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공공복리, 공공성, 공공필요라는 명분하에 개인, 기업, 민간이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거나, 부당하게 침해당하는 사례가 있어왔다. 민간투자사업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민간투자사업은 정부예산으로 건설·운영하여 온 도로, 항만, 철도, 학교, 환경시설 등 사회기반시설들을 민간의 재원으로 건설하고 민간이 운영함으로써, 정부의 재원부족 문제를 해결하면서 민간의 창의와 효율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1)
그런데 이렇게 민간재원이 투입된 민간투자사업에 대하여 정부가 재구조화를 할 때, 재산권 행사 차원에서 분쟁이 발생한다. 재구조화는 민간투자사업의 자금재조달을 통한 주주(투자자) 교체 과정을 일컬으며 MRG 등의 협약조건을 수정 변경한다. 최근 재구조화로 인해 불거지는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는 강원도와 국민연금공단 간의 분쟁을 들 수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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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투자사업으로 구축된 지하철 9호선의 운영 및 재구조화를 놓고 맥쿼리와의 법적분쟁 및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서울시민들에게 본인의 시정 방향을 널리 알린 박원순 시장. 재정건전화를 명분으로 삼아 맥쿼리를 <악>으로 규정했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분석에 따르면 조삼모사 식의 예산 조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
민간투자사업 갈등의 양상, 공익의 방향
강원도는 MRG 협약 문제로 인해 미시령도로의 지배회사인 국민연금공단과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협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강원도는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등, 이는 민간투자사업 재구조화에 따른 전형적인 갈등 사례이다.
2017년 인근에 새로운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미시령터널의 실통행량은 17%까지 하락한다. 실통행량이 이 정도 수준으로 떨어지면 MRG 협약으로 인해, 강원도는 지금까지 주던 23억이 아니라 240억원을 지불해야 한다. 협약기간은 2036년까지이다. 양측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강원도는 “협상이 잘 이뤄질 경우 법적인 조치는 중단할 계획이며, 끝까지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협약의 문제점을 들어 소송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고, 국민연금공단의 입장은 “강원도의 사업구조화 재협의에 응할 계획은 없으며 교통량 감소라는 미래 예측을 사유로 협약을 변경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MRG 협약은 민간투자사업에 있어서 이미 폐기되어 현재는 더 이상 새로이 생기지 않는 조건이다. 하지만 기존 민간투자사업 대부분의 경우에 적용되는 조건이며, 아직까지 정부 공무원 지자체 일반시민 등 여론의 향방을 좌우하고 있는 법적분쟁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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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재정부와 KDI의 공동 주최로 4~5일 서울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민간투자제도 도입 20주년 기념 세미나>.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이 개회사를 발언하고 있다. |
먼저, 재구조화를 통해 재정건전화를 꾀하고 이를 통해 공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강원도는 정부, 즉 관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그런데 갈등의 당사자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읽힌다. 강원도, 즉 관은 강원도민 150만명의 대리인이고 연금공단은 국민연금 가입자 이천만명을 대표하고 있다. MRG협약을 둘러싼 이 분쟁에서 공익은 어디에 있을까. 150만명의 이득을 공익으로 취급해야 할지 아니면 우리나라 국민의 40%에 달하는 이천만명의 이익을 공익으로 취급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계약은 계약이다. MRG 협약 또한 엄연한 계약이다. 계약 당사자로 관, 즉 정부가 들어가 있어서 민간투자사업의 공공성을 따지지만 위 사례의 경우에서 공익을 다수라는 상대적 개념으로 따지자면, 공익이라는 잣대는 국민연금공단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계약은 당사자 간에 약속을 지키자는 합의를 명문화한 것으로, 가치중립적이다. 재구조화나 재정건전화라는 명목으로 공공성과 공익을 따지기 되면, 이번 경우처럼 이율배반적인 사례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계약에 대한 공무원, 관의 기본적인 태도는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으니 다시 계약을 맺자. 이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법정에서 보자”는 격이다.
지금껏 얘기한 모든 갈등 문제는 최소운영수입을 보장한 MRG협약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MRG 문제의 근본 원인은 수요예측의 불확실성에 있다. 사업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애초에 정부가 일정부분 책임지는 형태로 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수요예측의 불확실성은 많은 것에 기인한다. 우선 개발계획의 난립 혹은 지연, 도시계획의 변경, 금리 등 경제환경의 거시적 변화, SOC의 중복이나 신규 건설 등 가지각색의 요인으로 인해 수요는 시시각각 변한다. 이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어느 누구나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수익성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든, 공무원 전문가든 SOC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수요예측은 시간에 대한 리스크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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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재정부와 KDI의 공동 주최로 4~5일 서울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민간투자제도 도입 20주년 기념 세미나>. 정희수 국회의원(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이 축사하고 있다. |
민간투자사업 재구조화, 문제와 요지
민간투자사업은 현재 역경에 처해있다. SOC에 대한 정부 재정투자가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가운데, 지난 몇 년 간 민간투자사업의 시장 자체가 급속도로 침체되었다. 더 이상 생기지 않는 MRG협약이지만 이를 빌미로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가시질 않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 재정방어적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시장참여자인 관련기업들, 금융 투자사들이 다시금 민간투자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지 여부 또한 불투명하다.
사실 ‘민간투자사업 재구조화’는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다. 잘 모르는 국민 대중과 언론 기자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이슈이다. 이를 아래와 같은 일상 사례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
1.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맞춰서 장사를 어떻게든 하려다 보니
▶ 정부재정의 부족, 그래도 SOC는 공급해야
2. 급전이 필요해서 계약을 맺고 돈을 빌려서 일단 썼는데...
▶ 민간투자사업 제도 확대, 민간투자를 재원으로 삼음
3. 시간이 지나 이자를 갚으려다 보니
▶ MRG 협약에 따른 보전금 지불
4. 다른 이들보다 고리로 돈을 갚아나가야 하는 실정이 부담스럽고
▶ 저금리 기조 지속, 지난 10년간 달라진 경제상황
5. 예상했던 것보다 장사/돈벌이가 잘 되지 않아
▶ 수요예측 실패, 각종 개발계획 변경 및 신규 추가로 인한 SOC 환경 변화
6. 기존 투자자에게는 적정한 원금/수익을 주어 지금까지의 계약을 없던 일로 하고, 새로운 투자자들을 모집하여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 민간투자사업 재구조화 추진
7. 이러한 협상이 잘 되지 않을 경우, 계약에 관한 사업지정을 취소하고 당사자에 대한 의혹을 널리 알린다.
▶ 경남의 마창대교 공익처분 추진, 감사 후 세금탈루/탈세의혹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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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개인이나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들이 앞으로 원하는 만큼 새로운 투자자들을 물색할 수 있을까.
문제의 요지는 “실질적인 투자자인 재무적 투자자들의 투자를 어떻게 SOC 민간투자사업으로 유인하느냐”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 관의 자업자득으로 인한 동상이몽에 불과하다.
인센티브는 기업을 움직이는 결정요인인데, 그 인센티브는 상호 간의 계약으로 인하여 규정되고, 이에 따라 양자 간의 신뢰가 구축된다. 하지만 한쪽이 계약을 존중하지 않을뿐더러 언론플레이를 통해 민간투자자를 소위 악으로 규정하는 태도로 인하여 사회자본으로서의 신뢰가 서로 간에 쌓여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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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재정부와 KDI의 공동 주최로 4~5일 서울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민간투자제도 도입 2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김규태 미디어펜 재산권센터 간사가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민간투자제도 앞으로의 방향, 민간에게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약속의 파기는 자신에게도 해로운 포퓰리즘이다.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는 측은 당장의 이익이 바라보고 그러는 것이지만, 결국 자신의 신용을 깎아내리는 일이어서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
현재의 민간투자사업 제도에는 문제가 있다. 특히 MRG나 사업비 보전방식 등 민자사업자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부분이 문제이다. 이를 통해 수요도 없는 SOC들이 건설되었다.
지자체장들은 SOC설치를 공약으로 내건 후 돈은 없으니까 민자를 동원해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의 정책을 폈다. 그러기 위해 실제 수요가 있던 없던 상관없이, 민간에게 수입을 보장해주는 장치들을 제공한 것입니다. 이는 수요가 없는 시설이라도 지어지게 됨을 뜻한다.
재구조화나 리파이낸싱으로서의 심사제도는 민간투자사업이 원래의 약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정도의 기능을 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새로운 주주 구성에 대해서 심사를 해야 한다면, 새 주주들이 협약을 제대로 지킬 의사와 능력이 있는지 만을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정부 지자체의 입장은, 심사라는 제도적 장치를 기존 협약 내용을 변경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제도의 기존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다.
부족한 정부재정의 대안으로서 민간투자사업의 확대를 꾀한다면, 정부는 협약기간의 추후 변경 없이 해당 기간동안 민자사업자에게 자유와 책임을 모두 부여해야 한다. 사업자가 원하는 만큼 요금을 징수하고, 이익이든 손실이든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게 하자는 얘기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해당 SOC 사용자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할 것이기 때문에,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철저히 구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의 역할은, SOC든 교육이든 복지든 민간이 민자사업에 참여할 경우 민간이 자유로이 진입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면 자연스레 퇴출되는 경쟁구도를 조성하는 것에 국한되어야 한다.
단, 세간의 우려대로 독점가격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연출될 경우, 공정거래법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독점가격이 형성되기 힘들 것이다. 향후 새로 지어질 SOC는 유사한 기존 노선 및 시설 등과 경쟁 관계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1) 1994년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촉진법」 제정을 계기로 사회기반시설의 건설·운영에 민간투자방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도로법 항만법 등 개별법령에 근거하여 민간자본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동 법이 1998년 말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으로 개정되면서 많은 사업들이 민간투자방식으로 추진되었다. 2005년에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이하 ‘민간투자법’)」으로 재개정하여 그동안 추진해 오던 수익형(BTO) 민간투자사업 방식뿐만 아니라 임대형(BTL) 민간투자사업 방식도 도입함으로써,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참여의 폭이 넓어지기도 했다. 민간투자법 제2조 1호에서는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되는 사회기반시설을 나열하고 있는 데 교통시설, 환경시설, 교육시설 등 15개 분야 50개시설이 이에 해당된다.
2) 강원도가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재정보전금 협약 문제로 ㈜미시령동서관통도로의 지배회사인 국민연금공단에 소송을 준비해서, 법정공방이 불가피한 상황. 강원도는 국민연금공단이 협약 내용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재협상 요구에 응하지 않아 이 같은 결정을 내림.
미시령터널은 총사업비 1090억원 중 약 960억원을 민간투자로 추진해 2006년 5월에 개통한 유료도로임. 협약기간은 2036년까지. 강원도는 2006년 7월 미시령터널 개통 이후 현재까지 187억원, 연평균 23억원을 지급. 3년뒤 동홍천~양양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되면, 향후 20년간 미시령터널 실제통행량은 예상통행량의 17%로 하락. (출처 : 강원개발연구원 ‘동서고속도로개통에 따른 미시령터널 통행량 변화예측’)
결국 보전 비율이 늘어나, 강원도는 지금까지의 10배 수준인 240억원을 보전/지급해야 하며, 이 추세로는 2036년 협약 만료기간까지 국민연금공단( ㈜미시령동서관통도로 )에게 5,420억원을 지급해야 함. 정부는 2003년 민간투자사업 기본계획에 따라 MRG 협약기간을 30년에서 15년으로 줄이는 제도를 마련했지만, 국민연금공단이 미시령터널을 인수할 당시 이 부분은 협약내용에 반영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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