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많은 금융회사들의 파산 원인 중의 하나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제도, 감사위원회 제도, 내부통제 및 준법감시인 제도 등이 새롭게 도입되었으며, 금융회사의 소유ㆍ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00년 11월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되면서 금융지주회사 제도가 시행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금융지주회사가 도입된 지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이젠 제도가 안정될 때도 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면에서의 기여보다는 금융지주회사에서의 또 다른 지배구조문제를 드러내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이번 발표자께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종전에는 단일의 금융회사의 경우 전략적 대주주가 없는 구조를 이용하여 금융회사 대표이사가 이사회를 사실상 장악하여 경영권을 독단하거나 또는 이사회의 집단이기주의를 보여 금융지주회사제도를 도입하였지만, 금융지주회사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행태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이에 더하여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막강한 지배력과 책임의 불균형 등 금융지주회사 특유의 문제점까지 가중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금융위원회에서도 지난 2013년 6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관련 규율이 형식적인 준수에 그치고 실제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였습니다.
동 선진화 방안을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반영하는 한편, 업계 자율협약인 모범규준에 준법규성을 부여하여 실제 변화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아직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형편에서 자율적인 운영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금번 KB금융 사태를 통해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전부터 다른 금융지주회사라고 해서 KB와 다르지는 않기에, 지금까지 금융지주회사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지배구조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금융지주회사 회장으로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등 최고경영자의 경영권 남용이 여전히 발생된다는 점입니다. 국내 금융시장은 은행업계 비중이 막대하고, 이중 4개 금융지주회사(우리, KB, 신한, 하나)의 자산규모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은행지주회사 회장의 권한이 금융시장 내에서 막강하게 직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은행지주회사의 경우 은행에 대한 소유규제로 인해 소유가 분산되고 경영이 분리되어 일반 주주들의 역할이 미약한 상황에서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자회사들에 대해 절대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기 쉬운 구조이기에 여기서 발생되는 부작용은 회사내부의 경영상의 문제일 뿐만이 아니라, 국내 경제적으로 큰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할 것입니다.
둘째,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높은 권한에 비하여 이에 대한 책임은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국내 은행지주회사는 대부분 금융지주회사가 자회사를 100% 소유하는 완전자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어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권한이 절대적이며, 금융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고 이에 대한 책임도 불명확하여, 정말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금번 KB금융 사태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이처럼 금융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간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KB금융의 문제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판단됩니다.
셋째, 사외이사의 집단화 및 권력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문제점은 금융지주회사의 권력 집중과 권한 남용 등의 문제들은 이사회가 이를 제대로 감시하거나 견제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라 한다면, 이것은 사외이사가 집단화ㆍ권력화하여 발생하는 분제라 할 것입니다. 사외이사의 과반수로 구성되는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서 기존의 사외이사의 임기를 연장하는 폐해가 발생하고, 회장 선임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면서 오히려 사외이사들의 권력화와 권한남용 사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넷째, 외부의 보이지 않는 힘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매번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 금융지주회사 회장이나 은행장 자리를 원하는 소위 “정권의 실력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경우 이사회가 그의 의중을 살펴 영입하려는 행태가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금융지주회사 내부나 은행에서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를 영입하여 그의 영향력을 통해 새로운 사업 진출이나 다른 금융회사의 합병 등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유인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며, 또 지금까지 이러한 기대는 거의 충족되었기에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은 주주를 제외한 이해관계자들 즉, 회장, 사외이사, 집행임원 등 대부분이 왜곡된 지배구조를 유지할 유인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금융지주회사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행 주주권이 분산되어 경영권을 위임받은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하면서 금융지주회사나 은행이 지배구조를 제대로 혁신할 의지를 스스로 가지기 어려운 구조이며 금융지주회사가 관료조직화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주인이 없다는 일반론에 대해서는 다소 생각을 달리합니다. 주주라는 존재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 주주들은 다른 기업들과 달리 오너가 대주주로서의 존재를 가진다기 보다는 상당수준 분산되어 있어서 실제 권한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인이 없다고 표현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결국 소수주주들이 주주권을 행사하기 다소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합니다.
실제 KB금융의 경우 국민연금공단이 9.96%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최대주주로 존재하고 있으며, The bank of New York Mellon이 8.32%로 2대주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80%에 이르는 일반 투자자들이 KB금융의 주인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반 투자자 중에는 65%가량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있어, 실제 국내 투자자들이 KB금융에 큰 역할을 하는 주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이들 역시 실제 KB금융의 주주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단, 문제는 이들 주인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이사진의 경영행위를 통제할 수 있느냐는 것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그대로 주주총회를 통해 결의되어 버린다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즉, 소위 ‘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사진이 ‘주인’의 이해와 행동을 달리 할 경우 이에 대한 마땅한 제어수단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현행법 상 소수주주들을 위한 ‘주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생각해본다면 다소 고민스러운 부문이기도 합니다. 현재 KB의 대주주인 국민연금 역시 기껏해야 ‘의결권’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며, 이 의결권의 적극적 행사 역시 상당부문 제약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작년 개정 상법을 통한 주요 기업들이 정관개정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비중으로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KB 금융문제에 있어서도 국민연금기금은 별도의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여 과연 가입자의 이익을 위한 주식투자자로서의 fiduciary duty에 충실한지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발표자께서 지적하셨다시피 기관투자자들 자체의 지배구조가 정비되고 비정치적인 참여가이드라인이 정비될 필요가 있으나, 현행 수준의 의결권 행사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한편, 실제 주식회사의 가장 근본적인 운영원리를 생각해 보는데 있어서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와 이해관계자본주(stakeholder capitalism)의의 입장 중 소유가 극단적으로 이번 경우처럼 분리된 경우 ‘정부’나 기업이나 투자자, 대출자 등 ‘금융기관 이해관계자들’의 역할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설사 이사회의 구성이 소위 낙하산을 통한 현재의 인사방법이 분명 잘못되었다고 하여도, 이러한 이해관계자들의 의사가 경영에 반영시킬 수 있는 채널은 마련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표자께서 제안하신 방법 외에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와 관련하여 법제화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2012년 8월 상정된 정부의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법이 너무 과도하게 개입하면 개별 금융회사에 맞는 다양한 지배구조 운용을 할 수 없어, 오히려 금융회사의 경영 효율성과 경쟁력 향상이 저해될 수 있겠으나, 금융지주회사는 다른 금융회사와는 달리 직접 금융업을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지배구조 원칙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금융지주회사제도의 도입 목적이 겸업화와 시너지 창출을 통한 경쟁력 확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법을 통해서라도 이를 잘 구현할 수 있는 지배구조 운영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제도적․입법적 개선방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무엇보다 금융지주회사와 자회사(은행, 보험, 증권 등) 간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상호간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현재 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의 관리업무만을 영위하는 순수지주회사로 수익을 창출하는 영업활동은 자회사에서 이루어짐에 따라 중층적 의사결정과 영향력 행사라는 문제가 지적되고, 이에 따라 금번 KB금융 사태와 같은 경영진 간 갈등이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은행 비중이 압도적이고 자회사 중심형인 국내 금융지주회사 현황을 감안하여 금융지주회사가 전략적인 위험관리정책과 사업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책임과 권한을 함께 부여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금융지주회사법」 상 금융지주회사의 대표와 자회사 대표와의 역할 및 책임을 법령에 명시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으나, 회사의 관행에 따라 이를 획일화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각 금융지주회사마다 내부기준에서 그 역할과 책임을 명시하는 지배구조 규정을 갖도록 금융당국이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금융지주회사의 CEO 선임절차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자회사들에 대해 절대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기 쉽고, 이에 따라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높은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CEO 교체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사례들이 발생하여 왔습니다.
현재 CEO 선임절차는 정관이나 내부규칙에 규정되어 있는데, 기본적으로 지배구조는 금융회사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CEO 선임 과정에서 외부외압 등의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를 법제화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경영진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를 위한 사외이사 선임제도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사외이사가 금융지주회사 경영진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 및 견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 선임제도를 보다 투명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지주회사 경영진이 사외이사 후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경영진을 견제하려는 원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으므로 외부기관 등을 통한 추천제도 등을 이용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넷째로 경영진의 성과보수의 이연제도 및 환수제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경영진의 지배권 남용이나 과도한 위험추구 방지를 위한 수단으로 보수의 사후적인 조정수단을 활용할 필요에서 나온 것으로 미국의 경우에도 「금융개혁법」이나 유럽연합의 보수체계 개선안은 경영진의 과실이나 비윤리적 행위 등을 이유로 경영진에게 지급한 보수를 환수(clawback)할 수 있는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경영진의 인센티브 구조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보수체계 공시를 강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로 금융지주회사 경영진의 모럴해저드 방지를 위해 주주권의 강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금융지주회사의 대부분이 은행지주회사이며 은행의 소유규제로 인해 소유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주주로부터 경영권을 위임받은 경영진의 모럴해저드가 발생(principal-agent problem)하여 왜곡된 지배구조를 유지할 유인이 근본적으로 매우 높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2013.6.17)”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주주권의 실질적 행사가 이루어 질 수 있는 방안들을 추가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금융지주회사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제도적 유인이 필요합니다. 현행 금융 법령은 업권별 규제 내용이 다르고 업무장벽이 존재하여 금융지주회사를 하나의 경제적 실체로 보기 어려우므로, 이를 통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법적 기초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원종현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이 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에서 개최한 '한국금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서 원종현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이 발표한 토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