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적 작가의 안목으로 예술작품 평가...빈켈만의 고전주의 맥 이어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35) - 그리스 조형예술, 고전주의 미학으로 부활하다

괴테(1749~1832)의 『예술론』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중학생 때 괴테에 푹 빠졌었다. 국어 선생님이 선물해 준 『괴테의 시집』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끼고 살다시피 했다. 2010년에 연구차 홀로 독일을 방문했을 때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그의 생가를 방문하여 느꼈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의 괴테 다시 읽기는 그리스 고전읽기와 문명 탐색의 또 다른 일환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23살 때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하루이침에 유명한 소설가로 떠올랐다. 또 일생의 역작 『파우스트』 또한 그의 작가적 명성을 높여주었지만, 그가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식물학, 해부학, 지질학, 색채론, 예술론 등 학술과 예술 분야의 다양한 영역에 대해 깊은 관심과 식견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덜 알려졌다.

   
▲ 괴테가 생전에 쓰던 책상이다. 프랑크푸르트 괴테 박물관 ⓒ박경귀
특히 괴테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주의 예술 작품들에 매료되어 열성적으로 미술품을 수집하고, 그리스 예술이 성취한 예술의 본질에 대해 파고들어 자신만의 미학(美學)과 예술 철학을 정립했다. 그 결과물이 『예술론』이다. 괴테는 그리스의 조각, 부조 등 그리스의 조형 예술에 경탄하며, 인간을 사로잡는 그리스 예술의 특징과 본질에 대해 열정적으로 숙고했다. 그는 “특징적 예술(charakteristische Kunst)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 괴테의 초상, 요한 티슈바인 1786-1787 작, 독일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사진 Web Gallery of Art


괴테는 예술이 단순한 자연의 모방이거나, 예술가 자신의 주관에 따라 스스로 만들어 내는 마니어(Manier)이어서도 최고의 예술적 완성을 이룰 수 없다고 보았다. 단순한 모방이 아닌 차분한 모방적 관조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여 자연에 내재하는 보편적인 형태, 법칙, 특정한 양식(stil)을 형상화 해야만 지고(至高)의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게 자연을 모방하다 아주 지엽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의 재현에 그치거나, 마니어가 주관적인 자의성으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괴테의 ‘양식’ 개념은 사물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직관할 때 얻어질 수 있다. 예술가의 민감한 감수성과 통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괴테는 고대 그리스 예술 세계가 최고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만의 예술적 ‘양식’을 제대로 구현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특히 그리스 예술 작품들이 자연에 대한 통찰을 통해 질서, 비례, 대칭, 조화와 같은 예술 고유의 규칙을 예술 작품으로 시현해 냄으로써 ‘자연적 진실’을 넘어 ‘예술적 진실’을 달성했다고 보았다.

예술이 자연과의 유사성을 넘어 예술 작품이 스스로 구현한 규칙을 통해 예술적 자기 완결성을 갖게 될 때 조화로운 미학이 창조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런 예술적 성취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의 한 예로 ‘라오콘 군상’을 심층 분석하고 있다.

괴테의 ‘라오콘 군상’ 해석은 괴테의 예술철학을 잘 드러내 준다. 라오콘은 트로이의 목마를 성으로 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트로이의 제관이었다. 그는 신의 노여움을 사서 뱀에게 물려 두 아들과 함께 죽게 된다. 라오콘 군상은 이런 전설을 예술 작품으로 조각한 것이다.

뱀에 휘감겨 고통을 당하는 아버지 라오콘과 두 아들의 절망과 위기의 상황을 절묘하게 표현한 조각 예술의 백미다. 미켈란젤로가 '예술의 기적'이라고 한 작품이다. 필자가 지난 5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바티칸 박물관에 갔을 때, 라오콘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벅찬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티칸 박물관의 소장 작품 중에서 늘 가장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차분히 감상하기도 어려운 작품이 바로 ‘라오콘 군상’이다.

   
▲ 라오콘의 군상, 바티칸 박물관, ⓒ박경귀


   
▲ 극심한 고통과 절제력이 절묘하게 담긴 라오콘의 뒤틀린 몸과 얼굴 표정이 압권이다. 라 오콘 군상의 세부, 바티칸 박물관, ⓒ박경귀

괴테는 라오콘 군상이 보여주는 감각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격정적으로 표현되었으면서도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상황을 이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포와 동정, 두려움의 감성을 서로 상승시키거나 완화시키는 “정신적이고 감각적인 전체를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라오콘 군상’이 표현해낸 대칭과 다양성, 정지와 운동, 대립과 점층의 양식을 극찬하고 있다.

괴테는 라오콘 조각이 “육체적 고통의 직접적 표출을 억제하는 그리스인의 위대한 정신력과 절제력의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빈켈만이 규정한 ‘고귀한 단순함과 조용한 위대함“, 즉 ”그리스적 이상미의 정화“로 간주했던 것이다.

괴테는 그리스 조각가 미론이 창작한 청동 조각 ‘암소’ 또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한다. 그는 미론이 아기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암소의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모성적 감성을 자극하여 “인간이 야수와 가장 다정한 방법으로 관계를 맺게”하는 기적적 효과를 만들어 냈다고 극찬한다.

그는 이런 조형 예술의 구현은 그리스인들이 “고차원적인 예술 감각으로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도록 동물의 인간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이라며, 인간을 신에 버금가도록 신격화하려 애쓰던 그리스인들의 공유가치이기도 했던 인신동형론(Theomorphism)의 맥락과 연관시켜 해석하고 있다. 미론의 '암소'는 남아 있지 않아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길이 없어 아쉽다.

괴테의 예술론은 그리스 조형 예술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독일 건축의 백미 슈트라스부르크 대성당 건축의 탁월함을 강조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같은 회화작품에 대해서도 자신의 미학적 견해를 심도 있게 전개하고 있다. <최후의 만찬>은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작가에 의해 여러 모습으로 그려진 유럽 회화 작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괴테가 관찰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최고의 걸작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슈트라스부르크 대성당, 사진 Photo Claude TRUONG-NGOC


신성한 식탁의 자리에서 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예수의 청천 벽력같은 선언은 12제자를 격동시킨다. 괴테는 12제자들의 성품과 감성이 그대로 육체의 동작으로 나타난 작품 속 팔과 손의 운동, 자세의 양태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 의미를 설득력 있게 해설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움직임이 어떤 감정으로 무슨 말을 하려하는 지,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몸짓의 의미가 무엇인지, 열두 제자를 네 그룹으로 나누어 섬세하게 해독해 냈다. 역시 작가적 이해력과 상상력으로 이들의 행태를 정밀묘사하고 있다.

이들을 관찰할 때 '손의 움직임'에 주목한 통찰도 뛰어나다. "육체 전체에 정신이 스며있다. 감정, 정열, 생각의 표현 하나하나에 사지가 참여"하고 있음을 괴테는 간파한 것이다. 독자들은 여섯 페이지에 이르는 괴테의 <최후의 만찬> 읽기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괴테는 제자 가운데 배신자가 있으리라는 예언이 일으키는 동요와 격동, 흥분과 경악, 의심과 분노를 혼재시켜 모든 움직임을 조화와 대조 속에 훌륭하게 형상화 시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천재성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확인하고 있다.

괴테의 예술론을 관통하는 예술철학은 빈켈만의 고전주의적 이상이론의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괴테가 고대 그리스 예술작품의 천재성과 압도적인 예술미에 매료되어 고대 예술사를 유럽 당대 예술의 전범으로 삼고자 했던 빈켈만의 짧은 예술적 전기를 이 책에 담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괴테는 고대 그리스 예술이 이룩한 순수한 미의 이상이 진정한 예술 양식으로 당대에 부활되기를 희구했다.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가 1798년 정기 간행물 <프로필레엔>을 창간하여 고전주의 예술 이론의 보루로 만들려고 했던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예술철학은 지나친 의고주의(擬古主義 , Archaism) 경향이라는 비판과 함께 당시 유럽과 독일에서 유행하던 낭만주주의 사조에 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괴테의 양식이론은 마르크그주의 미학자 죄르지 루카치와 현대 분석 미학자인 아서 단토(Arthur C. Danto)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예술론』, 괴테 지음, 정용환 옮김, 민음사(2008). 2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