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 피소와 관련해 고소인 전직 여비서 A 씨를 놓고 '용어 프레임'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후 여권은 지금까지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쳐왔지만, 정작 이번 박원순 시장 사건이 터지자 피해자에 대해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을 써서 그렇다.
피해자와 피해 호소인은 어감부터 다르다. 피해자의 카운터파트는 가해자이지만, 피해 호소인은 워낙 생소한 단어라 사람들이 접해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단어다.
박 시장이 몸담았던 더불어민주당과 서울시는 이번 사건에서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5일 기자단에게 돌린 문자에서 '언급된 여성'이라는 표현을 썼고, 16일 문자에서는 피해 당사자를 지칭하지 않았다.
여성단체들과 일부 언론에서는 '피해 호소인' 대신 '피해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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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에서 영정 사진이 놓여있다./사진=서울시 |
민주당의 공식적 입장은 "박원순 사건 수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기 때문에 법적 자기방어할 가해자가 없다"며 "그래서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일각에서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법조계는 일련의 논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놓고 보면 '고소인'이라는 용어가 가장 적법하지만 '피해자'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 없다는 설명이다. 단, 피해 호소인을 쓰더라도 명예훼손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용어 프레임' 문제가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라는 박원순사건의 본질을 뒤집기 어렵고 사소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이번 논란에 대해 미디어펜과의 인터뷰에서 "현 상황을 정확히 보자. 고소인이 고소만 했던 상황에서 사건이 종결됐다"며 "형사사건 법정에서 쓰이는건 보통 피해자, 피고인이라는 말이지만 이번 사건은 법정까지 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피해자를 쓰는 것은 당연히 문제 없지만 엄밀히 따지면 가장 맞는 표현은 고소인"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고 박원순 시장은 피고소인 신분이지 (가해가)확정된 게 아니다"라며 "현 상황은 결론난 게 없고 밝혀진 사실이 아직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사건을 다수 다뤄온 한 법률사무소의 장모 대표변호사는 본지의 취재에 "이해찬 대표에게 (한 시민단체가)명예훼손를 걸었지만 '피해 호소인'을 썼더라도 명예훼손을 적용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 호소라는 용어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여지기 어렵다. 피해 호소인이 일반적으로 쓰는 표현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문제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그는 "사실 피해 호소인이든 피해자라는 말이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사소하다"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된 마당에 2차 가해 및 서울시 비서실 내부의 방조·묵살·은폐·유출 의혹 등 복합적인 나머지 사건을 다루기 위해선 고소인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대형로펌 소속 한 법조인 또한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피해 호소인 용어와 관련해, 영미권에서는 재판에서 피해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 Alleged Victim(피해자 추정인)이라는 용어를 쓴다"며 "어떤 용어를 쓰더라도 사건의 실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굳이 지금 이 상황에서 '용어 프레임' 문제가 불거지는건 한쪽에서 지금까지 써왔던 용어, 피해자를 쓰지 않고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보면 의도가 뻔히 보이는 낮은 수(피해 호소인)를 쓰기 때문"이라며 "일반적으로 고소인 혹은 피해자로 지칭하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향후 서울시와 민주당이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고수할지 주목된다. 피해자-가해자, 고소인-피고소인 양측 모두에게 억울함이 없는 방향으로 공정하게 진상이 규명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