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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응 경총 전무 |
최근 사내도급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내도급을 활용하고 있어 이에 대한 규제는 곧바로 기업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얼마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완성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는 원청의 근로자라는 판결을 잇달아 내렸다. 9월 18일과 19일에는 현대자동차, 9월 25일에는 기아자동차의 사내도급은 불법파견이므로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판결의 배경 및 내용
완성차 제조업의 사내도급이 문제가 된 것은 십년 전 부터이다. 2004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는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을 이유로 진정을 제기한 바 있다. 울산지방검찰청이 무혐의로 불기소처분을 내렸지만 노조는 현대자동차에 단체교섭을 요청하고 ‘정규직화,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였다.
그 후 협력업체는 불법파업을 이유로 파업에 참여한 근로자들을 해고하였다. 이 때 해고된 근로자가 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을 거쳐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던 것이 2010년 소위 ‘최병승氏 사건’이다.
대법원은 ①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에 의해 정규직 근로자와 혼재하여 근무한 점, ② 원청의 시설 및 부품을 사용한 점, ③ 원청의 작업지시서에 의해 업무를 수행한 점, ④ 원청이 작업배치권과 변경결정권을 행사한 점, ⑤ 원청이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근무교대와 작업속도를 결정한 점, 원청이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태 및 인원현황을 파악한 점을 들어 현대자동차가 직접 노무지휘권을 행사했다고 보아 불법파견을 인정하였다.
이 판결 후 현장에서는 유사한 소송이 많이 제기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현대자동차 울산․아산․전주 3개 공장의 근로자 약 1,600명과 기아자동차 소하리․화성․광주 3개 공장의 근로자 약 500명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인데 이번에 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재판부가 이번 판결에서 불법파견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것은 원청업체가 실질적으로 협력업체 근로자를 노무지휘했느냐 여부이다. 이것은 2010년 판결과 유사하다. 그러나 법원은 작업공정을 따지지 않았고,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2차 협력업체도 파견관계로 보았다. 심지어 원청업체 밖에서 조립한 부품을 생산순서에 맞게 납품하는 일을 수행하는 부품업체 근로자까지 파견관계라고 판단하였다. 컨베이어벨트를 활용한 의장라인에만 불법파견을 인정한 2010년 판결과 달라진 점이다.
재판부는 협력업체가 독자적인 설비를 갖추고 별개의 공간에서 일하는 블록화가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감안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한 공장에 대한 입증자료로 다른 공장사건을 판단하기도 하였다. 자동차 생산현장의 다양한 공정과 업무특성을 구체적으로 심리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소속된 협력업체와 공정, 업무수행 양태가 제각각인 천명이 넘는 근로자에 대해 하나의 결론을 낸 것이 과연 사실관계를 정확히 반영한 판단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의 문제점
이번 판결을 두고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기업 경쟁력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념화․정치화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마치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인정하는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로 인정받는 시대적 흐름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사법부가 노동시장의 역동적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번 판결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자동차 생산공정의 특성을 무시한 채 모든 공정에 대해 근로자파견관관계를 인정하여 사실상 완성차 제조업에는 도급이 금지된다고 해석하였다. 우리 민법은 도급계약의 목적에 대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처럼 따로 법이 제한하지 않는 한 당사자가 자유롭게 도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사적자치원칙에 맞는다.
그런데 법원은 금번 판결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직접생산은 물론, 생산관리․물류․포장업무 같은 간접생산공정에서도 모두 불법파견을 인정하였다. 간접공정에서는 외관상 업무가 분리되어 작업되고 있었고, 전문적인 설비나 기술을 갖춘 협력업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완성차 제조업에서는 도급근로자를 쓰면 안 된다는 해석과 다를 바 없다.
사법부는 법률을 입법자가 제정한 취지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법원이 도급계약의 형식을 부정하고 불법파견의 범위를 마음대로 재단하여 사실상 법률을 직접 만드는 입법부의 기능을 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둘째, 원청과 도급계약을 맺지 않은 2차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해서도 묵시적 파견근로관계를 인정해 사용자 범위를 무한정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법원은 원청과 부품생산 및 물류계약을 맺은 부품사․물류사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해서도 ‘묵시적 근로자파견계약’이라는 표현을 써서 원청이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사외(社外)협력업체의 물류공정에 대해서도 파견근로관계를 인정했다.
그러나 기업간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협의․협조를 이유로 묵시적 파견근로계약을 인정하는 것은 현대 기업들이 전문화․효율화를 위해 경영전략에 따라 분업화를 추구하는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셋째,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파견법의 입법취지를 왜곡하여 오히려 도급을 금지하는 규제법으로 변질시켰다. 우리 파견법은 1998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제정되었다.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되던 노동력 수급시스템을 개선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목적이었다.
따라서 파견법을 처음 논의할 때는 파견을 얼마나 허용하여 인력활용의 유연성을 높일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금처럼 도급/파견 구별기준에 대한 문제는 논의대상에 없었다. 오히려 파견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도급계약이 비교적 넓게 인정됐으며 당연히 불법파견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파견법의 입법취지를 들어 원청과 직접 계약관계가 없는 2차 협력업체의 근로자도 불법파견이라고 보았다. 고용유연화를 위해 도입된 파견법이 기존의 유연화 수단마저 제거한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넷째, 현행법과 달리 파견근로자에 대한 사용사용주의 책임을 넓게 인정하여 향후 이를 둘러싼 법리적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견근로자의 임금에 대한 차별이 발생할 경우 이를 시정해야 할 사람은 사용사업주가 아니라 파견사업주이다. 즉, 파견법에 따르면 사용사업주는 근로시간, 휴일, 휴게에 대한 책임을 부담할 뿐 임금지급에 대한 책임은 파견사업주에게 있다.
따라서 원청과 사내도급 근로자간에 파견근로관계가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임금차별에 대한 책임은 협력업체에게만 묻는 것이 옳다. 그런데 이번 판결에서는 원청에게도 임금 등에 대한 차별금지의무를 부담한다고 보아 협력업체와의 공동책임을 인정하였다. 이것이 현행 차별시정제도의 올바른 해석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내용조차 불법파견의 근거로 판단하여 기업에 혼선을 주고 있다. 금번 판결은 원청이 안전점검․교육, 사내도급근로자에 대한 처우개선안 마련, 사내도급 근로자의 고충상담․처리, 고용승계에 대한 조정․중재하는 모습을 파견인정 근거로 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고용노동부가 2011년에 발표한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내용이다.
즉, 이번 판결로 고용부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사업장일수록 도급계약이 불법파견이 될 소지가 커지게 된 것이다. 기업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해도 향후 분쟁이 발생하면 법을 지킨 것이 될지 위반한 것이 될지 예상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번 판결의 시사점과 바람직한 사내도급 정책방향
금번 판결을 계기로 노동계와 일부 정치권은 모든 사내도급은 불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여론몰이에 한창이다. 판결 직후 일부 국회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항소하거나 당장 직접고용하지 않으면 국정감사에 기업인 증인으로 출석시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0월 국정감사에서 현대자동차 실무책임자를 출석시켜 판결을 즉각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입법을 책임지는 국회가 사법제도에서 보장한 권리를 무시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삼권분립 원칙에 맞는 모습일지 의문이다.
현대자동차와 협력업체 근로자는 이번 8월에 특별교섭을 타결하고 9월 특별채용자를 발표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당사자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들은 노사 대화보다는 법적 분쟁을 통한 해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최근 통상임금 등 모든 노동현안이 사법부의 결정에 따라 해결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노동의 사법화’ 현상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노사자율적인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뿐이다. 또한 불필요한 행정적․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연결된다. 우리는 2010년 소위 ‘최병승氏 사건’ 이후 집단소송과 파업, 희망버스 같은 외부세력 개입 등 극단적인 혼란을 경험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이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내도급 문제는 산업 현실과 노동시장 변화를 반영하여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파견근로를 32개 업무에만 허용하고 기간 제한이 엄격하다는 것도 감안되어야 한다. 적법하게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좁혀놓고 나머지 업무는 무조건 직접채용 근로자만 사용하라고 제한한다면 그런 규제가 없는 선진국 기업들과의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우리 자동차산업의 주요 경쟁국인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제조업무에 파견이 허용되고, 외부 노동력도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노사협의로 파견회사를 설립하였고, BMW의 라이프치히 공장은 외부노동력 활용비중이 50%를 넘는다. 일본은 단순히 정규직과 혼재해서 일했다는 것만으로 불법파견이라고 보지 않는다. 일본 도요타는 파견근로자가 생산라인에서 적법하게 근무한다.
또한 선진국에서는 자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생산방식의 다양화와 원․하도급업체간 협력을 유연하게 인정하는 추세이다. 산업현장의 변화를 인정하는 선진국들과 대비되는 우리 사법부의 역주행이 계속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급심 판결 결과가 상급심에 그대로 이어지면서 사내도급은 무조건 불법파견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선 곤란하다.
지금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선택과 집중의 효율화로 더욱 앞서가는데 국내 기업들만 발목이 잡힌 채 세계시장에서 퇴출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이를 벗어나지 못하면 국내투자 축소로 인한 일자리 창출기반만 약화될 뿐이다. 우리 모두가 격려와 배려, 상생과 통합으로 돌파해야 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있음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