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리스크 증대로 인해 민간투자사업이 위축되어 있다. SOC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정부 재정 여력은 충분치 않은 현실이다. 이에 기획재정부와 KDI는 민간투자제도 도입 2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의 민간투자사업 공과를 돌아보고, 민간 및 정부의 다양한 시각을 공유함으로 앞으로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고자 11월 4일과 5일 양일에 걸쳐 <민간투자제도 도입 20주년 기념 세미나>를 개최한다. 본지는 이에 대한 취재에 앞서, 지난 7월 본지 재산권센터와 프리덤팩토리,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공동개최했던 <민간투자사업 재구조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책토론회의 발제 및 토론 일체를 소개하고자 한다.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독자의 관심과 이해를 돕기 위한 취지이다. 다음은 이날 패널로 참석한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의 토론문 전문이다. |
약속은 지켜야 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사람 사는 기본이다.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는 것은 그 약속을 믿고 살아온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이다.
약속의 일방적 파기는 도덕적으로 부당하다. 그 뿐 아니라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거래나 계약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면 사람들은 고립된 채로,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런 사정은 시민들 사이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시민과 국가 사이에서도 다를 것이 없다.
재구조화의 상당 부분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것
민자사업자와 지방자치단체 또는 국가는 해당 사업에 대한 협약을 체결했다. 재구조화 또는 리파이낸싱을 심사한다는 명분으로 당초에 합의했던 수익률을 일방적으로 깎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
|
|
|
▲ 국내를 비롯 글로벌 자유주의 인사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있는 자유주의 민간싱크탱크 프리덤팩토리의 김정호 대표. 프리덤팩토리는 시민주주 731명이 투자하여 설립된 주식회사형 민간싱크탱크로서 입법청원운동, 소비자주권운동, 자유통일운동 등에 주력하고 있다. |
현재의 금리나 시장수익률과 비고해 보면 과거에 상호 합의했던 민자사업들의 수익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그 당시의 시장금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민자사업자는 협약 당시 자신들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의 금리를 기준으로 수익률을 제시했고 정부도 그것에 합의했다. 지금 와서 시장금리가 낮아졌으니 수익률을 낮추자고 하는 것은 쌍방 사이의 약속을 깨는 일이다.
SOC 민자사업은 30년을 보고 하는 장기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금리가 내리거나 오를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일단 당시의 수익률에 합의를 했다면 30년 동안 그 수익률이 보장되어야 한다. 금리가 내렸다고 수익률을 깎는 식이면, 만약 그 사이 금리가 올랐을 경우 수익률을 올려줄 생각이었는가. 합의한 수익률을 일방적으로 낮추는 것은 사업자들에게 손해를 가하는 일이고, 정부가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약속의 파기는 자신에게도 해로운 포퓰리즘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는 측은 자신에게 당장의 이익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신용을 깎아내리는 일이어서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 민자사업과 관련해서도 다를 것이 없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듯이 정부가 수익률 등에 관한 당초의 합의를 파기한다면 앞으로 새로운 민자사업을 하고자 할 때 민자사업자들을 구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합의를 해봤자 지켜지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누가 선뜻 30년간이나 위험한 사업에 자기 돈을 투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설령 누군가가 나선다면 큰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는 결국 자신에게 손해로 돌아온다.
정부의 신용 없는 행동은 자신에게만 손해가 아니다. 후진국에 투자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컨트리 리스크, 정치적 리스크다. 그런데 정부가 민자사업자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는 것은 한국의 컨트리 리스크를 높이는 일이다. 한국 전체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한국의 모든 기업들의 조달금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투자유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 장들마다 민자사업자와의 합의를 깨는 일에 분주한 것은 유권자들에게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줘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함입니다. 약속했던 수익보전금을 준다면 지급한다면 유권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전임자가 했던 일을 깎아 내려서 자신의 업적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들어 있을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 손해가 될 일을 당장의 지지를 얻기 위한 감행하는 것이야 말로 포퓰리즘의 전형입니다. 이제 이런 부도덕하고 해로운 일을 멈춰야 합니다.
|
|
|
▲ 지난 7월 18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프리덤팩토리, 미디어펜 재산권센터의 공동 개최로 열린 <민간투자사업 재구조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책토론회 전경. |
문제가 있는 현재의 민간투자사업 제도
물론 민자사업 제도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특히 최소수입보장 제도(MRG)나 사업비 보전방식 등 민자사업자의 수입이나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부분이 문제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 식으로 MRG 같은 장치를 믿고 수요도 없는 SOC 들이 건설되었다.
즉 지자체 장들이 SOC 설치를 공약으로 내건 후 돈은 없으니까 민자를 동원해서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의 정책을 펴곤 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실제 수요가 있던 없던 수입을 보장해주는 장치들을 제공한 것이다. 그러면 결국 수요가 없는 시설이라도 지어질 수 있게 됨을 뜻한다. 사업비 보전방식으로 전환한다고 해도 수요도 없는 SOC를 일단 짓고 난후 시민들이 세금을 내서 외상을 갚아나가는 식의 관행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사업자로서는 사업비 보전 방식이 수요와 관계없이 더 안전한 투자일 수 있다. MRG의 경우는 수입의 일부만 보장하고 최종 수익률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사업비 보전방식은 최종 수익률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허용된 기간 동안 민자사업자에게 자유와 책임을 주는 것이다. 민자사업자가 원하는 만큼 요금을 징수하고, 이익이든 손실이든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게 하자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해당 SOC 사용자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할 것이기 때문에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철저히 구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독점 가격 책정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독점은 걱정할 이유가 없다. 통행량 또는 사용량이 많은 SOC는 이미 다 지어져 있는 상태이다. 새로 지어질 SOC들은 유사한 기존 노선, 유사한 기존 시설과 경쟁 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다. 독점가격을 매기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만약 독점가격을 매긴다면 공정거래 차원에서 조치를 하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요금에 대한 규제, 즉 수익률에 대한 규제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 모든 민자사업이 그랬고, 서울 지하철 9호선의 경우 1550원을 받을 수 있다고 계약으로 합의한 것까지 올리지 못하게 해서 결국 적자가 나게 만들었다. 민자사업을 마치 공기업인 것처럼 취급해온 것이다. 이런 제도가 지속되는 한 그 적자를 메우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 때문에 수요도 없는 SOC가 지어지고 납세자들이 그 비용을 메워주는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
|
|
▲ 지난 7월 18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프리덤팩토리, 미디어펜 재산권센터의 공동 개최로 열린 <민간투자사업 재구조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책토론회에서 사회자로 발언하는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 |
재구조화, 리파이낸싱 심사제도의 올바른 기능
재구조화나 리파이낸싱에서의 심사제도는 민자사업이 원래의 약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정도의 기능을 하는 것이 옳다.
일단 민자사업자와 정부 사이에 협약이 체결되고 나면 민자사업 주식회사의 주주를 바꾸는 일에 정부가 관여할 이유가 없다. 주주를 바꾸는 과정에 굳이 정부가 심사를 한다는 조항을 협약에 넣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정부로서는 누가 주주가 되든 당초의 협약대로 해당 시설이 건설되고 운영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반드시 새로운 주주의 구성에 대해서 심사를 해야 한다면 판단의 기준은 새로운 주주들이 당초의 협약을 제대로 지킬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만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심사라는 제도적 장치를 당초의 협약 내용을 변경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제도의 당초 취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여론 때문에 계약을 파기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것
지자체 장들은 해당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이 나쁘다는 것을 계약 조건 변경의 이유로 든다. 전문가들 중에서도 여론이 안좋기 때문에 수익률 등의 조건 변경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법이 존재하는 이유, 계약을 법으로 보장하는 이유는 여론이 어떻게 되든,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당초의 약속이 지켜지게 만들려는 것이다. 여론 때문에 파기될 계약이라면 당초에 맺지 말았어야 한다. 여론에 따로 정부가 일방적으로 계약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는 발상은 법치주의의 기본에 어긋난다.
|
|
|
▲ 지난 7월 18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프리덤팩토리, 미디어펜 재산권센터의 공동 개최로 열린 <민간투자사업 재구조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책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발언하고 있는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 |
민간투자사업은 민간의 사업이지 공기업이 아니다
사람들은 민자사업을 공기업처럼 취급하려고 한다. 삼성전자의 제품을 수많은 국민들이 사용하고 있지만 그 공장이 공공재가 아니라 사유재산이듯이, 민자에 의해서 건설된 SOC도 30년이라는 기간 내에는 사적 재화다. 그것을 공공재로 취급하는 것은 민자사업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의 재산처럼 취급하고 싶다면 애초에 국가재정이나 지방재정을 투입해서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아쉬울 때 마치 여러 가지 보장해줄 것처럼 약속을 해 놓고 막상 건설이 되고 나면 공기업 다루듯 수익률도 깎고 요금도 약속대로 지켜주지 않는 현재의 관행은 부도덕하고 불합리하다.
재구조화 과정에서 조건의 변경에 대해 민자사업자의 자발적 합의해줬다는 식의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앞으로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서 거절을 못하고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것이야 말로 민법상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여서 사후적으로 취소 가능한 행위이다. 다만 강력한 힘을 가진 정부가 그 상대이기 때문에 소송으로 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민자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민자사업의 특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민간에게 자유를 주고 그 대신 거기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사업자가 지게 해야 한다. 정부가 간섭하면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수익도 보전해주는 지금과 같은 방식 하에서는 낭비와 갈등이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