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이 20여일간 이어오던 대남 비난 공세를 멈춘 뒤 문재인 대통령의 6.25전쟁 70주년 연설에 대해서도 이틀째 아무런 반응을 내놓고 있지 않다.
북한은 지난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를 열고 대남 군사행동을 보류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힌 뒤 이날까지 대남 비난 메시지를 멈추고 있다.
25일 김영철 당 부위원장은 같은 날 정경두 국방부장관의 발언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보류가 재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김영철은 “남조선 당국의 차후 태도와 행동 여하에 따라 북남관계 전망에 대해 점쳐볼 수 있다”고 말했다.
25일 저녁 문 대통령은 6.25 기념식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않는 것이 ‘종전’을 향한 첫걸음”이라면서 “세계사에서 가장 슬픈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에 북한도 담대하게 나서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통일 이전에 사이좋은 이웃이 되자. 끊임없이 남북 상생의 길을 찾아낼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GDP는 북한의 50배가 넘고, 무역액은 북한의 400배를 넘는다. 남북 간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우리의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도 없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면서도 “그러나 누구라도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한다면 단호히 대응할 것이다.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을 강한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 사이 경제력을 비교하거나 국방력을 과시하며 도발에 경고하는 대목이 있었는데도 북한의 즉각적인 반응은 아직 없다. 따라서 작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문 대통령이 메시지를 낼 때마다 반발해오던 모습이 달라질지 주목된다.
또한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판문점선언 등 남북 정상간 합의를 유난히 강조한 북한이 문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강조해온 남북교류협력 제안에 응답할지 여부도 지켜볼 만해졌다.
그동안 길어진 북미 관계 교착 국면에서 북한이 취해온 태도들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 시계에 맞춰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최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강경한 행동을 보인 것은 남한을 겨냥한 것이었다.
북한이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판문점선언에도 포함된 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며 문재인 대통령 얼굴사진을 넣은 대남 삐라까지 제작한 것은 남북 간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는 문재인정부와 여당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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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노동신문은 26일 청소년 과외 교육 교양의 최고 전당이라며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사진을 공개했다.평양 노동신문=뉴스1 |
또 북한은 한미워킹그룹에 대해 지속적인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정부는 한미워킹그룹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속에서도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면제를 신속하게 논의하는 소통 채널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북한은 한미워킹그룹을 ‘친미사대의 올가미’ ‘상전’이라고 표현하면서 남북 합의 미이행의 원인을 미국에 돌리는 대상으로 삼았다.
정부와 여당은 즉각적인 반응으로 북한의 요구에 성의를 보이고 있다. 전단 살포를 주도해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에 대한 압수수색도 단행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한미워킹그룹 해체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등 대북정책을 자문하는 인사들도 비판에 가세했다. 또한 여당 의원들은 종전선언 추진도 주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군사행동 보류 지시 이후 김영철 부위원장이 우리정부의 추후 행동에 따라 남북관계 전망을 달리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햐 것을 볼 때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놓고 장고에 들어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대남 비난공세를 멈춘 지 사흘만에 대외선전매체에만 “미국에 기대서 어리석게 굴지 말라”며 비난을 재개했다. 북한주민이 보는 대내매체에는 이 같은 주장을 싣지 않아 남한에 대한 경고를 거듭 강조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른 한편으론 북한의 대남 숨고르기는 당초 예정된 시나리오에 따르면서도 남측의 태도를 지켜보며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라는 관측도가능하다. 이미 김영철 부위원장은 ‘재고’ 가능성을 경고했고, 북한의 군사행동을 결정할 당 중앙 군사위원회 본회의도 예정돼 있다.
북한의 당 중앙군사위 본회의가 예정된 상황에서 하반기 한미연합훈련 실시 여부가 북한의 도발을 재발시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이 남북 간 9.19 군사합의 파기까지 하지 않은 것도 한미훈련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상호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9.19 합의를 공식 파기할 경우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할 명분도 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전직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27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 보류 지시에 대해 “미군의 개입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며 “미국 정찰기 감시 아래 북한이 실제 무력을 행사하면 미군의 개입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25일 매년 6월25일마다 열던 반미 군중집회를 3년째 개최하지 않았다. 대신 외무성 보고서를 통해 한미훈련을 비난했다. 북한이 앞으로 한미훈련을 강력 반대할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싣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번 하반기 한미연합훈련은 문 대통령의 공약인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과 맞물려 있어 조정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전반기 연합훈련이 코로나19 사태로 축소됐던 상황에서 완전운용능력(FOC) 검증 예정인 이번 하반기 훈련까지 추가로 취소될 경우 전작권 전환 일정은 지연이 불가피하다.
한편,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북한의 최근 강경 행동이 남북 경제협력을 재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나 군사행동 계획 예고라는 충격적인 수법을 쓴 것은 남북경협 재개를 반영한 2018년 9월 평양공동선언 이행을 남한에 압박하려는 노림수도 있었다“고 해석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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