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벨리 야외 공연장에서 행사를 관람하던 시민들은 기쁨의 함성 대신 끔찍한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다. 환풍구가 추락하며 순식간에 16명의 생명이 사라졌다.

정부는 즉각 성남 판교 환풍구 사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고 경위 조사에 착수했고 이번에도 결국 부실공사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환풍구 규제법은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시공사 포스코건설,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 21일 오후 경기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크레인을 동원해 철재 덮개를 지탱하던 지지대에 대한 하중실험을 한 뒤 파손된 부위를 사진 찍고 있다./사진=뉴시스

최초 사고 발생시 주최측이 누구냐를 두고 공방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시공사 책임론으로 불길이 번졌다.

이에 따라 판교테크노벨리 시공사인 포스코건설이 이번 사고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더욱이 최근 사고 현장에서 진행된 철제 덮개 하중실험 결과는 포스코건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찰이 사고 현장에서 환풍구 철제 덮개 하중실험을 한 결과 사고 현장에 사용된 철제 빔은 일반 철강이 아닌 아연스틸 등 강도가 약한 재질 재품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사고현장 하중실험에서 철제 덮개는 ‘일(一)자’ 형태의 빔이 4분만에 ‘브이자(V)’로 구부러지며 하중을 견디지 못했다. 이는 돌출형 환기구 하중 기준(1㎡당 100㎏)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부실 공사의 흔적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에 따르면 철제 덮개의 용접 상태 역시 불량한 것으로 확인했으며 벽면에 철제 받침대를 고정하는 볼트 역시 규격에 맞지 않는 것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환풍구 규제법…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

   
▲ 판교 환풍구 사고 이 후 시민들의 발걸음은 불안하기만하다. 한 여성이 환풍구 인도 가장자리를 자녀와 함께 위태하게 걸어가고 있다./사진=뉴시스

포스코건설의 부실공사 의혹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이들이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포스코건설에만 떠넘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행 건축법상에는 환풍규 규제 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참사를 빚은 건물의 지하 주차장 환풍구는 상업.주거지역의 환기시설에 해당돼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적용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동법 제23조 3항에 ‘상업지역 및 주거지역에서 건축물에 설치하는 냉방시설 및 환기시설의 배기구와 배기장치의 설치는 다음 각 호의 기준에 모두 적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1호의 내용은 ‘배기구의 높이는 도로면으로부터 2미터 이상의 높이에 설치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 의원의 말에 따르면 사고 환풍구는 인도에서 성인 남성 허리 높이인 95cm가량이고 낮은 곳은 60cm정도로 광장바닥에서 측정해도 175cm 높이에 불과해 이는 명백한 ‘법령 미달’ 시설물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 의원이 말한 건축물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23조 3항은 환풍구에 대한 규제 법이 아닌 배기구에 관련된 법이다. 환풍구 규제 법이 마련돼 있지 않은 이상 배기구와 동일한 규정이 적용되는지 해석을 명확히 해야 할 부분이다.

이에 국토부는 사고 발생 나흘째인 20일 환기구도 일종의 지붕으로 간주해 건축구조기준이 적용된다며 주 의원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건축법상 적용되는 건축물이나 구조물의 벽체, 기둥 및 지붕 등은 국토부 고시 ‘건축구조기준’에 따라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환기구도 통상 사람이 출입하지 않는 지붕으로 간주해 약 100kg/㎡의 무게를 견디는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해석에도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주택이나 병원, 주차장 등에 적용되는 활하중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나 물건 등이 그 위에 놓일 때 생기는 하중을 뜻한다. 구조물 자체의 무게에 따른 하중(고정하중)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환풍구 관련 기준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포스코건설 측 역시 이러한 점을 이유로 조사결과가 나올 때 까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2009년 착공 당시 환풍구 하중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었다”며 “국토부가 주장하는 환풍구를 지붕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는 기준 역시 당시에 마련돼 있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항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