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지난해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결렬시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비행기로 데려다주겠다”고 권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3일(현지시간) 출간하는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하노이 노딜’의 전말을 밝히면서 미국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제재 해제 요구를 거절했다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포기와 제재 해제를 맞바꾼다면 대선에 불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전에 협상 결렬을 준비했고, 예상처럼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만 제시하자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폐기를 요구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난색을 표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볼턴은 먼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북한과 실무회담을 거쳐 만든 하노이회담의 합의문 초안에 대해 혹평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전 양보만 열거해 놓고 대가로 북한이 취할 조치로는 또 다른 모호한 비핵화 성명만 넣었다”고 말했다.
볼턴은 즉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 등에게 연락해 이를 북한에 제안할 안으로 채택하지 못하도록 사전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준비회의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의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영상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때 회담장을 걸어나왔기 때문에 결국 소련과 중·단거리 핵무기 금지(INF) 협정 합의를 이끌었다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상을 본 뒤 “내가 유리한 입장이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회담장을 걸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고, 볼턴 자신은 크게 안도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인 메트로폴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스몰 딜과 걸어나가는 것 중 뭐가 더 기삿거리가 되겠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열리자 김 위원장은 미국의 예상대로 영변 핵시설을 해체할테니 2016년 이후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이 준비한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정의와 북한의 밝은 미래를 정리한 2쪽짜리 문서를 건넸다. 당시 회담장에서 볼턴 앞에 놓인 노란 봉투가 회담 이후까지 주목받았는데, 이 봉투에 해당 문서가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회담 내내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외에 추가로 내놓을 것이 없느냐”고 물었고, 김 위원장은 “영변이 북한에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설명하는 대화를 반복했다고 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거할 수 있겠냐 제안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한걸음씩 가면 궁극적으로 전체 그림에 도달할 것“이라는 말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어 김 위원장은 “북한은 안보에 대한 어떤 법률적 보장도 얻지 못했다”며 “미 군함이 북한 영해에 진입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영변 폐기 대 제재 해제 제안을 받아들이면 미국에선 정치적 파장이 엄청날 것이다. 내가 대선에 패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볼턴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하노이에서의 만찬을 취소하고 북한까지 비행기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웃으며 “그럴 수 없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한 그림이 될 것”이라며 재차 권유했다고 한다.
|
|
|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서 역사적인 남북미 정상 회동을 하고 있다./청와대
|
한편, 볼턴은 작년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과 관련해 북한과 미국이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참여를 원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판문점 자유의집 앞에서 3국 정상이 만나기 전 문 대통령 측은 참석을 거듭 요청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근처에 없기를 바랐지만 문 대통령이 완강히 참석하려고 했고, 가능하면 3자 회담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나를 서울에서 비무장지대(DMZ)까지만 배웅하고 북미 정상회담 후 오산공군기지에서 다시 만나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판문점 내 관측 초소까지 같이 가서 결정하자”고 했다고 기록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