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소셜 미디어를 달군 화제를 꼽자면 단연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상위권에 포함될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 이벤트는 지명을 받은 사람이 24시간 내에 얼음물을 뒤집어쓰든지 루게릭병(ALS) 협회에 기부를 해야 하는 방식으로 진행 된다 (실제로는 둘 다 하는 사람이 많았다).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동영상을 찍어서 올린다는 점, 그리고 다음에 도전할 세 명을 지목한다는 점 등이 SNS의 특성과 잘 부합하여 순식간에 전 세계적 유행이 되었다. 서구에서는 정치인, 기업가, 연예인 할 것 없이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한국에서도 어김없이 많은 이들이 동참하였다. 미국 ALS협회는 아이스버킷 챌린지 덕에 한 달 만에 작년 동 기간 모금액의 40배에 달하는 1억 달러를 유치했다고 하니 가히 대박이라 할 것이다. 원래의 취지는 어느덧 사라지고 흥미만 남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자선모금도 늘었으니 좋은 거 아니냐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경제학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이 현상이 불편했다 (아무도 필자를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이처럼 유행에 휩쓸리는 식의 자선 유도행위가 인기를 끌면 기부에 대한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앞으로 더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1) 효율적 기부란 어떤 것일까? 최소의 비용으로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 더 많은 도움이 갈 때 달성될 것이다. 루게릭병을 앓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다. 하지만,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부 대상이 루게릭병이든 희귀 암이든 결식아동이든 지구 온난화든 개의치 않았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어차피 좋은 의도로 기분 좋게 기부를 했으니 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든 상관없는 일일까?
지나친 시장주의적 사고라고 할지 모르지만 기부행위 역시 시장의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이 시장의 소비자인 기부자는 가장 높은 만족을 제공하는 자선단체를 선택하여 기부를 한다. 이왕이면 자신의 돈이 가장 의미 있게 쓰일 곳을 선택할 것이고, 공급자인 자선단체들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문제는 수많은 자선단체들을 평가하기에는 시간과 수고가 많이 들 뿐 아니라 투명하고 자세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같이 기부의 의미와는 다른 종류의 만족이 결합 판매될 경우 기부의 효율적 자원배분은 더욱 힘들어진다. 정보비대칭성으로 인한 시장실패가 확대되는 셈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자선단체 간 경쟁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하지만, 통합적 수집기관을 만들거나 정부가 나선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열매로 잘 알려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바로 국내 복지기관들의 공동 모금주체 역할을 하고 있다. 한 해 4,000억원에 달하는 모금액에 지원사업이 무려 7,700여개에 달하고 지원 대상기관은 25,000여 곳에 달한다. 필자에게는 이 기관을 평가할 만한 정보가 없다. 분명 과중한 업무를 사명감으로 버티며 해내는 직원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으로 믿는다.2) 하지만 너무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는 하고 싶다. 노인복지 분야만 예를 들더라도 일반 생계비 지원과 함께 식사, 빨래, 집수리, 차량 제공, 질병 치료, 교육, 문화 활동은 물론 부부관계나 심리 상담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사업을 개별 지원한다. 이들도 분명 중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내가 낸 기부금이 좀 더 긴급하고 절실한 용도에 집중되기를 바랄 것이다.
게다가 많은 예산과 소수의 담당자, 정보 없이 참여하는 외부평가위원들로 이루어진 결정구조가 시장 경쟁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은 낮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전통시장 육성사업에서는 멀쩡한 주차장이 이미 있는데도 주차장 설치자금 명목으로 수십억 원을 타내서는 엉뚱하게도 공원을 조성한 일이 보도되었다. 이런 식의 평가가 얼마나 경직되고 허술하게 운영될 수 있는 지, 그럴듯한 사업계획서와 요령으로 우회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부금 단체들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게 하되 소비자들에게는 이들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제공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역할에 충실한 사례로는 GiveWell이 있다.3) 2007년 두 명의 전직 헤지펀드 매니저에 의해 설립된 GiveWell은 주식시장에서나 볼 법한 최고의 분석기법과 실사연구를 통해 자선단체들의 효율성을 평가하고 최고의 기관들을 엄선한 뒤에 추천한다. 가장 수익성이 좋은 기업을 찾는 일과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 자선기관을 찾는 방법이 크게 다를 이유는 없다. 얼마나 많은 매출을 올리느냐 대신에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하느냐를 지표로 삼을 뿐이다. 물론, 자기들은 돈 버는 것도 좋았지만 저개발국 어린이의 설사병을 멈추는 데 관심이 더 갔다는 설립자들의 말처럼 박애정신은 필수 요건이다.
요 다음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같은 유행이 돌아오면 좀 더 많은 이들이 참여했으면 한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쓸 단체를 자신 있게 선택하여 기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때는 지명해 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필자 역시 자가발전이라도 해 볼 생각이다.
권남훈 (중앙대학교 경상학부 교수, namhoon@konkuk.ac.kr)
(이 글은 한국경제연구원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