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구조조정 시장 훼손...금융위 잘못된 관행 바로 잡아야

1. 기업구조조정의 의미

   
▲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
기업구조조정(corporate restructuring)은 기업의 기존 사업구조나 조직구조의 기능 또는 효율을 보다 효과적으로 높이고자 실시하는 구조개혁작업을 말한다. 구조조정은 기업유지의 정신을 구현하는 제도로서, 거시경제의 면에서 국가경제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크므로 어느 국가나 관심을 가지고 법제도를 마련하여 이를 장려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다양한 기업구조조정제도를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각 단계별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2014. 9. 3.에는 금융위원회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상시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구조개선지원과’를 신설했다.

구조개선지원과는 구조조정 전담부서로서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통합 수행하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기업구조조정제도는 제도적으로는 아주 잘 정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체로 협약은 단체와 개인, 또는 단체 상호 간에 맺는 협정을 말한다. 자율협약이라는 것은 협약에 이르게 된 과정이 법률의 규정이나 공권력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협정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협정에 나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협정은 협의하여 결정한다는 뜻이다. 결정하여 문서화하면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계약이 된다.

계약이라는 것은 상호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정당성이 있어야 가치가 있다. 이것은 합의 조건이 공정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계약이 반드시 공정한 것은 아니다. 어떠한 계약이든 대가가 따르게 마련인데, 대가를 제공하는 사람과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 똑같이 공평한 계약은 그리 흔하지 않다.

물론 법적으로 흠 없이 체결된 것처럼 보이는 계약을 무효로 돌리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정성 위반이라는 것을 무기로 公序良俗과 사회질서 위반, 불공정한 거래행위(unconscionability), 사기·착오·강박과 같은 의사표시의 하자(duress, misrepresentation)나 무능력(capacity) 등을 근거로 계약의 무효를 주장할 수도 있다.
 

   
▲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을 포함한 동부제철 대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100대 1로 감자해 경영권을 빼앗고, 추후 우선매수청구권도 차단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율협약이라는 명분하에 양의 탈을 쓴 강압협약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러나 계약서에 서명된 후에 이를 주장하여 바로잡는다는 것은 거의 받아들이기 어렵다. 법적 안정성이 깨어지기 때문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가장 약한 단계라고 알려져 있고, 따라서 당사자의 자치가 가장 활성화될 수 있는 자율협약단계에서 공정한 계약은 필수적인데, 실제로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대두된 이슈를 중심으로 몇 가지 발표자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2. 구조조정 强度에 따른 구조조정 수단의 분류

(1) 자율협약

자율협약(자율협약에 의한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로 흑자 도산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동성 지원이 필요한 기업과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협약을 맺어 실시하는 구조조정으로, 경영난에 빠진 기업과 동 기업에 자금을 대출해 준 금융회사들(이하 채권단) 간에 체결하는 경영지원 협약을 말한다.

경영난에 빠진 회사가 채권단에 자율협약 체결을 요청할 경우 채권단은 기업에 대한 실태조사 등을 통해 기업의 회생 가능성 등을 진단한 후 지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통상은 채권액이 500억 원 미만인 경우에 시행). 협약체결 후 채권단은 통상 기존 부채에 대해 일괄적인 만기연장, 추가 자금 대출 등의 지원을 실시하는 한편, 해당 기업에게 자산 매각, 인력감축, 대주주 사재 출연 등의 재무구조 개선 조치들을 취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자율협약은 채권단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금융회사들이 동의할 경우에만 진행된다. 또한 법적 강제성이 없이 채권단과 기업 간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채권단과 기업이 결정할 수 있는 폭이 여타 구조조정 방식에 비해 크고 대외신인도의 훼손 정도도 상대적으로 적다. 이러한 점에서 관련 법률에 의해 시행되는 워크아웃, 법정관리 같은 기업회생절차와 구분되며, 기업 구조조정 방식 중 강도가 낮은 단계에 해당된다.

일반적인 자율협약의 경우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이나 채권은행협의회 운영협약을 준용하여 가장 많은 채권을 보유한 은행(주채권은행)이 주도하여 여신 익스포져가 높은 은행 및 금융기관으로 채권단을 구성하며, 일반 회사채 투자자, 일반 기관투자자, 외국계은행, 제2금융권은 자율협약대상 채권단에서 제외된다.

(2)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에 따라 진행하는 법적 절차로서 자율협약에 비해 한 단계 높은 강도의 구조조정 방식을 말한다. 워크아웃은 법원의 관여없이 이해당사자 간의 자율적인 합의에 의한 사적 정리방식의 채무재조정절차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위크아웃은 이해당사자 간의 자율적인 채무조정절차로 알려져 있으나, 채권자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기관채권자’ 주도로 채무재조정 및 기업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사실상은 정부(금융당국) 주도형의 기업개선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금융기관들로 구성된 채권단이 중심이 되어 기업 구조조정이 실시된다는 점 등에서는 자율협약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자율협약의 경우 채권단과 해당 기업 간 자율적인 협의에 의해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채권단에는 은행들이 주로 참여하는 반면, 워크아웃의 경우 해당 기업은 채권단의 요구에 무조건 응해야 하며, 채권단의 75% 이상이 동의하게 되면 개시되므로 자율협약에 비해서 진행 속도가 다소 빠른 편이다.

워크아웃에 참여할 수 있는 채권자의 범위는 금융채권자로 한정되며, 채권금융기관 중 해당기업에 여신규모가 가장 큰 채권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선정하여, 주채권은행을 주축으로 워크아웃을 진행한다. 채권금융기관은 매우 광범위한데, 예를 들면 은행, 투자매매업자, 신탁업자, 보험회사, 여신전문금융회사, 상호저축은행, 신용보증기금, 정리금융기관, 무역보험공사, 농협은행, 기타 법률에 따라 금융업무를 행하는 기관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를 포함한다.

(3)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 이른바 「통합도산법」에 의거하여 진행되는 가장 강도가 높은 기업 구조조정 방식이다.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법원이 기업의 회생 또는 파산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법정관리를 시행할 경우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 또는 기존 경영자 관리인 제도 (DIP: Debtor in Possession) 따라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유지가 가능하기 때문에 일부 부실기업들은 구조조정 수단으로서 워크아웃 대신 법정관리를 선택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법정관리의 경우는 해당기업에 대한 채권을 보유한 모든 채권자가 법정관리의 적용을 받는다. 이 점은 워크아웃의 경우 대상 채권을 금융기관이 보유한 채권으로 한정되는 것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결국 법정관리의 경우는 회사채 투자자들까지도 모두 손실분담이 가해지는 가장 impact가 큰 구조조정수단이다.

3. 최근 자율협약운영의 문제점

(1) 사적, 자율적 협약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자율협약

기업구조조정 절차 또는 기업회생절차는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기업과 채권단이 서로 합의하에 재무구조개선약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관하여는 별도로 법률에서 다룰 필요가 없으므로 이에 관한 법률규정은 없다. 자율협약→위크아웃→법정관리의 순으로 강도가 높다.

자율협약은 본래 말 그대로 사적, 자율적 협약을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자율협약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에 따른 워크아웃이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기업회생절차와는 달리 법률적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채권단과 기업이 구조조정계획, 유동성 지원 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자율적인 협약을 맺고, 기업은 이 협약에 따라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경영정상화를 추진한다는 것이 그 목표이다. 그런데 후술하는 바와 같이 요즈음 체결되는 자율협약은 채권단이 우월적 지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실사 자산가치 평가나 감자비율을 자의적으로 결정함으로써 채무자인 구조조정대상 기업을 부당하게 압박하여 경영권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세부 과정을 보면, 자율협약 이행시 채무기업의 자산가치를 평가한 후 미회수채권액을 출자로 전환한 후 대규모 감자를 실시하여 기존 대주주의 지분을 대폭 소각한 후 정상화를 위한 자금지원을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출자전환액이 많든 적든 간에 부실책임이 기존 경영자에게 부과되어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출자전환규모가 적은 기업의 경우에는 채권단이 작은 규모의 부실채권액에도 불구하고 채권자라는 지위를 남용하여 경영권을 박탈한다는 소위 “권한남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채무자측에서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사업정상화를 통해 조기에 신규지원자금과 기존차입금 상환을 제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채권단이 일방적으로 이러한 자구계획안을 거부하고,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발생된 비용에 대한 책임을 채권단이 최소화하기 위하여 그 책임을 대주주에게 대폭 전가하면서,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경영의 계속성 유지나 우선매수권, 증자참여 등 경영정상화에 대한 참여기회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자율적 협약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강압적 협약이라고 하여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율협약의 성격과 방향에 대한 세밀한 고찰과 개선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 자율적 협약의 목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율협약은 채권단과 기업이 구조조정계획, 유동성 지원 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자율적인 협약을 맺고, 기업은 이 협약에 따라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경영정상화를 추진한다는 것이 그 목표이다. 여기서 채권단은 자금지원 등을 통해 기업의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을 해소시키고 성장 동력을 공급하는 것이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럼에도 동부그룹의 자율협약의 경우 대주주가 100대 1의 감자를 당하는 등 대규모 감자를 실시하여 구주를 소각하고, STX, STX 조선해양, STX중공업 등의 예에서 보듯이 경영자를 축출하며, 채권의 출자전환으로 대량의 신주를 발행하여 채권자들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결코 정상적인 자율협약의 모습이 아니다.

더구나 주채권단이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등 국가기관이라고 하므로, 이들 국가기관이 자율협약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경영정상화보다는 채권회수를 우선시하는 경우, 국책은행의 사명인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고 국가경제활성화에 기여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특히 경영자를 축출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 모양은 자칫 경영권 강탈로 비쳐질 수 있다. 채권단이 채무자의 경제적 궁핍을 이용한 우월적 지위남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기존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대전제하에 경영정상화를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자율협약인데, 위와 같은 강압적 방식은 자율협약의 근본 목적에 어긋난다. 이는 협약의 대전제를 위반하는 것이다.

(3) 기존 경영권의 박탈 문제와 법정관리의 역선택

법정관리의 경우 2007년 통합도산법 제정 당시 수많은 논란 끝에 DIP (기존경영자관리인 유지제도, Debtor in Possession) 제도가 도입되어 기존의 경영자가 법정관리 중에도 계속 관리인으로 임명되어 효율적인 기업회생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법정관리보다 더 약한 절차인 워크아웃, 더 나아가 자율협약에서 기존의 경영자에 대한 경영권 보장규정이 없어,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기업의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경영권이 박탈될 수 있게 되었다.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에서 채권단이 강압적으로 경영진을 축출하면 어떠한 결과가 발생할 것인가? 기존의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강도가 가장 강한 법정관리에 들어 간다면 오히려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기업들에 차라리 부실을 키워 법정관리로 가는 것이 낫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된다.

영리한 경영자는 회사를 파산시켜 개인재산을 챙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래 김기명, 강호중의 보고서에서 보듯이 법정관리는 일반 회사채 소유자에게까지 손실분담을 강요하는 최악의 구조조정단이다. 자율협약의 경우, 주채권은행이 주도하며, 제2금융권 등은 채권단에서 제외되며, 워크아웃의 경우에는 제2금융권도 채권단에 포함된다.

법정관리의 경우는 해당기업에 대한 채권을 보유한 모든 채권자가 법정관리의 적용을 받는다. 법정관리의 경우는 회사채 투자자들까지도 모두 손실분담이 가해지는 가장 impact가 큰 구조조정 수단이다. 자율협약단계임에도 경영권을 박탈하면 자연스럽게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4) DIP외에 대안은 있는가

보도에 따르면, 「채권단은 동부제철 구조조정 원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김준기 회장은 동부제철에 대한 경영권을 잃게 된다는 동부 측의 반발에 대해서도 “자율협약이라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워크아웃’에 해당하는 만큼, 오너의 경영권 상실은 자율협약을 신청할 당시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고 한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동부제철 채권금융기관인 산업은행 등의 경영정상화 방안이 형평성을 무시한데다 기업에 지나친 희생을 강요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강원도 향토기업인 동부에만 ‘이상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어 지역적 차별이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을 포함한 동부제철 대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100대 1로 감자해 경영권을 빼앗고, 추후 우선매수청구권도 차단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또 STX, 금호의 경우 우발채무가 2조원을 넘은 반면 동부는 230억원에 불과한데도 우선매수청구권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크게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STX, 금호에는 채권단이 2조원 이상 출자전환을 한 반면 동부의 경우 출자전환 규모가 530억원에 불과한데도 경영권을 박탈하려는 것에 대해 재계도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것은 기존 경영자의 경영권 박탈여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2006년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에서 「기존 경영자 관리인 제도」(DIP: Debtor in Possession)를 도입하였다. 이는 기업관리자 선임 대상을 ‘채무자의 대표’(채무기업 대표이사)로 한정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동법 제74조).

그런데 이 제도에 대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음이 그동안 학계와 업계에서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부실경영을 이끈 경영자가 또다시 경영권을 맡을 수 있다 보니 기업정상화를 통한 채무 변제보다는 경영권 유지 또는 경영진 사익을 도모하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으며, 재무구조 개선작업으로 회생이 가능함에도 기업이 워크아웃을 거부하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한다.

또한 이로써 대주주의 자본 빼돌리기가 횡행한다고 한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되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따르면 DIP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54건에 불과하였지만 도입후인 2006년부터는 기업의 회생절차 신청이 한해 800여건 이상으로 급증하고, 서울중앙지법에 계속 중 (2012.11)인 법인회생절차사건 186건 중 166건이 기존 법인대표자를 관리인으로 선임 (89.2%)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DIP제도의 맹점은 2014년 4월 세월호의 침몰에 따른 속칭 ‘유병언 사건’을 계기로 확실하게 露呈되었으며, 이에 대하여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DIP제도에 대한 긍정적 입장도 많다. 기존 경영진을 능가하는 전문경영능력을 갖춘 관리인 집단이 확립되지 못하고 있고, 부실경영의 누적으로 도산상태라는 이유로 경영진을 배척한다면 어느 기업도 쉽게 회생절차에 나가기 어려우며, 현행법상으로도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법원이 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등(동법 제74조 제2항) 제어장치가 있는 점에 비추어 이 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기에는 적절한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기존 경영자는 기업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것이 채무 변제 이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기업의 가치를 증진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므로, 기존 경영자에게 일차적인 기업회생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오히려 제3자가 들어오면 직원들이 동요할 수 있고 실질경영참모진들이 관리인한테 끌려가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채권자 동의 시 담보권 비율을 조정하는 등 방안을 강구할 수 있지만 DIP제도의 완전한 개정은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견해가 많다.

어떤 방식을 취하든 문제는 있다. 제도에 대한 보완과 끊임없는 개선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기존의 경영자가 심각한 불법과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기업의 부실이 급격한 대외적인 환경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라고 판단될 경우, 한번 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5) 채권단을 위한 변명

채권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보기로 한다.
첫째, 기업측에서는 감기에 걸렸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중환자나 다름없으므로,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형식적으로는 자율협약을 합의하였으나, 실제로는 워크아웃을 하여야 할 상태 또는 파산으로 가야할 상태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에 차이가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사자는 당연히 아전인수격으로 주장할 것이니 누구의 진단이 맞는지는 금방 알 수 없다.
 

둘째, 주채권단이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등은 국가기관과 다름 없는 공사이며, 공사의 방만한 운영이 목하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어 채권회수에 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 공기업이 부실해지고, 그 경우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가며 공기업평가에도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임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소유의 기관인 채권단은 민간채권단과는 달리 회사의 회생보다는 가능한 단기간에 채권회수에 전력을 다하여야만 감사원의 감사나 공기업 평가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강력한 채권회수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구조조정의 본래의 목적이나 정책금융기관의 본래의 역할을 망각하고 눈앞의 실적에만 급급하게 된다.

셋째, 채무자는 감자비율이 너무 커서 부당하다고 주장하나 구조조정의 어느 단계에서든지 감자는 불가피한 것이다. 감자가 없으면 신규자금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출자전환된 주식은 채무가 아니고 회사의 자본이 되는데, 정관에 규정된 자본에는 한도가 있으므로, 기존의 자본을 감소하지 않고는 신규자본이 들어올 수 없다. 다만, 감자비율이 문제될 수 있으나, 경영에 책임이 있는 대주주의 자본을 대폭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넷째, 산업은행 등은 부실기업에 대한 채권을 출자전환하고 그 기업을 사실상 인수하여 경영까지 시도함으로써 invest bank로서의 know-how를 축적할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다섯째, 기존 경영진을 퇴진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나, 자율협약이라는 것이 본래 합의하기에 따라 법정관리보다 더 강력한 구조조정도 할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위법도 불법도 아니어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감자로 대주주가 바뀐 상황에서 경영권을 가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할 것이다.

위의 채권자의 입장이라는 것은 필자가 생각해 본 것이고, 채권단의 공식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채권단의 입장은 매우 그럴 듯하지만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첫째, 채권단이 단기간 내의 채권회수에 집중하여 기업구조조정 본래의 목적을 망각할 위험이 크다.

둘째, 감자비율을 채권단이 자의적으로 결정함으로써 과거 다른 기업의 사례와 크게 차이가 날 경우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대주주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셋째, 경영권을 사실상 박탈함으로써 자율협약보다는 DIP를 기대하면 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할 동기가 생긴다.

채권단은 자율협약을 신청하든 법정관리를 신청하든 결과는 같을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기업은 무조건 법정관리를 신청하여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도박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여타의 구조조정에 비하여 가장 많은 채권자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적인 충격이 가장 크다. 채권단이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4. 결 어

최근 구조조정 절차(회생절차)의 세계적 흐름은 기존의 ‘경영자 징벌적 관점’에서 벗어나 진정한 기업회생이라는 경제적 관점으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자율적이고 선제적이어야 할 ‘자율협약’ 단계에서 아직도 징벌적 관점에 머무르고 있는 현행 우리나라의 자율협약제도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최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상시화 논쟁이 한창인 가운데, 기촉법과 도산법 개선논의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자율협약에 근거한 구조조정 절차 개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자율협약은 법적 강제성이 없이 채권단과 기업 간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채권단과 기업이 결정할 수 있는 폭이 여타 구조조정 방식에 비해 크고 대외신인도의 훼손 정도도 상대적으로 적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반대로 자율협약이라는 순진무구한 ‘羊의 탈’ 뒤에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보다 더욱 혹독하게 구조조정이 숨어 있는 사례가 흔히 나타난다는 것은 문제이다. 자율협약이 강압 협약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기업유지의 정신을 구현하는 제도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선제적으로 부실한 부분을 정리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여 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여기서 시장 자율에 의한 구조조정의 활성화가 긴요하다. 다만, 기업구조조정을 둘러싼 무임승차, 부실기업 퇴출지연 및 부실기업 오너의 책임회피 등 도덕적 해이현상에 대하여는 명확한 처리기준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손실분담의 명확한 처리기준 제시, 부실기업의 신속한 정리,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소재의 명확화 등의 조치가 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제도에 의한 구조조정보다는 자율협약과 같은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을 활성화하는 것, 그리고 정부의 통제를 받는 정부주도형보다는 시장이 살아있는 민간주도형이 더욱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되므로 민간주도형 구조조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이나 정책금융공사 등 국가기관이 채권자로 관여할 경우 민간주도형 구조조정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들 국가기관이 불가피하게 관여하게 된 경우에도 기업구조조정의 본질과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단기간 내의 채권회수에 급급하기보다는 기업회생을 위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여 채무자인 기업의 최대한의 동의하에 채권자와 채무자의 상생을 목표로 하는 구조조정절차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감독기관인 금융위원회가 최소한 감자비율결정과 경영권보장 등과 같은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하여 기업이 스스로 자율협약을 신청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하여야 하며, 기존에 잘못된 관행은 이번 기회에 시급하게 시정하여야 한다.

끝으로, 동부제철의 경우 지금이라도 법원으로 달려가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어설픈 자율협약 아래 경영권도 뺏기고 새로운 관리인 아래 현경영진과 대주주에 대한 각종 민, 형사책임을 묻는 소송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에서 개최한 '바람직한 기업구조조정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주제 발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