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 아닌 공영 미디어유통망으로 미디어콘텐츠 저작권 보호 절실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문화대통령은 컴백했지만 마왕은 영영 떠나 버렸다. 5년 만에 무대로 돌아와 여러분 앞에 선다는 서태지는 9집 앨범 <소격동>으로 무사 귀환했다.

굿 뉴스다. 그러나 지난 4월 7년 반 만에 솔로 미니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표하고 음악 활동을 재개했던 파격의 마왕 신해철은 너무 바삐 황급히 팬들 곁을 떠나고 말았다. 참말 비현실적이게도 얄궂다.

27일 밤 전해진 비보에 서울시장도 “당신의 팬이었음에 행복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며 애도했다. 김종진 김광진 김창렬 장기하 등 수많은 동료 가수 연예인들도 함께 흐느꼈고 록 음악 파수꾼 신대철은 ‘복수하겠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여 의료사고 쪽으로도 심야의 인터넷은 온통 산발이 되고 말았다.

정말이지 서태지 같은 반가운 얼굴 보며 웃을 새도 없이 그저 오랜 친구나 늘 그리운 옛 골목길 같기도 했던 그를 추모하게 되니 마음 무겁고 아프다. 애청자요 팬으로서 깊게 품고 마주해와 익숙했던 우상과 떨어져야 하는 사랑 값이 이리도 큰가 싶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가 잦게 목도하는 연예계의 불운에는 그냥 개인의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고질, 즉 대형 시크릿이 가려져 있다. 시크릿 첫 장은 원천 창작자 보상 문제다. <구름빵> 작가 백희나와 가왕 조용필 사례를 차분히 들춰보자. 2004년 어린이 그림책으로 나온 <구름빵>은 40만부 이상 팔렸다.

정가 8500억원이니 출판 매출만 35억원이 됐고 이후 TV 애니메이션, 뮤지컬 공연, 캐릭터 상품 등 부가콘텐츠로 가공돼 4400억원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원천 저작자인 백희나 작가는 정상적이었다면 인세 10%라는 최소 3억5000만 원 이상을 벌어들였어야 했지만 달랑 1850만원만 받았을 뿐이었다.

   
▲ 조용필
2차 콘텐츠인 캐릭터 등에 관한 저작료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른바 매절 계약이라는 출판 등 미디어 시장 악성 관행에 유린당한 탓이다. 이 매절 계약이 얼마나 고약했던지 법조계에서는 한 번 후려쳐 뭉개버리고 만다는 뜻으로 ‘원 샷, 원 킬’ 이라 부를 정도다.

무명작가일지라도 매절 계약하지 않고 정상 처리하는 영국에서는 <해리포터> 작가 조앤 롤링이 저작권 대행업체를 통해 저작권을 보호 받고 인새와 영화, 관련 상품 로열티를 통해 1조원이 넘는 돈을 벌었다며 자랑하는데.
 

가왕 조용필도 악성 유통 때문에 눈물을 삼켰다.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히트한 조용필은 당시 대형 음반유통업체인 지구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했다. 1986년 전속계약이 종료되어 인세 재계약을 체결하면서 그만 레코드사 사장에게 저작권 일부를 양도하고 말았다.

<고추잠자리>, <여행을 떠나요>, <촛불>, <어제 오늘 그리고>등 지금까지 인기를 받고 있는 31곡에 대한 복제권과 배포권을 지구레코드 측이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시절이라 그도 이 내용을 문제 삼지 않고 사인했다고 한다.

이후 자신이 작곡 작사하고 부른 노래까지 저작권료를 지급해야하는 기막힌 상황을 맞아 소송하고 대법원까지 올라갔지만 원 저작자 조용필의 당연한 권리는 인정받지 못했다. 27년이 흐른 지난해에 이르러서야 지구레코드 대표로부터 빼앗겼던 31곡의 배포권과 복제권을 이전한다는 공증서류를 받게 됐다. 이마저도 네티즌들의 청원 운동이 아니었다면 묻혔을지도...
 

이런 억압은 물론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미디어 콘텐츠 산업 표본 미국에서도 흔한 상황이다. 영화 <어벤저스> 액션 히어로물로 유명한 미국 마블(Marvel Entertainment)사와 만화 창작자 잭 커비 유족이 맞붙은 업무상 저작 분쟁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강은 이렇다. 1976년 잭 커비는 마블사에 근무하면서 창작한 작품의 모든 권리를 마블사에 양도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서에는 커비가 해당 작품에 대한 저작권자라는 내용은 없고, 커비가 업무 과정에서 창작한 작품은 마블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창작한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잭 커비가 작화한 헐크, 아이언맨 등이 대박을 내자 작가 유족이 마블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현재 미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판결은 사업자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이 사례는 창작여건이 우리보다 나은 미국의 경우에도 예상치 못한 높은 수익이 발생할 경우 갈등과 분쟁이 고조되기도 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미디어콘텐츠 현장 한 복판에서는 생산하는 창작자와 사업화하는 유통업체들 간 팽팽한 기 싸움이 한시도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음이다. 문제는 거대 조직과 위력을 내세운 유통 사업자들이 거침없이 백전백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빛은 아주 진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딸려 비춘다. 그림자 속 작가, 창작자, 연예인 등은 날이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궁핍해지기 십상이다.

겉은 스타로서 화려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내고 기여한 몫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서 노상 매어 있고 때로는 조작당하기도 한다. 딱 그러했던 두 거장을 생각해본다. 옷이며 집, 가구까지 도금했어도 남아돌았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나 영원한 디바 휘트니 휴스턴을 벼랑으로 내몬 현실도 그 너머 한 축에는 악덕 유통 마수가 도사리고 있었다.

   
▲ 휘트니 휴스턴
2012년 2월 비버리 힐즈 힐튼 호텔 욕조에서 발견된 휘트니 휴스턴의 마지막 몇일 증언 가운데에는 ‘그녀가 길거리 마약 봉지 한 개 외상값을 못 치러 쫓겼다’는 말까지 나왔다. 수백만 수천만장 앨범을 팔아 번 돈을 정작 주인공 자신은 오래 간직하지도 못한다니... 그냥 그렇게 연예인 개인 운명이라 치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흘려보내고 싶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홱 지나치기에는 여기 현실이 너무 지나치다. 원천 저작자 ‘삥’ 뜯는 유통 사업자 지배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이 인터넷 온라인 모바일로 가는 가상 환경이 굳어질수록 유통 자본 위력과 경제력 집중이 극단화되어가고 있다. 창작하는 풀뿌리 생산자를 누르고, 고분고분 않고 대드는 실력 있는 저작자를 배척하는 독과점 체제가 고착화되어만 간다.

정도를 넘어선 독과점은 자유로운 콘텐츠 창작과 생산, 공급을 위축시키게 마련이다. 종국에는 전업 작가, 창작자, 연예인 생업과 생존을 위협하고 뭔가 불온한 쇼윈도 궁지로 몰아만 간다. 몇 남지도 않은 정통 로커나 순수 문학인을 통속 상업주의 저급 예능 딴따라로 등 떠밀어 우세시키는 채널과 프로그램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음악 산업에서 유통시스템이 왜곡되어 있다 보니 특정 독과점 유통사업자들이 원하는 대로 다 맞춰주는 플레이 온 디맨드(play on demand)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도 빠짐없이 안다.
 

마왕도 가왕도 문화대통령도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을 리 없다. 없었을 터이다. 아마존이 출판계 작가 장악하고 유투브가 중국만 빼고 한국 등등 전 세계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거머쥔 그 어마 무시한 악력을 이겨내긴 힘들다. 이에 더해 중국대세론까지 미디어콘텐츠 플랫폼 유통을 타고 들어오면서 강도는 더해지고 있다.

국내 미디어산업 종사자가 추락하거나 변질하는 자중지란까지도 벌어지는 판이다. 지난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국 자본 유입으로 들떠 있던 한국 모바일 게임업계 일각이 어느새 더 잘 나오는 중국 게임을 베끼기 시작했다는 반전 뉴스가 최근에 알려지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어느 평정심 잃은 한국 업체 게임개발자가 창작이며 저작 따위가 주는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 망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개인 창작자에게는 권리 귀속도 없고 대우나 보상도 없는 현실을 알고 기어이 좌절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창작자, 작가, 연예인을 보상도 인정도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도록 해야 하는 참된 과업 앞에 서 있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비웃는 분위기가 창궐하지 못하도록 할 실질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

획일 시대를 파괴해준 개성 넘치는 마왕은 있었지만 그가 더 자주, 제대로 음악하고 창작하는 예술 활동을 하기 어렵게 만든 주범인 미디어콘텐츠 산업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업무상 저작, 위탁 계약과 제작(저작) 부문에서 우선 실제 창작자, 생산자에게 권리를 귀속시켜주는 것과 합당하고 투명한 보상을 확약하는 법제도 정비로부터 시작해야 옳다.

또한 미국의 유투브와 중국의 빅 4 미디어플랫폼인 요쿠 투도우, 탠센트, 소후, 아이치이 등이 한국 방송 드라마, 예능, 영화, 게임을 흡입하고 있는 무지막지한 현실 속에서 최소한 방어 태세를 갖추는 과업이다. 공정 거래와 계약을 담보하는 공영 플랫폼을 자체 자원으로 만드는 전략이 최선이라고 본다.

유투브가 1인 창작자 동영상까지 45% 수수료 가져가고 중국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이 한국 방송콘텐츠, 영화, 게임까지 기획, 개발 단계에서부터 입도선매하는 과도한 팽창과 불가사리 같은 독식을 더 이상 방치하다가는 한국 미디어콘텐츠 산업 종사자들의 계속되는 불운을 막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대중을 위무했던 예술이 오래 오래 길게 갈 것을 믿는다. 이를 위해 공정하고 투명한 공영 플랫폼을 새로 만들어 개인 창작자들 콘텐츠 창출 의지부터 고취시킬 것을 다짐해본다. 마침 최근 활발하게 논의 중인 『K 플랫폼』 사업과 전략을 더욱 구체화시켜 굴절된 우리 미디어콘텐츠 산업 유통시스템을 바로 잡는 신생 공영 플랫폼이라는 실체를 서둘러 탄생시켰으면 한다.

이런 노력만이 진정 건강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생태계로 이어질 수 있다. 가버린 팔구십 년대 문화 심벌, 마왕을 ‘응답하라’ 부르기 위해서도.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