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부 권가림 기자
[미디어펜=권가림 기자]2016년 6월, 서울 여의도의 한 특급 호텔에서는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을 기념하는 '미디어 데이' 행사가 열렸다. 지상파 방송사는 물론 IPTV들은 넷플릭스가 규모의 경제로 국내 ICT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후 넷플릭스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앞세워 영화 '옥자', 드라마 '킹덤' 등 자체 제작 콘텐츠를 무섭게 늘려갔다. 국내 출시 초기 8만명에 불과했던 국내 이용자 수는 481만명으로 늘며 트래픽도 자연스럽게 폭증했다.   

'판도라의 상자'는 이렇게 열리고 말았다. 재난과 재앙의 근원이라는 의미를 갖는 '판도라의 상자'는 열어보지 않는 게 제일 좋다. 하지만 열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열지, 연 이후에 어떻게 재앙을 최소화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넷플릭스는 국내법이 미비한 점을 근거로 별도의 망 이용료를 국내 ISP에 낼 수 없다며 배짱을 부리고 있다.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하며 논란이 커지자 국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넷플릭스 무임승차 규제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이달 말 최종 통과를 앞두고 있다. 

넷플릭스를 코너에 몰아 세웠지만 이제는 인터넷기업협회가 제동을 걸고 있다. 인기협은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 CP에 대한 규제만 강화되고 중소 CP, 스타트업의 싹을 자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불과 3년 전 국정감사에서 글로벌 CP가 국내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수익만 챙기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국내외 CP 역차별 이슈를 다루기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 설립에 참여한 인터넷협회가 맞나 싶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정보통신망법 상 국내대리인 지정 제도를 도입해 국내외 사업자간 역차별 해소를 도모한 선례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대상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국내 사업장이 없는 글로벌 CP에 대해 이미 전기통신사업법을 적용한 적도 있다. 이번 개정안은 대상사업자의 기준을 매출 1조원 이상, 정보통신서비스부문 매출 100억원 이상의 대형 CP로 정해 벤처 혹은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국내 서비스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글로벌 CP 규제에 대한 논의가 이슈화되고 국회를 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이 마저도 SK브로드밴드 홀로 이끌어 낸 결과다. 넷플릭스와 제휴한 LG유플러스와 제휴를 검토 중인 KT는 글로벌 CP 규제 앞에서 망부석이 된 것 마냥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다. 양사는 현재 망 사용료 문제를 해결해야 향후 넷플릭스와 손을 잡더라도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글로벌 CP 규제가 지지부진해지면 기울어진 운동장은 고착화될 것이다. 다음 국회로 넘어가면 관련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내 ISP가 개별 가입자에게 받는 돈은 제한적이다. 결합상품 등 저렴한 요금제를 내놓고 있어서다. 이런 환경 탓에 국내 ISP는 CP에게 망 이용대가를 받아 기하학적으로 늘어나는 트래픽에 맞춰 네트워크를 고도화하는데 선제 투자를 하고 있는 식이다. 현재 10년 전보다 10배 빠른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국내 ISP의 발빠른 네트워크 투자 덕이다. 국내 ISP에는 망 사용료가 단순한 수익을 넘어 미래 투자인 만큼 예민할 문제일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가 지금처럼 한국 시장을 '가만히 놔둬도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인식을 지속해선 곤란하다. 엄격하든 느슨하든 모든 규칙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 코 앞의 수익을 두고 뒷짐지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늦었지만 이제라도 글로벌 CP에 대해 동일한 잣대를 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판도라의 상자'는 언제고 또 열릴 수 있다. 정부와 관련 업계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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