
“여러분 소리를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분야에 문외한인 일행은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한참 있자니 그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가 무대에 서도 봐 줄 사람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가수라 해도 청중 없이 혼자서 노래 부르면 흥이 날 수 없습니다.”
 

무언가 알 것 같았다.
“소리를 감상하러 오신 여러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좋은 소리를 감상하려면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뭔지 아시겠습니까?”
그제야 감이 왔다. 일제히 대답했다.
 

   
▲ 추임새는 상대방의 좋은 플레이에 대한 예의 있는 칭찬이자 격려이면서 나도 그런 좋은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다짐의 표시이기도 하다. 자연히 동반자 모두에게 기분 좋은 엔돌핀을 전염시켜 상생의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추임새요!”
“맞습니다. 여러분이 좋은 소리를 들으려면 소리꾼이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좋은 소리를 내려면 좋은 추임새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때 소리하시는 분의 ‘추임새론’은 이후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어떤 분야에서든 적용되는 진리로 빛을 발하고 있다.

추임새란 판소리를 할 때 중간 중간에 곁들이는 탄성(嘆聲)으로 주로 장단을 짚는 고수(鼓手)나 청중이 창의 군데군데에서 소리의 끝부분에 소리꾼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좋다!’ ‘좋지!’ ‘으이!’ ‘얼씨구!’ ‘흥!’ 등의 조흥사(助興詞)나 감탄사(感嘆詞)를 넣어 주는 것을 말한다. 이 탄성은 소리에서 다음 구절을 유발하는 데에도 큰 구실을 하는데 양악인 오페라에서의 관현악반주와 같은 효과를 갖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추임새의 어원은 ‘추어주다’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추어주다’는 ‘정도 이상으로 칭찬해주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소리에서의 추임새는 의례적인 것을 벗어나 심미적 황홀경에 빠져 저도 모르게 발하는 것으로 소리꾼과 청중이 일체가 되어 소리에 몰입하게 해준다고 한다.

골프에서도 추임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골프에서의 추임새는 무엇일까.
바로 골퍼들이 동반자에게 던지는 ‘굿 샷!’ ‘나이스 샷!’ ‘원더풀 샷!’ ‘뷰티블 샷!’ 같은 탄성이다. ‘나이스 버디!’ ‘나이스 펏!’ ‘나이스 보기!’ ‘나이스 파!’ 같은 말도 추임새다. 샷 직후의 탄성이 아니더라도 잔디밭을 걸으면서 동반자에게 넌지시 건네는 “정말 멋진 드라이브샷이었습니다!” “기막힌 어프로치네요!” “지난번에 비해 완전히 달라지셨네요. 엄청 연습하셨나봐요.”와 같은 칭찬도 좋은 라운드를 위한 추임새다. 진심에서 우러난 박수 역시 훌륭한 추임새다.

골프는 자신의 공을 자신의 클럽으로 스스로 플레이하는 자립독행의 게임이긴 분명하지만 이래저래 동반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동반자의 말 한마디는 물론 잠깐 스쳐지나가는 표정에도 영향을 받는 게 골프다.
 

소리꾼과 고수 그리고 청중이 마음에서 우러난 추임새로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 멋진 공연이 이뤄지듯 골프에서도 동반자들끼리 서로 소리꾼과 고수가 되고 마음이 주고받는 청중이 되어 동반자의 플레이에 적절한 추임새를 넣어줄 때 상승효과를 발하며 한층 수준 높은 라운드를 펼칠 수 있다.

추임새가 없는 라운딩 모습을 떠올려 보자. 서로 상대방을 꺾겠다고 절치부심하며 나온 동반자라면 좀처럼 입에서 ‘굿 샷’이니 ‘나이스 샷’이니 하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입을 굳게 다물고 ‘좀 쳤군. 그러나 내가 치는 걸 봐, 코를 납작하게 해줄 테니까.’하는 얼굴로 샷을 준비한다.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리는 분위기에선 진정한 추임새가 나올 수 없다. 상대방의 실수에 그제야 굳게 다문 입을 열고 즐거워하는 상황에선 결코 좋은 라운드를 기대할 수 없다. 추임새는 상대방의 좋은 플레이에 대한 예의 있는 칭찬이자 격려이면서 나도 그런 좋은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다짐의 표시이기도 하다. 자연히 동반자 모두에게 기분 좋은 엔돌핀을 전염시켜 상생의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추임새을 할 줄 모르는 골퍼는 골프를 칠 자격이 없다. 추임새 없는 라운드는 사막과 다를 바 없다.

추임새가 소리나 골프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추임새란 소통의 윤활유 역할을 함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감사의 표현이기도 한다. 상대방의 말에 적절한 맞장구를 쳐주고 스포츠선수들의 혼신을 다한 플레이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것, 의인에게 열광을 보내는 것, 소리 없이 음지에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찾아 격려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추임새가 아닐까.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