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이벤트 없고 남이 만들고 남이 노는 '짝퉁' 인공축제 재앙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축제가 점차 한탕주의 이벤트로 흐르고 있다. 그것도 만드는 축제, 인조나 인공 관제 바람이 대부분이다. 좋은 콘텐츠를 내놓아 사람들에게 선사한다는 본질을 잊고 더 많이 튀기고 부풀려 세를 과시하려고만 한다.

콘텐츠라는 문화와 예술 창작에 비해 마케팅과 광고, 홍보가 너무 비대해지는 불균형이요 쏠림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나쁜 쏠림이 결국 환풍구 위를 객석으로 오인하게 하고 애꿎은 시민들이 올라 타 쏠리게끔 조장했다.

때문에 판고 테크노밸리 축제 참사마저 결코 우발적인 대형사고 하나로 줄이고 끌어내릴 순 없다. 한 때 해프닝처럼 봉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면 이 또한 한 때 한 철 이벤트로 생각하고 이벤트로 습관화하는 악습이 되고 말 터이다.
 

이제 대한민국 축제는 나쁜 이벤트, 악성 이벤트를 몰아내는 자정 노력부터 정성을 다해 기울여야 한다. 그러려면 이벤트 말뜻부터 헤쳐봐야 하겠다. 이벤트(event)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ē’~(~에서 밖으로)와 ‘venīre’(오다)의 뜻을 가진 ‘eventus'에서 유래하였다.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국어사전인 『보통학교 조선어사전』(1930)에서 이벤트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였는데, 그 의미를 ‘① 사건, 사변, ② 결과, 성과, ③ 운동경기의 종목이나 경기순서 중의 한 게임 또는 한 시합’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로 이벤트는 하나의 외국어로 일부 사전에 기록이 되어 왔고 2000년판 두산동아사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벤트가 ① 여러 경기로 짜인 스포츠경기에서 각각의 경기를 이르는 말, ② 불특정 사람들을 모아 놓고 개최하는 잔치, 사건, 행사를 의미하는 외래어로 정의하고 있다.
 

바로 여기 나온 ‘결과’라거나 ‘불특정 다수’, ‘밖으로’ 라는 키워드들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벤트라는 개념 자체가 과정보다는 결과, 인연과 연고 없는 다중, 내실보다는 외형에 무게 중심이 몰려 있음 간파해야 한다. 이벤트를 해야겠다고 맘먹는 순간 무슨 마성적인 힘처럼 화려한 껍데기만 내세운 행사가 떠오르게 된다는 게 문제다.

그러다 보니 행사관계자들도 모두 이벤트라는 마녀에 홀린 듯 일회성 행사장에 몽유병 환자처럼 허우적거리며 쏠려 가곤 한다. 때문에 순도 높은 창작을 중시하는 높은 클래스 문화예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벤트를 배척해왔다. 건축가 명인 승효상도 “이벤트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 비가 내리는 20일 오전 '환풍구 붕괴 추락사고'가 발생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앞 환풍구에 인근 한 상인이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국화 화분을 가져다 놓았다. 지난 17일 걸그룹 포미닛 공연 도중 이 환풍구 위에 올라가 공연을 보던 27명이 환풍구 덮개가 무너지며 20여m 아래로 추락해 1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너무 대놓고 문화와 예술 창작 콘텐츠를 팔고 띄우는 이벤트 퍼포먼스를 좋아할 예술가나 장인은 없을 터이다. 최소한의 이벤트 성격을 가미한다고 약속한다 해도 애드벌룬 같이 부풀어야 하는 이벤트 자체 속성상 점입가경이 될 수밖에 없으니 정작 주인공인 예술가와 장인들 눈살을 찌푸리게 마련이다.
 

이런 이벤트는 마치 다스려야 하는 인공 조미료와 같다. 축제와 같은 대중문화 공연 현장에서 빠질 수 없는 통속적 구경거리이자 뻥튀기 같은 과장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라면 스프에서 나트륨을 통제해 저염 음식으로 정성을 들이듯 뭔가 공들여 노력해야 한다. 이번 판교 참사와 같이 축제산업 범주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벤트 행사들도 잘 못 배합된 유해한 조리법에 다름 아니다.
 

우선 체크해야할 것은 영혼 없는 짝퉁 축제 남발과 범람이다. 한국에서 축제는 모두 몇 개나 될까? 지역축제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집계가 555개라고 하지만 서울, 지역 다 합치고 특정 테마를 지닌 축제까지 모두 헤아리면 2000개쯤 된다는 추산이다. 각종 영화제만 100개를 넘는다고 한다. 지자체끼리 과열 경쟁에 돌입한 비엔날레는 또 어떤가? 1년 52주 내내 축제를 만날 수 있고 겹치고 유사한 축제 투성이, 축제 과잉 시대임이 분명하다.
 

정말 일상생활에서 느끼기에도 축제는 미어터진다. 겨울방학 강원도 어디에서 산천어 축제를 해서 인기를 얻으니 곧장 인근 지역에서 빙어축제를 하고 정월대보름 불놀이가 재밌다 하니 방방곡곡 곳곳에 불을 놓다 큰 사고까지 유발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한국에는 축제 자체가 너무 많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과연 한국에 생겨난 2000개 축제가 포화 상태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당혹스러운 분포가 있다. 프랑스에는 10만개 축제가 있으니까. 동네마다 골목마다 살롱과 같은 모임마다 축제를 해오는 전통이 두텁다 보니 작고 아담한 규모까지 포함해 10만개나 되는 축제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국 축제 수 2000개 vs 프랑스 축제 수 10만개. 이 답안지 비교는 무엇을 일깨워 주고 있는가? 축제와 행사, 이벤트로 고통스러운 한국, 2014년 이 가을에 잠시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축제수가 옛 마을 옛 길 수만큼이나 많은 것은 생활 속에 노동과 놀이가 자연스럽게 섞여 황금비율 분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놀이 없는 노동, 여유 없는 일중독이 극심하기에 온갖 인위적인 이벤트 축제 없이는 배설도 분출도 못 하기 때문이다. 더 단순화하면 프랑스는 내가 일하고 내가 노는데 한국 사람들은 내가 일하고 남이 노는 걸 그저 관람하고 구경한다. 문화선진국에선 ‘내’가 출연하고, 우리는 ‘남’이 내 놀이에 등장하고 출연해 모든 걸 리드하는 격이다. 그러니 객석이 모자라게 되고 죽음의 구멍 환풍구마저 객석으로 급조 변환되고 말았다.
 

결국 이번 판교 참사는 대한민국 축제산업이 최고 리스크로서 안전과 책임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까발려주었다. 더 나아가 축제산업이 2000개나 되는 한국에서 이벤트 없는 이벤트 프리(free) 축제가 겨우 1백 개도 못 될 것임을 잘 고발해주었다.

남이 만들고 남이 놀고 정부, 지자체, 단체가 찍어 누르듯 가공해 만드는 이벤트 중심 축제는 2000개도 3000개도 죄다 필요 없다. 그보다는 프랑스처럼 작고 아담하고 자연스러운 이벤트 프리 축제 10만개를 국민들은 원한다. 노동에 지친 직장인, 학습에 지친 학생들이 원하는 건 바로 이러한 진짜 축제들이다.
 

돌아보면 우리에게도 10만개 축제가 있었다. 이벤트 없는 진짜 흥겨운 우리 것 축제. 지금은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가을 운동회. 시골 학교든 도시 학교든 가을 운동회가 있을 때는 축사하고 연예인 부르는 이벤트도 필요 없었다. 
 

인공으로 만들어진 축제 2000개보다 더 값진 10만개 가을 운동회, 봄 소풍을 이벤트 없이 온전하게 되살려 놓는 일에 착수해야 할 때다. 놀지도 못하고 여유도 잃어버려 짝퉁 축제가 판을 치게 된 지금, 우리가 돌봐야 할 진짜 문화융성 과업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