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통제하는 의료 수가가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규정하고 있다. 병원 경영을 비롯해 매년 배출되는 의사들의 전공 선택까지. 전문가도 아니고 공무원 주도로 가격이 매겨지는 사회주의 체제나 마찬가지인데 고작 의대생을 매년 400명씩 늘린다고 지역간 불균형이 바뀔게 있겠나. 구조의 문제다."
서울 용산구에서 개원의로 있는 김영준 원장(40)은 23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안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는 "1년에 300명씩 10년간 총 3000명의 지역의사가 배출되지만 이들은 면허취득 후 의무복무기간 10년을 채우면 대부분이 수도권으로 갈 것"이라며 "순전히 인센티브의 문제다. 어디서 어떻게 일할지는 그들의 선택인데 애초에 26개 전문임상과목 중 3~4개 과목으로 정해져 의대에 입학하는 것도 금시초문이고 이를 통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도 뭘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의대생이 인턴, 레지던트를 하고서 지방에 개원해 봉직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정도로 분명한 유인을 제공하는 것 밖에 없다"며 "의사 수만 늘리겠다고 만사형통이 아니다.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싶다면 고되고 힘든 전공과목과 격오지 근무에 보상이 커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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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한의사협회는 총파업을 예고하며 반발했지만 대한병원협회는 환영하는 등 의료계 입장은 갈렸다./사진=연합뉴스 |
23일 당정 협의로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에 의료계 입장이 갈리고 있다. 한시적으로 10년간 4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려 뽑기로 했지만 본질을 외면한 '눈 가리고 아옹'이라는 비판에서부터, 정교한 보완책을 마련해 취지를 살리자는 환영까지 가지각색이다.
당정 계획에 따르면, 향후 의대생 추가 정원 300명은 10년간 지역 중증 필수의료 분야에 의무적으로 복무하게 된다.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 여러 명을 취재해보니 공통점은 하나였다. 심평원이 결정하는 의료수가의 조정 없이 의사들을 강제적으로 어느 전공과목으로 가거나 특정 지역에서 일하게 하는 것은 단기적 처방에 그친다는 것이다.
서울 대형병원의 한 소아외과 전문의(45)는 본지 취재에 "고3 수험생들이 의대 입학할 때부터 중증외상외과, 흉부외과, 소아외과 등 중증의료분야로 전공을 정해놓겠다는 것인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지역의사로 들어간 의대생이 복무 의무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병원 수련을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이는 의사로서의 능력을 대폭 키울 기회를 전혀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사 수급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도 문제"라며 "각 지역 병원의 강화, 재정지원 없이 의료의 질이 떨어질 건 분명하다. 의무적으로 복무기간과 전공과목에 얽매인 의사와 자유로이 원하는 수련을 받아 능력을 키운 의사 중에 누가 더 환자를 잘 보겠느냐"고 지적했다.
의료인력을 고용해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측 입장은 의사들과 다소 상이하다.
대한병원협회는 "의사 인력의 증원 및 확충은 국민의 건강권을 수호하고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가장 기초적이고 절대적인 요소"라며 "10년간 연 400명 확대계획은 가까운 시기에 적정인력까지 충원되기에 부족해 아쉬움이 남지만 정교한 세부 계획수립과 신속한 정책집행으로 의사인력수급 문제가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헌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자체와 함께 의사들이 내 지역에서 일하기 위한 여건을 준비할 계획"이라며 "공공의대 설립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당정 결정에 따르면, 의대 정원은 2022학년도부터 400명 늘고 지역의사는 2030년이 지나야 본격 배출될 전망이다. 의대생 확대가 단기적 처방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정착해 전국 각지의 '의료 공공성' 확보에 기여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