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는 인구수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3대1인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안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새 기준으로 2대1 이하를 제시했다.
"현행 기준으로는 지나친 투표 가치의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투표 가치의 평등은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헌재는 2016년 20대 총선거에 맞춰 내년 12월 31일까지 2대1 편차를 적용해 선거구를 다시 만들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헌재의 이러한 판단과 요구는, 현재 일각에서 제기하는 개헌 논의 그리고 양대 정당 모두가 선언한 오픈 프라이머리와도 맞물려,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현행 선거구에 2대1 인구 편차를 적용하면 인구가 몰려 있는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선 20여 개 선거구가 분구돼야 하는 반면 농촌 지역이 많은 전남·북, 경북 등의 선거구는 10여 개가 통폐합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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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사회시민회의의 '헌재 발 선거구 지긱변동 파장은 어디가지 미칠까?' 긴급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
이처럼 헌법불합치 판단은 일차적으로는 선거구 재획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이다. 하지만 이는 선거구획정권의 소재나 선거구제의 적절성 그리고 헌법 개정 사항인 양원제의 도입 등의 쟁점으로도 연결될 공산이 크다.
투표가치의 불평등 해소 대 인구희박지역 핵심 이익의 보호
선관위 자료를 보면 새 인구 편차 기준에 따른 조정 대상 선거구는 60개가 넘는다. 따라서 선거구 획정 논의가 본격화하면 다른 어느 때보다 여야 정당과 의원들, 지역 주민들 간에 갈등과 대립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독립 선거구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곳이 많은 비(非)수도권 시·도 의원들이나 주민들의 저항이 클 것이다.
현행 소선구제를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서 투표가치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국회의원의 정수를 늘려서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국회의원 정수를 유지하면서 선거구를 재획정하는 것이다.
먼저 국회의원선거법을 제정하는 국회가 선거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려서 헌재의 기준을 맞추려 할 가능성도 있다. 지역구 의원 수를 10명 이상 늘리면 헌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국회는 2001년 헌재가 인구 편차를 4대1에서 3대1로 줄이라고 결정했을 때도 273석이던 의원 정수를 299석으로 늘린 바 있다.
인구를 감안했을 때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숫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은 편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 해결책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점에서 여론의 몰매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해결책으로 보인다. 결국에는 국회의원 정수를 유지하면서 선거구를 조정하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경우 생활권과 관계없이 정치 이해에 따라 시·군, 읍·면·동을 합치고 떼는 게리맨더링이 횡행할 우려도 없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참여하는 민간위원들의 발언권과 독립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구 획정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은 선거관리업무가 선거법원에 주어진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행정부의 일부인 나라에서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고려한다면 지금과 같이 선거구획정관리위원회가 이 일을 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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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헌재 발 선거구 지긱변동 파장은 어디가지 미칠까?' 긴급좌담회 모습. |
더욱 큰 문제는 인구가 조밀한 광역시도에 비해 인구가 적은 도들은 지역의 핵심적인 이익들이 자칫 인구조밀지역의 이익에 압도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나라에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원은 인구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고 상원은 큰 주나 작은 주나 같은 수의 대표를 선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을 고치지 않는 한 상원을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혹시라도 헌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국회를 양원제로 설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양원제를 하지 않고서는 인구희박지역의 핵심 이익을 보호할 방법은 없는가? 그렇지 않다. 소선거구제와 병행하여 광역시도 단위의 대선거구에서 동수의 의원을 선출하면 미흡한 수준에서나마 양원제와 유사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참에 확 바꾸자
이상에서 본대로 투표등가성과 관련한 헌재의 판단은 인구희소지역 핵심이익을 고려한다면 어차피 선거구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참에 소선구제 중심의 선거구제도를 완전히 바꾸는 시도도 고려해 볼만 하다.
현재 양대 정당 모두 다음 선거에서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과거 중앙당에서 하향식으로 공천하던 데서 벗어나 상향식의 공천을 하겠다는 것으로 얼핏 보면 매우 민주적인 방식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픈 프라이머리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현직의원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는 점이다. 실제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채택한 미국의 경우 현직자의 재선 비율이 90%을 상회한다. 정치신인의 등장이 그 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소선거구제 중심의 대표 방식이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하던 시기, 즉 인구도 고루 분포되어 있고 인구이동도 지금보다는 적고 지역적 특성도 뚜렷이 차이나던 시기의 대표방식으로 21세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전국적 대표성을 지닌 의원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한다. 또 일각에서는 소선거구제가 양당 체제를 고착화시킴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이익을 대표하지 못하므로 독일식 정당명부제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이런 주장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선거제도로 채택을 고려할 가치가 있는 것이 라틴 아메리카의 일부 국가에서 사용되는 이른바 sublegenda이다. 이 제도는 투표의 등가성을 보장하면서 오픈 프라이머리, 정당명부제 등을 사실상 포함한 선거방식이다.
하나의 주를 선거구로 하여 각 주(대선거구)에 인구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고 각 정당은 각 선거구에 배정된 의석 수까지 후보를 낸다. 이 때 후보의 서열을 정해져 있지 않다. 선거에서 유권자는 정당이 아니라 개별 후보자에게 투표한다. 투표가 끝나면 각 정당 후보자들이 획득한 표를 합계하여 각 정당에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고 각 정당 내에서는 득표순에 따라 당선이 결정된다.
이 제도는 앞서 지적한대로 투표의 등가성도 확보하고 정당지지에 따른 비례대표도 가능하고 중앙당에서 미리 순서를 정하지 않고 같은 당의 후보끼리도 상호 경쟁하게 하는 오픈 프라이머리의 효과도 얻고 있다. 반면에 이 제도의 치명적인 약점은 정당의 의원에 대한 기율이 약해지는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회운영을 보면 정당의 기율이 너무 강한 것이 문제로 보이기 때문에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책임제 하에서는 대개의 경우 정당의 기율이 그리 강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는 민주당 좌파, 우파 그리고 공화당 좌파, 우파 이렇게 사실상 4개의 정당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내각제 하의 정당처럼 기율이 강하고 국회운영도 정당 중심으로 한다.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가 없으면 국회는 사실상 운영이 불가능하다. 국회의 상임위원회가 상시로 열리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 글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개최한 '헌재 발 선거구 지긱변동 파장은 어디까지 미칠까?' 긴급좌담회에서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