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진 변호사 "채권단, 우월적 지위 이용한 권한 남용 도 넘어"

1. 글 머리에

최준선 교수님의 발제 내용은 현행 자율협약(자율협약에 의한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시행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시의 적절하게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 동부그룹 구조조정이 채권단과 자율협약 형태로 진행되면서 주채권단이 부당하게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박탈한다는 논란이 대하여, 구조조정은 기업유지 정신을 구현하는 제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님의 발제 내용에 대하여 전적으로 공감하며, 이에 덧붙여 몇 가지 의견을 개진하고자 합니다.

2. 자율협약 : 자율적 협약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공정 협약

자율협약은 채무자와 채권단간의 사적, 자율적 합의를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채권단과 기업이 구조조정계획, 유동성 지원 등에 대한 포괄적이고 자율적인 협약을 맺고, 기업은 이 협약에 따라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경영정상화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외관상 친시장적 구조조정방식으로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율협약 신청서 양식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기업이 채권금융기관협의회 또는 주채권은행에 채권금융기관 공동관리 절차에 의한 경영정상화 추진을 요청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위임인인 기업과 수임인의 채권단 간에 위임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율협약이 시장구조에서 사적자치원칙을 구현하기 위하여 자율협약단계에서부터 공정한 계약이 필수적이고, 채권단이 자율협약 이행시 위임의 취지 및 본질에 입각하여야 하는데, 실제로 주채권단이 국책은행인 경우 채권자와 기업과의 관계는 단순 채권 채무자관계가 아니라 국가기관과 민간기업의 관계가 형성되어 최근의 STX, 금호그룹 등 사례에서 보듯이 자율협약 단계에서 예외 없이 경영권 박탈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바른사회가 21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심재철 국회의원과 함께 개최한 <바람직한 기업 구조조정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발언하고 있는 박양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이러한 채권단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과도한 ‘권한 남용’은 자율협약 단계에서 불공정한 계약조건과 자율협약 이행시 채권단의 전문성 부족과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의 부재가 결합되어 발생한 것으로 이미 자율협약 제도 자체에 내재하고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채권단의 전문성과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3. 자율협약 이행시 DIP제도 적극적 준용 필요

최 교수님이 잘 설명해 주셨듯이, 기업구조조정은 그 부실의 강도에 따라 채권단 자율협약 ⟶워크아웃(기업구조조정촉진법)⟶법정관리(회생절차)의 순으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중 법정관리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약칭: 채무자회생법)에 의거하여 진행되는 가장 강도가 높은 기업 구조조정 방식인데, “기존 경영자 관리인 제도”(DIP: Debtor-in-Possession)에 따라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 유지가
보장되고 있습니다.

채무자회생법 제74조는 기존 경영진(채무자의 대표자)을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규정인데 종전 법정관리 제도하에서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이 원칙일 때 기업에서 법정관리를 기피하는 반성적 고려에서 외국의 제도를 참조하여 도입한 것으로 현재 법원 주도형 구조조정방식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법 제도가 현실을 모두 담을 수 없듯이 DIP 제도에 대한 부정적 입장과 긍정적 입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법정관리보다 더 약한 절차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더 나아가 자율협약제도 조차도 기존 경영자에 대한 경영권 보장 규정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기존의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유지할 목적으로 기업을 부실로 키워 법정관리로 간다면 최종적으로 피해는 사회 전체가 떠맡게 됩니다.

‘파산’이라는 말 속에는 ‘청산’과 ‘재건’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처럼 ‘기업 회생’이라는 말 속에는 ‘경영권 회생’이라는 진정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채무자회생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DIP 제도를 채권단의 자율협약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준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자율협약 이행시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사주의 경영권이 유지되어 기업경영의 정상화가 이루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4. 오너의 경영권은 기업가정신에 기초한 또 다른 사회적 자본

발제 내용에서는, 동부제철의 구조조정 원안에 관한 채권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동부제철간의 주장에 대하여 각 언론보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보도 내용은 크게 강원도 향토기업인 동부에만 ‘이상한 잣대’, 대주주가 보유한 지분을 100대 1로 감자해 경영권 박탈, 추후 우선매수청구권 차단 등 에 대한 것으로 ‘형평성’지적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최 교수님은 DIP 제도의 긍정적인 입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 인하여 부실에 빠진 기업에게 경영권을 유지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동부제철의 경우에는 채권단의 패키지 매각작업의 무산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외생적 변수로 인한 일시적 유동성위기로 인한 경영난, 기존 경영진의 사재출연, 오너의 도덕성 및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에 기초한 사회적 자본 등 엄격한 기준으로 따라 기존 경영권을 보호해 주어야 된다고 사료됩니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의 핵심은 ‘사회적 신뢰’이며, 수십 년 간 기존 경영자(창업자)가 쌓아온 사회적 신뢰는 어떠한 내·외부의 전문경영인의 능력, 리더십과 비교할 수 없는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즉 기업의 신화는 ‘전문경영인의 머리’가 아니라 ‘창업자(오너)의 가슴’으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동부그룹의 선제적 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의 구조조정지연에 따라 동부건설도 위기상황으로 몰릴 경우 이는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5. 맺음말

최 교수님은 ‘동부제철의 경우 지금이라도 법원으로 달려가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발제 내용에 대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자율협약이 채권단과 기업간의 상생을 목표로 하는 구조조정절차로 진행되어야 하는 데, 채권단이 자율협약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경영정상화보다는 채권회수에 우선하는 것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양한 기업구조조정 제도인 자율협약, 워크아웃, 법정관리는 단지 구조조정의 수단일 뿐이며 그 운영의 최종 목표는 기업유지 정신을 구현하는 데 있으므로 우리나라 법체계상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각 제도를 탄력적으로 적용하여도 크게 모순되지 않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제 자율협약은 박제화되어 박물관에 가야 할 운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자율협약의 운영자인 채권단 역시 “ 기업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황소개구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부제철 문제는 국책은행이 시장 전체에 채권자 주도형 구조조정 방식인 자율협약 및 워크아웃과 법원 주도형 구조조정 방식인 법정관리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며, 향후 전체 기업의 투자의욕을 저해하고 경제 활성화에 역행하여 산업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되므로 채권단과 해당 기업은 최악의 구조조정 사례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에서 개최한 '바람직한 기업구조조정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박양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가 발표한 토론문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