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자유주의 입문서가 세상에 나왔다. 자유주의자 33인과 자유경제원이 세상을 보는 올바른 관점을 심어 줄 '나를 깨우는 33한 책'(도서출판 백년동안)을 출간했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와 복거일 소설가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엮은 '나를 깨우는 33한 책' 1부에서는 자유주의와의 만남을, 2부에서는 바로 보는 대한민국 역사를, 3부에서는 자유주의 거울에 비친 세상을, 4부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번영을 이루었나를 소개한다. 미디어펜은 자유주의 전파의 일환으로 <나를 깨우는 33한 책>중 부별로 일부를 발췌하여 총 4번에 걸쳐 연재한다. 아래 글은 2부 ‘바로 보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이 저술한 내용이다. [편집자주] |
『건국과 부국』(김일영 지음, 기파랑 발행, 2010)을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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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재조명
광화문에 가면 교보빌딩이 있다. 불과 23층이지만 거대하고 우람하다. 광화문거리를 빛내는 건물 중 하나다. 1980년도에 지어지고 2011년에 리모델링된 34년 된 건물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비판할 점도 수두룩하다.
주변 경관과 조화롭게 자연친화적으로 짓지 못했다는 것부터, 광화문의 상징적 건물이라면 보다 한국적 미를 살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은 물론, 예술적 감각도 없이 만들어졌다는 등 건물에 대한 비판이 한도, 끝도 없을 수도 있다. 가만히 듣다보면 언뜻 그럴 듯하다. 비난하기는 쉽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에 지은 건물을 놓고 지금 시각으로 비난할 때 그 비난에서 벗어날 건물은 하나도 없다. 특히 건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지어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비판은 더 가혹하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책임지지도 않는다. 짓기는 어려워도 비판은 쉬운 것이다.
그러나 건물 짓는 과정에 수반되는 힘겨운 상황이나 건설과정에서 기업과 건설자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그런 헌신에 감사를 표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철들었다는 이야기다. 젊은 시절 나도 비판에 능했고, 비판이라면 일가견이 있었다. “우리 사회는 왜, 이 모양인가?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 수준인가? 정말 이것 밖에 안 되나” 남을 비난하고 사회를 비판하면 할수록 내가 더 대단하다는 착각도 들었다.
비판 대상도 전 방위적이었다. 국가지도자에서부터, 나라의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정부의 각종 정책과 주변사람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내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그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아 보였고, 남들보다는 내가 더 주도적 지위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망상으로까지 연결되던 것이 철없던 시절의 나다. 물론 지금도 그런 식의 사고를 다 털어내진 못했다. 인격의 한계로 평생 못 털어내고 죽을지도 모른다. 건물 짓기는 어렵지만 비난하며 부수기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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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건물 짓기에 수고한 목수들이었다. |
건물 짓기는 어렵지만 비난하며 부수기는 쉽다
세상 일이 하나같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직업을 갖고 일도 해보고, 가정도 꾸려나가면서부터다. 생산적 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일수록 남에 대한 비난은 더 무책임하고 가혹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들이 힘겹게 만들어 놓을 것을 비판하며 “함께 나눠먹자.”는 논리를 구사하는 것도 하나의 직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젠 축구경기 중계를 볼 때도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고, 무엇을 시도했지만 잘 안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아나운서나 해설자가 좋다. 내가 미숙했을 때는 화려한 언변으로 코치역할을 대행하는 해설자가 당장 축구감독이 되었으면 하고 안타까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치 자기는 전지전능한 것처럼 말하면서, 이러저러하게 하면 잘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고 타박하는 해설자가 이제는 정말 싫다. 그가 해보면 그 반도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일영의 『건국과 부국: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재조명』은 그런 책이다. 부정과 비난의 역사가 아니라 긍정과 계승으로의 역사를 강조한다. 우리 현대사를 재구성하면서 “그것 밖에 못했냐!”고 타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책이다. ‘부정과 지우기’라는 시각이 아니라 현실이란 바탕에서 ‘대한민국의 탄생과 나라 만들기(nation-building)’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악다구니를 쓰거나, 우리 대통령들은 하필 다 그 모양이냐며 비난의 화살을 마구 쏘아대는 대부분의 학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1945) 후 수많은 독립 국가들이 출현했지만. 대한민국보다 더 훌륭한 역사를 만들어낸 나라가 단 하나라도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1948년 건국 이후 30년간 대한민국이 만든 모델과 성취보다 더 훌륭한 대안이 되거나, 더 성공한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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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경제원 주최로 11월 4일 홍대 영삼성라이프 카페에서 열린 <나를 깨우는 33한 책> 출판기념회 포스터. |
비판은 쉽지만 건물 짓기는 매우 어렵다. 더구나 건물을 지어본 경험도 없던 목수가 건물을 지어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도전이다.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태극기를 내걸고, 민족사 처음으로 민주공화국 체제의 ‘나라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1392년 조선 건국 이래 무려 550여년 만에 누구도 해 본 적이 없는 근대국가(modern state)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구나 36년간의 일본 군국주의 식민체제로 자치를 경험해 본 적도 없었고 근대국가를 운영해 본 경험은 더더욱 없었다. 경험해 본 것은 봉건체제와 군국주의체제뿐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다시 봉건왕조체제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인구 대부분(71%)은 농업에 종사하는 전형적 농업 국가였고, 미국 원조로 연명해야했으며, 경제상황과 소득수준은 참혹했다. 광복을 맞자마자 서로가 신생국의 권력을 차지하겠다며 정당과 지도자가 난립했고, 서로가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건국과 부국』을 통해 김일영은 무경험과 혼돈의 길을 걸으며 나라를 만들어야 했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성공 국가’의 ‘실패한 지도자’라는 궤변에 도전
더구나 한국은 주변의 대다수 국가들이 가야했던 공산주의의 길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공산주의의 길은 우리 민족이 일본 전체주의에서 공산 전체주의라는 파멸과 질곡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근대 국가를 만들기는커녕 공산주의가 유라시아대륙 전역으로 쓰나미 같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를 막아내기도 힘겨웠던 현실이다.
우리도 주변 국가들처럼 공산체제로 가야 한다는 세력이나 좌·우 합작으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를 반반씩 합친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세력에서부터, ‘차라리 일제시대가 더 낫다.’는 논리까지 횡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자유민주적이고 자유시장적 체제를 만들고자 한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은 외롭고 힘겨운 사투(死鬪)를 전개한다. 공산전체주의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내면서도 근대적 자유민주적 번영사회를 동시에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이승만은 한반도가 다시 후진적 대륙문명으로 가면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근대문명과 한반도의 결합을 일관되게 추진하여 성공시켰다. 중국과 러시아 등 당시 한반도와 국경을 함께하고 있는 대륙문명은 낙후된 봉건문명이거나 공산주의적 전체주의였다. 5000년 역사를 함께 했던 중국이나 또 다른 전체주의인 소련의 길을 거부하고 서구문명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길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승만은 전체주의에는 일본 군국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다. 소련 공산주의가 훨씬 더 문명유린적이고 자유와 민주에 반한다는 것을 뼛속 깊이까지 잘 알고, 경험했던 지도자다.
봉건도 아니고, 식민도 아니며, 공산주의도 아닌 문명의 길을 개척하며 새로 출발한 대한민국은 건국이라는 집짓기에 나선 것이었다. 반봉건, 반제국, 반공산주의라는 건국투쟁으로 다른 신생국과는 전혀 다른 대한민국이란 집을 지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날 대한민국과 다른 신생독립국들과의 차이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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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년 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당시 기념식 전경. |
이승만 시대가 대한민국이 달려가야 할 철길을 닦는 시기였다면 박정희 시대는 기관차와 열차를 만들어 그 철길 위로 달려 나가는 시기였다. 집짓기가 끝나자 살림을 마련했고 먹고 입을 것을 만들어 번영의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농업국가를 넘어 산업국가 시대의 대한민국이 철강과 자동차강국이 되고 제3의 정보사회시대에 반도체와 IT강국이 되면서 삼성, 현대・기아자동차와 LG, POSCO가 세계를 누비게 된 것은 박정희 시대가 쌓아놓은 땀과 눈물 때문이다.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간 분들께 빚을 지고 있고, 그런 토대를 딛고 우리 모두 더 나은 삶과 직업을 추구하며 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언제나 ‘살기가 어렵다.’고 누구나 푸념하지만 지난 60년간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모든 통계로 다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만큼 삶의 질(quality of life)의 상승이 있었던 민족은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세계적인 성공국가의 모델이 된 대한민국에 실패한 지도자만 있다고 하는지.
『건국과 부국』은 근대적 문명과 담을 쌓고 폐쇄와 은둔으로 치달았던 나라가 글로벌 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의 역동성을 분석한다. 어떻게 대한민국이 전자, 철강, 기계,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중화학공업의 강국으로 가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다른 신생독립국들과는 전혀 다른 길이기도 했다. 한국은 4.19 민주혁명에 이어 5.16 군사혁명으로 거듭나며 산업국가를 통한 민족웅비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농업국가가 세계적 산업국가로 가게 되는 발전국가(development state)의 형성과 변화과정을 설명한다. 번영국가를 향한 민족적 열망이 박정희 시대를 만들고 그런 예외적인 성공이 수반한 위기가 곧바로 1972년 이후 전개된 ‘유신(維新)’이라는 권위주의 체제로 귀결되었는지 보여준다. 성공이 새로운 위기와 과제를 만들었고 그 위기와 과제를 극복하며 다시 성공의 길을 찾아나갔다는 것이다.
긍정과 계승의 역사인식을 갖추자
다시 돌아보면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와 민족의 성지(聖地)를 만든 나라다. 그만큼 건국 이래 60여 년간 빛나는 길을 만들고 달려온 나라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넘어야 할 고비들이 있고, 그 고비마다 주어진 과제를 잘 넘어서야 함을 김일영 교수는 잊지 않는다.
특히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극심한 ‘체제선택’의 전쟁과 전투가 펼쳐졌던 나라였고 그 문제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사회”라고 평가한다. 그렇기에 전혀 다른 체제를 지향하는 세력에 맞서 대한민국 체제선택의 문제를 완결지으면서 ‘발전국가’ 모델을 더 성숙시켜야 하는 다중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강점이었던 발전국가를 폐기하기보다는 국가도 강해지고, 동시에 시장과 사회도 강해지면서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제한적 발전국가’ 모델을 마지막으로 제안한다.
결국 『건국과 부국』에서 그리려 했던 것은 수많은 한계와 어려움 속에서 쌓아올린 대한민국과 우리 아버님, 어머님의 삶의 궤적이다. 미화할 것도 없고 비하할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국가건설과 번영사회 만들기’ 과정이다. 그리고 부모세대가 만든 것을 부정하고 지우려고 해서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대한민국 역사를 지우고 부정하려는 좌파 수정주의에 맞서서 오히려 극복하고 교훈으로 만들어 미래의 토대로 삼자는 긍정과 계승이란 역사인식의 틀을 견지한다. 2009년 김 교수가 49세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그가 규명하고자 했던 것은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다.
건물 짓기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대안도 없이 비난하고 부정하기보다는 계승하고 더 훌륭한 건물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몫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