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론자들만 있고 자사고측 인사는 없는 일방통행식 평가

   
▲ 정은수 한국교육신문 기자
자사고는 초·중등교육법 61조에 따른 자율학교다. 명칭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흔히들 다른 종류의 학교로 생각하지만 혁신학교 역시 같은 법 조항에 따른 자율학교다. 그런데 같은 자율학교인 이 두 종류의 학교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태도는 ‘이중잣대’ 외에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극과 극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31일 결국 6개 자사고에 대한 지정취소 결정을 확정했다. 그동안 매번 평가기준을 바꿔가며 3차례에 걸친 평가를 했다. 특히나 중요한 지표인 학부모 만족도 지표 비중은 낮추고, 자사고 운영 취지와 무관한 인권 동아리 운영 여부를 재량 평가 지표로 들여다 놨다. 심지어 서로 모순이 되는 평가지표까지 집어넣었다.
 

반면 27일 혁신학교는 별도 평가 없이 자체평가보고서만으로 재지정하기로 했다. 이근표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은 31일 기자회견에서 “혁신학교는 재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공모하는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나흘 전 배포한 서울시교육청의 공모계획과 보도자료에는 네 차례나 ‘재지정 혁신학교’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사실 평가를 더 엄밀히 해야 하는 쪽은 별도의 예산을 지원받는 혁신학교 쪽이지, 정부지원금을 거의 받지 않으면서 사립재단과 학부모가 내는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는 자사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쪽은 사실상 평가를 하지 않고, 한 쪽은 수차례 거듭 평가를 했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자사고 폐지 관련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평가를 진행한 인사들을 살펴보면 그 이중성은 더 명백해진다. 평가지표 개발위원이자 평가단장을 맡은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지난해 혁신학교 평가 및 지표개발 연구진으로도 참여했다. 당시 그는 혁신학교를 지지하는 측의 추천으로 참여했다.

심지어 손동빈 전교조 학교혁신특위 집행위원장도 참여했음에도 이들은 일부 위원의 과거 발언을 근거로 구성 비율이 편향됐다 주장하며 의견반영이 되지 않는다고 위원을 사퇴해 평가를 결국 무산시켰다.
 

그런데 혁신학교 평가 무산에는 앞장선 성 교수가 평가단장으로 참여한 자사고 평가단과 지표 개발진은 혁신학교 때보다 훨씬 더 편향됐다. 자사고 측 인사는 없이 자사고폐지론자 위주로 구성됐다.
 

의견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한 혁신학교 평가 때는 성 위원 등이 여러 차례 지표 개발 회의에 참석했으나 자사고 평가 지표 개발 과정에선 자사고 측 인사가 참여한 적도, 자사고 측 의견을 들어준 적도 없다.
 

혁신학교 지표 개발은 다수의 진보 인사들을 포함하고 공청회까지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편향됐다며 무산시켜놓고, 자사고 평가지표 개발위원과 평가단은 자사고 폐지론자들로 채워놓고 단 한 차례도 자사고 측의 의견 없이 평가 기준을 만들고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정말 ‘네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혁신학교 평가 지표 개발 연구 당시 이들은 만족도가 중요하다며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한 질적 평가지표 확대로 만족도 지표의 비중이 줄어든 것을 두고 자의적 평가라고 비난했다. 그래놓고 자사고 평가 때야말로 자의적으로 학부모 만족도 지표의 비중을 대폭 줄였다.
 

이중잣대 적용은 계속 이어졌다. 조희연 교육감은 수차례 인터뷰에서 자사고 지정 취소의 근거로 ‘회계부정’을 들었다. 그런데 혁신학교야말로 그간 국정감사에서 간식비 3000만원 집행 등 부적절한 회계집행을 일삼았다. 시교육청은 “당시에는 관련 지침이 명확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변명했지만 지침이 없었다는 해명과는 달리 다수 학교는 지원금에서 인건비를 과다하게 집행했고, 일부 학교는 심지어 3월에도 전년도 예산을 집행하는 등 명백히 회계 관련 지침을 어기는 ‘회계부정’을 저질렀다.
 

명백히 의도적인 회계부정을 저지른 혁신학교는 지정취소는커녕 평가도 없이 재지정되도록 면죄부를 주고, 대부분의 경우 계획적 비리가 아닌 행정상 업무 과실을 저지른 자사고는 회계부정을 저질렀다고 지정취소를 하겠다는 것이다.
 

자사고 평가를 진행하면서 학부모들이 교육감을 만나기 위해 교육청에서 며칠을 기다려도 쉬이 만나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혁신학교 구성원들은 현장의 의견을 듣는다며 지속적으로 만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14차례의 ‘듣는다 희연쌤’ 현장방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혁신학교 혹은 혁신교육지구 학교의 구성원들이다.

일반학교 구성원을 만난 횟수보다도 많다. 자사고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매일같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자사고는 그에게 학교현장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런 숱한 이중잣대들은 같은 자율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자사고는 폐지, 혁신학교는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지금까지 일련의 업무를 추진해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시교육청은 결국 항복문서나 마찬가지인 선발권 포기를 명시한 자사고 운영 개선 계획을 낸 자사고를 제외한 6개교를 지정 취소했다. 시교육청은 6일 자사고인 동성고에서 혁신학교 공모 설명회를 연다. 항복문서를 받는 모양새를 취하더니 이제는 마치 정복한 적진에 깃발을 꽂듯이 장소를 선정하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오늘도 봉사를 가요. 내가 아이들이 봉사하는 곳에 함께 가야 교육자인데... 학생 교육에 힘써야 할 시간에 법원에 가고 대책회의를 하고 있어야 하다니 이게 뭐하는 일인지 모르겠어요.” 한 자사고 교장의 한탄이 조 교육감에게도 들리길 바란다. /정은수 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