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문재인정부는 피의자가 검찰에서 했던 진술 증거능력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최대 4년의 유예기간 없이 즉각 시행할 전망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하는 대통령직속 '국민을 위한 수사권 개혁 후속추진단 회의'에서 법원행정처가 "검찰조서 증거능력 제한에 유예기간을 둘 필요없이 즉시 시행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전달하면서 부터다.
친정부 인사로 꼽히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당초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20대 국회 논의 당시 '즉각적인 시행은 어렵고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이같은 입장을 최근 뒤집은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이 의견을 김영식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통해 전달한 것으로 최근 전해졌다.
문제의 법조항은 개정 형사소송법 제 312조 제 1항으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한 것으로서 공판준비-공판기일에 그 피의자였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향후 이것이 즉각 시행되면 어떤 피의자든 자신이 검찰측 조사에서 말했던 진술 전부를 법정에서 부인할 경우 신문조서의 진술 내용을 법정에서 다시 다퉈야 한다. 사실상 검찰측 조사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조치다.
문정부 복안대로 즉각 시행할 경우 현재 재판중인 주요 사건에도 곧장 적용이 가능하다.
대통령직속 추진단은 법원행정처의 이러한 의견을 바탕으로 검찰측 증거능력 제한을 오는 8월부터 즉시 시행한다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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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은 이르면 오는 8월 시행을 앞둔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 중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유예기간 없이 바로 제한하자는 입장을 밝혔다./사진=연합뉴스 |
법조계는 신중하게 지켜보자는 의견이 크지만 비판적인 입장이 많다. 비판적인 논지의 요점은 크게 재판의 장기화, 증거 확보의 어려움, 특정 재판에 영향을 끼칠 것 등으로 나뉜다.
익명을 요구한 부장검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2일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뇌물죄 입증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은밀히 몰래 전달하는 뇌물의 경우 계좌내역 등 객관적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건네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진술이 있을 뿐인데 이에 대한 증거능력을 부정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등 뇌물 제공자가 법정 진술을 번복하면 신문조서 내용을 증거로 채택할 수 없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피의자들 진술을 중심으로 범죄상황을 재구성해 재판에 넘겨온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이 없어지고 증거 목록에도 올라가지 못해 법정에서 그 신빙성을 따져볼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조치의 가장 큰 수혜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n번방 가해자들이 될 것"이라며 "이미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항소심에서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고 1심 중인 재판의 경우 무죄 판결로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대형법무법인 소속 파트너변호사인 L씨(57·서울)는 이날 본지의 취재에 "이번 사안은 양쪽에서 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피의자가 유죄를 시인하도록 검찰이 진술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별건수사를 동원한 회유 협박 인권침해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대체할 대안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던 법원이 즉시 시행이 가능하다고 입장을 바꾼 것도 정부 방침에 따라가는 모습인데, 이 또한 조국과 유재수 등 선후 관계와 유무죄가 분명한 형사재판에서 너무 성급히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가"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n번방 사건에서 검찰은 주범 조주빈을 중심으로 일정한 보고명령체계를 갖추고 조직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는 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 또한 검거된 피의자들의 진술 번복이 있을 경우 입증하기 지극히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뇌물을 조직적으로 주고 받고 관리하는 조직 내에서 의사소통 구조는 대부분 피의자의 진술로 파악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제도를 수정 개선하는 것은 좋지만 그 공백이 우려되는 부분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 대안이 없어보인다"고 덧붙였다.
또한 "증인이 많이 필요하고 복잡한 사건일수록 불구속 재판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조국 및 유재수 재판뿐 아니라 n번방 등 일반 시민들이 연루된 형사사건도 장기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