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전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조성 의기투합…창조경제 선구자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하늘도 내 교실, 땅도 내 교실.
우리나라 첫 어린이박물관학교 교가에 나오는 가사 한 구절이다. 하늘 펼쳐진 어디라도 가서 배우고 맨땅 밟아가며 익히겠노라는 다부진 결의가 느껴진다.

언제나 설레는 야외수업이라는 학생들 로망을 딱 떨어지게 적어낸 멋진 표현이기도 하다. 이 참된 학교는 60년 전인 1954년 경주에서 시작했다. 이 시초가 있었기에 청주 전주 부여 제주 춘천 광주 대구 공주 김해 순으로 풀뿌리 미디어, 문화 교육을 짊어질 어린이박물관학교가 줄줄이 개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들불처럼 번졌건만 역사는 멍투성이였다. 경주 다음에 개교한 부여어린이박물관학교는 경주로부터 50년이 지난 2004년에야 가능했다. 학교는 고사하고 박물관을 미디어와 콘텐츠로 활용하는 어린이교육 자체도 너무 더디고 어려웠다.

경주 이후 20년만인 1974년에 가서야 서울 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어린이 문화재 미술실기대회가 다음 바통을 이어 받았을 정도다. 제대로 된 행사로 기획된 <움직이는 박물관(현재는 찾아가는 미술관)>은 또 훌쩍 넘어 1990년도에 역시 중앙박물관에서 이루어졌다.
 

이처럼 자그마한 역사를 간추려 보니 더욱 더 첫 어린이박물관학교 출현과 60년 역사가 고귀하게만 여겨진다. 마침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지난 11월9일까지 열린 경주어린이박물관 학교 60년 기념 특별전, <학교 밖의 학교, 박물관 : Children and Museums)>이 열렸다. 여기에는 요즘 대중매체 식으로 말하자면 문화융성과 창조경제 전설에 해당하는 두 사람 이야기가 서려 있다.

진홍섭관장(1918~2010)과 윤경렬선생(1916~1999).

이 두 분이 바로 ‘수학여행’과 같은 불후의 문화를 일으키고 이어나가게 한 위인들이다. 동시에 보통은 잘 모르는 위인들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뮤지션과 배우를 무슨 전설이나 국민 OO라 부르곤 하지만 이러한 미디어계, 문화콘텐츠 교육계 선구자, 스승, 일꾼들에 대해서는 몹시 인색하고 기억조차도 못하는 불경을 저지르고 있지 않나 싶다. 전설부터 우선 알아보자.
 

   
▲ 사진 왼쪽 위 안경 쓴 이가 수묵 진홍섭, 오른쪽 아래 두루마기 입은 이가 고청 윤경렬.
수묵 진홍섭 선생은 1954년 당시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을 맡고 있었다. 그는 한국전쟁을 피해 경주로 찾아든 공예가 고청 윤경렬 선생과 의기투합해 선례조차 없던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만들었다. 너무나 암울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고민하였고 그 해답의 하나가 어린이들에게 문화유산을 올바로 가르치는 일이었다고 한다.

아이들로 하여금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여 스스로 문화유산을 지키고 역사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곧 박물관이 해야 하고 어른들이 해야 하고 나라가 해야 할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에 공감하여 초기에는 경주의 여덟 분 교장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이 힘을 합했고 후원 조직인 뒷받침회도 생겨났다.

5000여명의 수료생들이 60년 역사를 채워나갔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어린이 사회교육 효시가 된 이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1899년에 문을 연 미국 브루클린 어린이박물관이 최초이고 한국에서는 1995년 삼성어린이박물관이 나왔지만 경주처럼 학교 밖 학교를 살린 어린이박물관학교는 참으로 가치 있는 선도적 실험이자 창조적 파괴이며 세계적인 혁신이 되어주었다.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60년 역사가 우리 한국사회에 선물해준 가장 큰 보따리는 ‘수학여행’이라는 문화, 전설, 생활사라고 할 수 있다. 경주에 찾아온 수많은 한국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접한 문화유산 이야기, 황금의 나라 신라 예술과 같은 역사문화콘텐츠 자료가 먼저 모이고 정리되고 편집되고 제대로 펴낸 발신지가 바로 이 학교였다.

천년 신라문화를 정돈하고 어린이 눈높이에서 알리는 <<경주학(學)>>을 누구 다른 도움도 없이 스스로 감당해냈기에 우리 모두가 아는 학교 밖에서 배우고 익히는 국민 수학여행이 가능했다.
 

미디어 쪽으로 보면 어린이 기자단과 당시 첨단 기자재였던 슬라이더 등을 통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 미디어 활용 교육)이 눈에 띈다. 50~ 60년대 그 힘든 시절, 경주 문화유산 사진을 큰 화면에 띄우는 슬라이더 영사기가 신기해 어린이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전한다.

어린이들과 함께 진홍섭과 윤경렬은 환등기를 써서 직접 손으로 만든 슬라이더를 보여주고 영사기를 빌려와 활동사진(동영상)을 틀어 주기도 했다. 어린이들은 진홍섭선생님에게서 역사 강의와 문화유산 해설을 듣고 공예가이자 마지막 신라인이라고 불렸던 윤경렬선생님과 함께 진흙을 매만지며 신라 토우 등을 재현하는 체험 학습에 몰입해갔다. 미디어와 교육, 예술 체험이 어우러지는 살아 있는 연구와 학습이 거기에 살아 있었다.
 

마치 미디어 야학, 역사문화콘텐츠 천막교실과도 같은 이미지가 솟아나는 이 어린이박물관학교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뜻을 안겨주고 있다. 지금 같이 혼돈과 과잉, 낭비와 공격성으로 얼룩져 있는 미디어계에 참으로 신선한 한 줄기 바람을 실어 보내준다. 미디어가 가진 진정한 가치는 새롭고 귀한 경험을 통해 제한되었던 역사적 시간, 공간을 넘나들게 해주는 마성적인 힘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 때 그 현장이 ‘media paradiso’, 미디어 천국이었을 테니까.
 

혹독한 전쟁 참사가 훑고 간 60년 전 경주분관, 경주여중, 금관고 등지를 떠돌아다니며 이어나간 어린이박물관학교 수업 때마다 영사기 주위에 몰린 아이들 눈에 비친 석굴암이며 다보탑, 석가탑, 금관은 어떠했을까? 미디어를 보고 경주 남산이며 황룡사지를 찾아 행진하며 소풍 나선 아이들 까만 생머리에 이는 가을 들녘 바람은 또 어떤 촉감이었을까?
 

자랑스러운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 위대한 60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역사를 세우고 미디어, 콘텐츠 교육을 개척한 선구자 수묵 진홍섭과 고청 윤경렬 두 위인을 우러러 본다. 이 분들이야말로 이 땅의 참 지식인이다. 참 행정가요, 교육자요, 예술가이다. 이를 안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선배들 이야기와 역사를 널리 알리고 키워나가는 창조적 미디어 교육의 실천이 될 터이다.

스타나 유명인을 전설로 부르는 것에 너무 익숙한 지금 시대에 딱 들어맞는 대체 가능한 위인들을 더 이상 홀대할 수 없음이다. 이 분들이 어린이들과 어울려 천년왕국에서 백년대계를 꿈꾸어 나간 전설을 이어 받아야 할 때다.
 

백년대계, 아니 미래 60년을 위해 우리 미디어계는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한중 FTA 뉴스를 붙들고 온통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장밋빛 전망으로만 합창하는 우리 미디어계를 보면서 새삼스레 마음을 다잡아 본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