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는 정글의 법칙보다 교환학적 경쟁의 가치 지녀

현대인들은 다양한 불행을 모두 경쟁의 탓으로 돌린다. 많은 이들은 경쟁의 본질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폄하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불행의 원인이 된 경쟁은 다름 아닌 시장경제에서 나왔다고 단정하여 시장경제를 비판한다. 최근 자유경제원은 경쟁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경쟁의 의미 되새기기 위해 '경쟁은 아름답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에 미디어펜 경쟁에 대한 편견을 깨고 경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경쟁은 아름답다'를 일부 발췌하여 연재한다. 아래 글은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가 바라본 경쟁의 의미와 기능이다. [편집자주]

생물학적 경쟁과 교환학적 경쟁

경쟁은 거래 상대방에게 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참여자를 배제하려는 대항적 행위를 말한다. 영어로는 rivalry나 emulation으로 표현할 수 있다. 경쟁에 대한 오해는 바로 다른 참여자를 배제하려는 대항적 행위의 의미와 그 결과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사회의 경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인간과는 다른 동물 사회의 생물학적 경쟁(biological competition)과 인간 사회의 교환학적 경쟁(catallactic competition)의 차이를 살펴봄으로써 명확히 할 수 있다.

생물학적 경쟁은 동물들이 자연이 제공하는 한정된 먹이를 둘러싸고 다투는 행위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갈등의 싸움이다. 그래서 동물 사회에서 경쟁은 영합(零合)의 게임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비난하며 즐겨 사용하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다. 동물의 세계에는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한정된 먹이를 늘리고 서로 간의 교환을 통해 갈등을 조화로 해결할 수 있는 협동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이다.

   
▲ 인간 사회의 교환학적 경쟁에서 노동 분업을 통한 협동으로 생산성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상징이 바로 기업이다. 어느 기업이든 상호교환을 통해 재화 공급을 늘려 전체의 몫을 증대시킨다. 바꿔 말하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전체의 경제적 몫을 증대시키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곳은 삼성그룹이다.

반면에 인간 사회의 교환학적 경쟁에서는 노동 분업을 통한 협동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을 늘려 전체의 몫을 늘리고 상호 교환함으로써 갈등을 조화로 해결한다. 즉 자연이 준 먹이만을 둘러싼 싸움이 아닌 협동을 통해 생산을 증가시켜 몫을 둘러싼 갈등을 조화로 해결한다.

패자는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차선(次善), 차차선의 위치로 이동한다. 그래서 인간 사회의 경쟁은 영합의 게임(zero-sum game)이 아니라 양합(陽合)의 게임(positive-sum game)이다. 경쟁의 최종 목적은 승자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점이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특징이다. 치열한 경쟁이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거래 상대방과 협동하기 위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자원을 다른 사람보다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정(process)으로서의 경쟁과 상태(state)로서의 경쟁, 완전경쟁의 의미

경쟁은 시장 과정으로서 ‘경쟁하다’를 뜻하는 동사적 의미다. 즉 가격을 결정하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달성되도록 하는 힘(force)을 의미하며, 물리학에서의 중력(gravity)과 같은 것이다. 시장 과정이란 시장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이 각자의 행동을 사회적 협동이라는 요구에 맞춰 나가는 것을 말한다.

경쟁 개념이 의미가 있으려면 ‘경쟁하다'라는 동사와 관련되는 상업 행위와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는 스미스(Smith), 캉티용(Cantillion), 튜고(Turgot), 흄(Hume), 스튜아트(Steuart), 리카도(Rocardo), 밀(Mill) 등이 경쟁을 시장 과정으로 파악한 바와 같다.

반면에 ‘상태’를 의미하는 경쟁은 사물의 특정 상황을 의미하는 것인데 대표적인 것이 완전경쟁이다. 이는 물리학에서의 완전 진공(perfect vacuum) 상태와 유사한 개념이며, 경쟁의 최종 결과가 무엇일까에 대해 의문을 가진 꾸르노(Cournot)가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쟁은 특정 ‘상태(state, situation)’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완전경쟁은 각 기업의 생산물이 산업의 총 생산량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어서 그 생산 규모가 시장 가격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경쟁의 효과가 한계에 도달한 상태를 의미한다. 즉 완전경쟁은 더 이상 경쟁적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서 서로 경쟁하는 많은 기업들이 산업에 자유롭게 진입하여 경쟁한 결과, 더 이상 경쟁하지 않는 수많은 기업들이 존재하는 상태다.

꾸르노가 시장 참가자의 수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시장구조라는 주제에 대해 명시적으로 설명한 바는 없지만, 이후 경쟁이 시장 구조와 결합되었고,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완전경쟁을 하나의 시장 구조로 부각시켰다. 즉 제본스(Jevons)나 에지워드(Edgeworth) 등에 의해 경쟁과 시장구조가 결합되었으며 클라크(Clark)와 나이트(Knight) 등에 의해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그 결과 경제학자들이 경쟁이 완전히 끝난 상태를 마치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과정처럼 논의하는 잘못을 범하게 되었다.

특정 상태를 뜻하는 완전경쟁은 ‘경쟁하다’를 뜻하는 동사적 의미의 경쟁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 즉 완전경쟁이 전제하는 가정의 비현실성에 따른 실현 불가능성도 문제지만 ‘경쟁하다’를 뜻하는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는 데 완전경쟁 개념의 문제가 있다.

기업이 초과공급이나 초과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각각 가격을 낮추거나 높이는 것은 시장 과정으로서의 경쟁이지만 완전경쟁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행위가 된다. 또한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사려고 할 때 다른 소비자를 배제하기 위해 가격을 더 높게 지불하는 것은 시장 과정으로서의 경쟁이지만 완전경쟁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행위가 된다.

독점과 독점적 경쟁 등도 시장 과정이 아니라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독점은 한 기업을 산업으로 식별함으로써 산업 내 경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고 독점적 경쟁은 모든 시장에는 경쟁적 요소와 독점적 요소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가하여 설명하려는 것이지만, 더 이상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