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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민 미디어펜 산업부장 |
[미디어펜=김영민 기자]"장고 끝에 악수 난다." 너무 깊게 오래 생각하다 보면 국면의 흐름을 망각하고 판단력이 흐려져 악수를 둘 수 있다는 것으로, 바둑판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삼성 합병·경영승계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가 나온지 한달이 지났다. 검찰은 아직도 불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만 끌고 있다.
검찰의 장고는 바둑판에서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묘수를 찾거나 방어하는 깊은 고민은 아니다. 하지만 고민이 길어지면서 여당 압박, 시민단체 목소리 등 여론에 떠밀려 자칫 정치적 결론을 내는 악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검찰이 한달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일부에서는 수사심의위 권고를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여권에서는 수사심의위를 부정하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의 전횡을 막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만든 장치다. 2018년 도입 당시 검찰 자체 개혁의 산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입맛에 맞지 않으니 다시 밷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만약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를 무시한다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이자 자가당착이다.
사회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사심의위는 결국 민심이나 다름 없다. 이번 이 부회장 관련 수사심의위는 각계각층 13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는데 이중 10명이 수사중단과 불기소 의견을 냈다. 압도적 민심이었다.
수사심의위원들은 사법제도에 대한 학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덕망과 식견이 풍부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수사심의위원은 후보 250명 중 15명을 무작위 추첨하는 방식으로 선정한다. 선정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는 만큼 한쪽에 유리한 사람들로 채워지는 부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특히 양창수 수심위원장은 사건 피의자와 오랜 친구관계라는 이유로 직무 수행을 스스로 회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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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6일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에 위치한 전장용 MLCC 전용 생산 공장을 찾아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이렇게 선정된 수사심의위원들의 압도적인 결정을 검찰이 따르지 않으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검찰은 일부의 기소 강행 여론에 휩싸여 민심을 무시하고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그동안 8차례의 수심위 권고를 검찰이 모두 수용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검찰은 한달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장고를 하고 있다.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르자니 30여명에 대한 100여차례 소환조사, 50여차례 압수수색 등 무리한 수사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기소를 강행하자니 민심을 무시하는 것이니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자존심보다 민심과 경제를 택해야 한다. 수사심의위의 권고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와 같다. 그동안 8차례의 수심위 결정에 대해 기소든 불기소든 검찰은 이를 존중해 왔다. 검찰이 이 부회장 불기소 권고를 무시한다면 수사심의위는 존재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삼성의 미래와 국가 경제를 고려한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 삼성은 이미 2년 전부터 '4대 성장사업'을 정하고 미래 먹거리 찾기에 본격 나서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다.
한국GDP의 16%. 국내 수출의 20%, 시가총액 357조원 등 삼성을 따라다니는 타이틀이다. 그만큼 삼성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선장이다. 선장이 수년동안 수사받고 재판을 받는 상황에서 삼성이 제대로 항해할 수 있을까.
검찰은 지금이라도 어떠한 정치적 이슈나 막연한 자존심을 배제하고 민심과 경제를 위해 수사심의위 권고를 수용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미디어펜=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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