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민준의 골프탐험(29)-남은 속여도 자신은 못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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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
한참 골프가 물이 올랐을 때 같이 라운드를 하면 신나는 후배가 있었다. 골프를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 프로 못지않은 훌륭한 샷을 날리곤 했다. 아직 무르익지 않아 간혹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골프를 대하는 자세가 진지해 함께 골프를 하면 재미도 있고 긴장감도 즐길 수 있었다.
서로 바쁘다는 이유로 자주 라운드 할 기회가 줄어들자 우리는 묘안을 짜냈다. 소위 ‘블라인드 게임’을 하기로 했다. 함께 플레이하지는 않지만 주말마다 정확한 스코어로 서로 내기를 하기로 했다. 남발되는 멀리건이나 기브도 사양하고 노터치 플레이를 철저히 지키기로 약속했다. 첫 홀을 모두 파로 기록하는,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일파만파’도 제외키로 했다.
그래서 월요일만 되면 서로의 스코어를 자진신고하고 차이가 나면 그만큼 부담 없는 액수의 현금을 주고 받는다. 후배는 자신의 스코어를 증명하기 위해 딱 한번 스코어카드를 들고 왔지만 스코어카드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자 다음부터는 스코어카드 없이 말로 신고했다.
나와 후배는 상대방이 신고한 스코어를 100% 신뢰했다. 동반자를 찾아 스코어를 알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신뢰관계가 구축돼있다고 믿었다.
골프는 남을 속일 수는 있지만 결코 자신을 속일 수는 없는 게임이다.
골프대회에서 우승트로피를 한번 차지하는 게 소원인 한 골퍼가 마침내 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3타를 속여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트로피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들어간 그는 눈부신 트로피를 보고 기뻐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는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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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반자를 속여 한두 점의 스코어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라운드 내내 속아 넘어가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속앓이를 하게 되고 결국 비참한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혹시 동반자에게 속인 사실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의 인격은 산산조각 나고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은 설마 내가 스코어를 속여 우승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제 발이 저린 이 골퍼는 동반자의 눈을 속여 스코어를 줄일 수는 있었지만 자신만은 결코 속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의외로 우리네 골프장에서는 분명 분실되었을 것 같은 러프 속의 볼이 잘 발견된다. 모든 골퍼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당수 골퍼가 러프에 들어간 공을 열심히 찾다가 눈에 안보이면 슬그머니 자기 주머니에 있던 같은 공을 흘려놓고 “공 찾았어!” 하고 소리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한번이면 족하다. 동반자를 속여 한두 점의 스코어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라운드 내내 속아 넘어가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속앓이를 하게 되고 결국 비참한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혹시 동반자에게 속인 사실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그의 인격은 산산조각 나고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스코어에 연연해하는 한 골퍼가 러프에 들어간 볼을 찾다가 도저히 찾을 수 없을 것 같자 주머니에 있던 똑 같은 공을 러프에 떨어뜨리고 난 후 “볼이 여기 있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때까지 함께 볼을 찾아주는 척하던 동반자가 호주머니에서 볼을 꺼내 “이게 바로 자네 공이네.”하고 말하곤 등을 돌렸다.
이런 창피를 당하면서까지 남을 속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한 친구가 러프에 들어가서 한참을 투닥거리더니 그 홀을 마치고 6타라고 신고했다. 정말로 6타를 동반자가 스코어카드를 적다가 울화통이 터져 말했다.
“자네, 너무하군. 저 러프에 들어가서 친 것만 해도 6타인데.”
“자네가 보니까 내가 볼을 치는 것 같았지 실은 뱀을 때려 죽이느라 그런 거야.”
“그럼 가보자, 뱀이 죽어 있나?”
“그런데 뱀이란 놈이 어떻게 빠른지 여섯 번 맞고도 도망갔어!”
매홀 최소한도 한 점은 속이는 게 습관이 돼버린 친구가 홀인원을 했다. 그 친구가 스코어카드에 적은 스코어는 0이었다.
벙커에서 여러 번 치고 나온 골퍼에게 몇 번 쳤느냐고 물으니 네 번 쳤다고 대답했다.
“여덟 번 치는 소리를 들었는데?”친구가 반문했다.
“아! 그중 네 번은 모래벽에 울린 에코일거야.”
이 정도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골프사에 빛나는 신사인 바비 존스는 US오픈에서 어드레스를 하면서 볼을 건드렸다고 스스로 보고하고 벌점을 받았다. 아무도 볼을 건드리는 것을 못 보았다. 그 1점 때문에 동점자가 나왔고 다음날 연장전에서 바비 존스는 그 동점자에게 패했다. 사람들이 그의 스포츠맨십을 찬양하자 그는 “룰대로 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은행 강도를 안 했다고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대답했다.
1934년 오거스터 내셔널골프코스를 설계, 마스터스대회를 창시한 바비 존스는 그보다 4년 전인 1930년에 그랜드슬램 기록을 세웠다. 그때 28세로 13개의 타이틀을 석권하였으니 내셔널챔피언십의 62%를 우승하고 골프계를 떠난 셈이었다.
이때의 그랜드슬램이란 브리티시오픈, 브리티시아마투어선수권, US아마투어선수권, US오픈챔피언십을 같은 해에 석권했다는 뜻이다. 그는 이때가지 US오픈 네 차례, 브리티시오픈 세 차례, US아마투어선수권 다섯 차례, 브리티시 아마투어선수권 한차례의 챔피언경력을 쌓았다.
진정 위대한 골퍼란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골퍼를 뜻함을 보여준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