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원칙 서슴치 않았던 재계 거목…세상 짐 벗으시고 영면하소서

   
▲ 이동응 경총 전무
故 이동찬 회장 추도사
 

마포에 있는 한국경영자총협회 건물 앞에는 아담한 크기의 돌에 ‘産業平和’라는 글귀가 새겨진 기념비가 있습니다. 보토의 건물이라면 값비싼 유명작가의 조각품이 있기 마련이지만 평소 검소한 생활로 일관하셨던 회장님께서는 평소 늘 주창해 오셨던 산업평화의 염원을 손수 쓰셔서 크지 않은 돌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경총이 남의 건물에 들어가서 여유 없게 일하는 모습을 늘 안타까이 여기시다가 회장님께서 발 벗고 나셔서 지금의 경총회관을 건립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산업평화의 창달을 위해 더욱더 매진하라는 뜻으로 화려한 장식조각품 대신 산업평화의 기념비를 세워주셨습니다.

우리들은 매일매일 출근하며 그 글귀를 보며 늘 따뜻한 말씀을 주시던 그 모습이 그립습니다. 아무렇게나 턱턱 한마디씩 주시는 말씀들 속에는 깊은 철학과 높은 경륜으로 가득해 듣는 이들로 항상 무슨 말씀을 하시나 귀 기울이게 하셨지요.

   
▲ 故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 됐다.

회장님께서는 정말 정직과 원칙의 기업인이셨습니다. 노동계 대표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재계의 수장, 그러나 그 말씀이 진실과 원칙이기에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지요. 회장님께서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경영계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1987년 6·29 선언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온 사건이었습니다.

노조는 봄에 타결한 임금협상이 무효라며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3,700건이 넘는 노사분규가 발생했습니다. 경영자를 폭행하는 일도 비일비재하였습니다. 회장님께서는 14년간 경총 회장을 맡으시어 최일선에서 노조의 거센 요구를 온 몸으로 막아내며 시장경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셨습니다.

勞使不異를 기본적 신념으로 갖고 계셨기에 정부나 노조에 대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셨고 노조나 정부도 여기에 함부로 토를 달지 못했습니다. 경총회장직은 모든 이들이 떠맡기 싫어들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무려 14년이다 맡으셔서 오늘 노사관계의 기초를 다지셨습니다.

회장님께서는 범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자기 절제와 근검 정신으로 무장된 분이셨습니다. 오죽하면 1992년 출간된 회장님의 자서전 제목 “벌기보다 쓰기가 죽기보다 살기가”였겠습니까? 산을 올라가는 열정만큼이나 산을 내려가는 순리를 강조하시고, 욕심을 버리고 순응하는 데서 조화롭고 포용력 있는 삶의 가치를 강조하셨습니다.

   
▲ 한국경영자총협회 건물 앞 돌에 새겨진 ‘産業平和’ 기념비. 이 기념비의 글씨는 故 이동찬 명예회장이 산업평화의 염원을 기원하며 손수 쓰셨다.

재벌회장이 낡은 슬리퍼를 기워 20년 이상 신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리고 회장님은 그렇게 일군 기업과 재산을 결코 개인이 소유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은 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업”이라며, 스포츠,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수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셨습니다. 경총회장을 그만두시면서도 직원들의 복리를 위해 쓰라시며 큰돈을 보내주셨습니다. 직장은 보람의 일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직원들 하나하나의 손을 잡아주시던 그 크신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더 산업평화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회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회장님의 말씀을 받들어, 모든 기업들이 보람의 일터가 될 수 있도록, 모든 현장에 산업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는 무거운 세속의 짐을 벗어던지시고,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