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20일 “당해보라”며 문재인 대통령 얼굴사진을 담은 삐라에 담배꽁초를 뿌려놓은 사진을 공개했다. 남한에서 탈북민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북의 도발은 이제 시작됐다.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는 것을 대남 대적행동의 발화점으로 삼았다.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분풀이의 시작을 전단 문제로 삼은 것은 다중 포석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북 대북전단 도발 발화점 삼은 것, 다중포석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담화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이를 막지 못한 남한정부가 판문점선언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2018년 4.27 1차 남북정상회담 결과 나온 판문점선언의 2조 1항에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중지한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대북전단 문제는 사실 이보다 훨씬 이전인 2004년 6.4 고위군사회담에서도 논의된 바 있고, 그때에도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한 바 있다.
전문가 일각에서 나온 분석처럼 북한이 이번에 남북관계를 재정립하려고 한다면 대북전단 문제는 남한정부를 공격할 큰 빌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판문점선언 파기를 넘어서서 그 이전의 남북 간 합의 모두를 무너뜨리는 근거로 삼을 수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 비난으로 대적행동을 예고하더니 판문점선언으로 탄생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는 것으로 도발을 시작했다. 다음 군사분계선에 군부대 진출과 대남 삐라 살포를 예고했다. 남한에 대한 무력도발 명분을 얻은 것과 동시에 북한주민을 동원해 내부결속을 도모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었다.
‘김여정 담화’ 이후 북한에서 대북전단 살포와 남한정부를 비난하는 군중시위가 이어지더니 총참모부는 “우리 인민들의 대남삐라살포투쟁을 군사적으로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군을 대동한 삐라 살포 인력들이 몰려들 때 우발적 충돌이 있을 수 있다”며 우려했다.
북한은 20일 관영매체를 통해 주민들이 대남 삐라를 제작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컵을 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얼굴과 ‘다 잡수셨네...북남합의서까지’라는 문구를 합성한 전단 더미 위에 담배꽁초 쓰레기를 마구 던져넣은 모습이 담겼다.
|
|
|
▲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2018년 5월5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 주차장에서경찰의 통제로 대북전단 풍선 살포를 포기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위반된다며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연합뉴스
|
대북전단으로 심리전‧인권운동? 실상은 달라
대북전단 살포의 바람직한 취지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는 북한주민에게 외부 소식 물론 3대 세습 독재 정권인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것이다. 베를린장벽이 자연스럽게 무너진 것도 동독 주민들이 40여년간 청취해온 서독의 라디오방송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박상학 대표)가 해온 대북전단 살포는 심리전 또는 북한인권운동으로 보기 어렵다. 풍선에 매달아 살포한 전단 대부분이 남한지역에 떨어져 북한주민은 볼 수 없다. 더구나 사전 예고로 마치 퍼포먼스를 하듯 해 취지를 의심받기도 했다. 박상학 대표가 만들어 보내는 전단의 내용이 조악해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많았다.
또 다른 탈북민단체 ‘큰샘’(박정오 대표)가 해온 쌀을 담은 페트병을 바다에 띄워 보내는 행위 역시 페트병이 북한까지 닿지도 않아 접경지역에 폐기물만 쌓이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연평도 포격 트라우마가 있는 서해5도 주민들이 위협을 느끼고 있어 최근 인천시의 강력한 요청으로 이 행사를 보류시켰다.
지금까지 탈북민단체들이 해온 대북전단 살포와 쌀 페트병 띄우기는 그들이 내세우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실효도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대로 된 전단 심리전이라면 남한의 발전된 실상을 알리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북한주민들은 이미 남한 드라마를 많이 보고 있어 다 알고 있다는 탈북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2011년 2월27일 발원지에 대한 조준격파사격 통보, 2014년 10월10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전단 살포지인 경기도 연천군에 고사포를 발사하는 등 강력 반발해왔다.
“대북전단 금지, 단일 법안보다 현행 법체계 강화로 충분”
통일부는 지난 10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하기로 했다. 이후 전단 금지를 위한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청와대도 11일 “전단 및 물품의 대북 살포를 철저하게 단속하고, 법에 따라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은 전단금지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전단 금지를 단일 법안으로 제정하기보다 현행 법체계 안에서도 충분히 불법 행위로 규제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전단 살포가 북한의 군사도발 빌미를 제공하고, 전단의 표현이 음란물 수준으로 저속한 점을 포인트로 들었다.
법무법인 공존의 권태준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다른 구성원에 피해를 주는 행위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되기 어렵다”면서 “접경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대북전단 살포에 연루된 사람들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명석의 선병주 변호사는 “대북전단 살포는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규제가 가능하고, 남북교류협력법, 항공안전법, 공유수면법 등 위반 가능성도 있다”며 또 “대북전단에 사용되는 표현 자체가 거의 음란물 수준이거나 저속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도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위한 단일 법안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현장에서 차단하는 등 단속활동과 함께 접경지역지원특별법과 납북교류협렵법 안에 관련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을 고려 중으로 국회와 협의할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