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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
대입 수시모집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최근에는 학생들의 입시용 '가짜 스펙'을 위해 교사가 불법 조작이나 대리 작성에 가담해 결국 쇠고랑을 찬 '도를 넘은 제자 사랑'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에서는 대입 수시모집을 앞두고 온갖 경시대회와 자랑 마당이 사흘거리로 열린다. 독서 대회, 스피치 대회, 영어 경시대회, 지리 올림피아드, 수학·과학 경시대회, 영어 어휘·외국어 퀴즈 대회, 팝송 부르기 대회, 토론 대회, 논술 대회, 한자성어·속담 대회, 글로벌리더 선발대회, 시화전, 백일장, 경제 퀴즈 대회, 나라사랑 실천 대회, 시사퀴즈, 골든벨 등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대회에서 입상하면 생활기록부에 등재된다. 급기야 학생이 어떤 분야에서 잠재력을 보여서 생활기록부에 등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기록부에 등재하기 위해 대회가 열리는 지경이 된다. 학교가 솔선수범해서 학생들의 '스펙'을 만들기 위한 멍석을 깔고 있는 것이다.
어쩌다가 학교가 '스펙 쌓기'의 장이 되고 말았을까?
온갖 외국어 시험이나 교외 경시 대회의 성적이 대학 입시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그것을 위해 학생들을 일찌감치 과도하게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한국의 공교육을 통째로 망치고 있다는 비판에 따라 정부가 모든 대회나 수상 경력은 교내의 것만 유효하도록 결정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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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시모집을 앞두고 고등학교에서는 온갖 경시대회와 자랑 마당이 사흘거리로 열리고 있다. 독서 대회, 스피치 대회, 영어 경시대회, 지리 올림피아드, 수학·과학 경시대회, 영어 어휘·외국어 퀴즈 대회, 팝송 부르기 대회, 토론 대회, 논술 대회 등 온통 스펙만들기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
그러나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성취감을 북돋우면서 궁극적으로 자기주도적 학습을 유도하자는 대회 취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어떤 학교가 '과제 학습' 덕에 그 해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는 소문이 나면 그 이듬해에는 전국의 학교가 과제 학습을 한다. 경제 동아리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면 전국 학교에 경제 동아리가 만들어진다.
물론 덕분에 모든 학교가 '공평'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경쟁 탓에 온갖 분야의 프로그램을 만능으로 개발하고 지도해야 하는 교사는 고달프다. 영민한 학생들은 생활기록부에 등재되는 것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으며, 각종 대회는 다양한 학생들의 가능성과 재능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몇몇 학생이 겹치기로 출연해 입상을 독식한다. 이것이 '스펙 쌓기'의 현실이다.
춤을 잘 추는 학생은 춤을 출 수 있는 학교로, 빵을 잘 굽는 학생은 행복한 빵을 구울 수 있는 학교로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실험이 즐거운 아이는 실험으로, 수학이 재미있는 아이는 수학으로 날밤이 새도록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은 어떨까?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고, 평등은 각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고르게 제공하는 것으로 제 몫을 다하는 것이어도 좋겠다.
공교육은 학생들이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길러야 한다. 각자의 힘으로 경쟁의 마당을 뚫고 나가는 힘을 기르게 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경쟁력은 평등하게 배분한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닌 탓이다.
학교는 '정상적'인 교육을 '정도'로 실천하고, 대학은 대학대로 학생 선발권을 자율적으로 가질 수 있을 때 뒤틀린 교육 현장이 정상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가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과 재능을 자유롭게 펼쳐 보여야 하는 마당임을 망각할 때 '누구에게나'를 강요하는 '자유'에는 결국 평등도 없다는 역설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입시 제도에서 자유와 평등 중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는 간단치 않으나 결코 피해 갈 수 없는 과제다. /조윤희 부산 금성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