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특정 가치에 대해 다른 어떤 것과도 양보할 수 없다고 여기며, 이를 존중하고 수호하려 한다. 이와 대비되는 진보의 기본 개념은 발전이다. 사회는 기존 가치에서 벗어나 더욱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보에 있어서 경쟁은 필수불가결하다. 경쟁이 없다면, 진보나 발전은 커녕 정체-수구-쇠퇴-소멸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진보’라 칭하는 이들(이하 진보)은 경쟁에 대해 죽도록 반대하고 혐오한다. 그들은 대신 평준화, 균형발전, 평등을 외친다. 이들은 이타심을 크게 인정하고, 이기심으로 인한 부작용을 이타심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준화 균형 평등을 통해 모두가 다 같이 잘 살고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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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형발전과 경제민주화이념 하에 우리는 그동안 사회의 균형발전, 기업생태계의 균형발전, 지역간 균형발전, 교육평준화, 무차별적 복지확대, 부의 균등분배추구 등을 위한 규제·재분배정책들을 양산해 왔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결과는 오히려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로 나타나고 있다. |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실패 등 이 지상에 천국을 만들려는 시도는 언제나 지옥을 만들어 내었고, 세상과 역사의 교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진보는 이러한 점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이다.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결과까지 최대한 평등한 사회를 원하는 그들의 이상주의적인 태도에서 흥미로운 점은, 재산에 따른 불평등에 대해서 현미경 잣대를 들이대는 반면, 유전자에 따른 불평등(배우, 가수, 성우, 운동선수, 지식인)에는 입을 다물고 오히려 선망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재산에 대한 이중 잣대이자 솔직하지 못한 위선이라 말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계에서도 엿보인다. 진보는 최저임금제를 지지하며 최저임금 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배우 스태프 모두가 소위 ‘진보’ 일색인 영화판에서 최저임금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참고로 우리나라 영화계에는 연간 수억 수십억을 벌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CEO 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스타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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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거기 안 서?’ 등 대리기사에게 소위 ‘갑질’을 행하며 집단폭행을 가한 혐의로 폭행피의자로 조사 중인 김현 새민련 국회의원 |
우리나라 진보의 본질은 위선이다.
노동자와 국민을 위한다며 삼성과 정부를 언제나 욕하지만,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주위 사람들에게는 진심 어린 축하를 아끼지 않고 부러워한다. 부자를 욕하지만 본인은 돈을 더 많이 벌길 바란다.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이들이, 정작 민주주의의 산실인 국회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며 광장 시위와 거리 투쟁을 업으로 삼는다. 사람을 위한다 국민을 위한다 생명 존중을 위한다는 사람들이 대리기사에게는 집단 폭행을 가한다.
인권도 마찬가지이다. 고양이인권, 돌고래인권, 동성애자인권, 전교조인권, 귀족노조인권 등은 열심히 챙기는 사람들이 세계 최악이나 다름없는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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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고래인권과 동성애자인권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박원순 서울시장. 북한 인권에 대한 태도는 이와 상반된다. |
진보는 파이를 크게 키울 방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파이를 어떻게 잘라먹을까에 골몰한다. 책임을 지지 않는 ‘위선’이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진보는 북유럽 식의 복지천국을 주장하면서 이를 모방한 포퓰리즘 공약 및 정책을 계속해서 지지하지만, ▶시장경제에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면서 극소수의 대기업에 경제가 집중되어 있는 북유럽 각국의 현실, ▶검약 생활로 일관하며 상속부자를 존중하는 국민정서, ▶국민 대다수가 고율의 조세를 고르게 부담하는 재원 실태에 관해서는 정작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평등한 여건을 마련해 주고 젊은 부모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무상교육, 무상보육, 무상급식을 외치며 당선된 정치인들이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자, 정부에 그 책임을 떠넘기거나 손을 벌리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농약급식의 전모가 밝혀졌음에도 이에 대한 책임은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현재 자사고의 폐지를 밀어붙이는 진보 교육감들의 자녀들 다수가 특목고를 이미 나왔거나 재학 중에 있다는 점은 애교로 비춰질 정도이다.
세월호와 관련해서 청와대 국정원에 대한 질책과 비난에 앞장섰던 지자체장이 본인 관할의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이 전혀 없다며 일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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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빙벨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종인 대표(좌). JTBC 손석희와의 인터뷰가 세월호 사고 당시, 논란을 촉발시켰다. |
그들은 거의 모든 현안에 대해서 개인과 가정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기를 원한다. 국가와 사회를 이루는 건 그들 스스로이며, 각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월호 사고의 경우에도 유병언이나 청해진해운을 비난하기보다 정부에 대한 비판에 열중한다.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온갖 상상을 더하지만, 홍가혜의 악성루머, JTBC 및 이종인의 다이빙벨 논란으로 인해 잃어버린 몇박 몇일은 따지지 않는다.
진보라는 단어가 아까울 정도이다. 이러한 점들을 복기하다 보면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진보는 없다. 보수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자유는 책임을 전제로 하지만, 평등은 복종을 전제로 한다. 결국 평등한 삶이란, 그 평등을 부여하는 자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라 자임하는 자들은, 평등이라는 유토피아를 명분으로 온 국민을 노예의 길로 이끌려 한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 현실에서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일컫는다. [미디어펜=김규태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