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드라마 제작 삼화네트웍스 작품…사회변화 신호탄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노후소박 또는 상후하박.
요즘 우리 사회가 패 갈리는 두드러진 양상이다. 대략 나이 50을 기점으로 시니어들은 후덕해지는 반면 그 아래 청, 중년 세대들은 날로 궁핍해지는 모양새다.

노소(老少)에서 노후소박인 듯하고 사회적 위계질서에서 보면 상후하박으로 뭔가 쏠려가는 분위기다. 이런 동향을 잘 드러낸 사회상이 KBS 2 주말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펼쳐지고 있다.
 

기본 줄거리는 이렇다. 홀아버지로 두부 가게를 하면서 삼남매를 어렵게 키워 온 아버지(유동근 분)는 자식들에게 늘 치이며 산다. 자식들은 슈퍼 갑, 부모는 종살이쯤으로 몰아가다 일대 반전이 터진다. 까칠한 의사 장남이 부유한 처가 위세를 업고 허름하지만 평수 좀 되는 아버지 이층집이며 딸린 두부가게까지 당장 물려달라고 한 게 스파크를 튀겼다.

어차피 유산인데 미리 쥐어주면 빌딩 올려 아버지께 아파트도 구해드리고 임대료로 용돈도 챙겨드리겠다는 장남의 빅딜에 누나와 남동생이 먼저 반응했다. 시누이와 시동생이 새 빌딩 지분을 장남에게 모두 몰아준다면 5억 원씩 주겠다는 며느리(손담비) 빅딜 제안이 단박에 먹혀든 것.

늙으신 아버지도 위하고 당장 현금도 거머쥐겠다는 이런 합리와 명분은 이내 김칫국이 되고 말았다. 아들 딸 앞에서 어깨 한 번 제대로 못 펴던 자식바보 아버지가 판세를 갈아엎으면서. 의대 공부시킨 장남 2억 원, 노처녀 신경질만 부리는 장녀 1억8천, 욱질 사고뭉치 막내아들 1억3천 정도씩 갚으라는 불효소송을 걸어버렸다.

드라마에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월급들 가압류 들어가고 소지품 차압 딱지 붙고 동거하는 딸과 막내아들은 월 30만원씩까지 청구 당해 가출 빙자 찜질방 의탁까지 하게 된다.
 

이 유쾌 씁쓸한 드라마는 우리나라 가족 드라마 제작산업의 역사 삼화네트웍스 콘텐츠다. 1980년 삼화 비디오 프로덕션으로 시작했으니 어느덧 34년여를 버텨온 우리네 문화사이기도 하다. 1995년 KBS 주말연속으로 나온 「목욕탕집 남자들」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외주 제작에 눈을 돌리면서 품었던 의심을 한 방에 날려버린 대박이었다.

맥을 이어 「엄마가 뿔났다」, 「솔약국집 아들들」, 「참 좋은 시절」 같은 대표작들을 만들어왔다. 2012년에는 방송작가 대모 김수현과 손잡고 종편 JTBC 개국 1주년 기념드라마 「무자식 상팔자」까지 내놓아 한국과 한류를 대표하는 가족 드라마 프로덕션 명가로 입지를 굳혔다. 
 

   
▲ '불효소송'이란 소재로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맛을 던져주고 잇는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방송 캡처
이 정도 되는 전통의 삼화네트웍스가 현재 시청률 1위(주말극 부문, 11월 16일 29.3%, 11월 9일 34%, 닐슨코리아)를 달리는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던진 승부수이자 반전 카드인 ‘불효소송’은 모처럼 접하게 되는 중요한 이슈 메이커다.

흔히들 예술이나 드라마 같은 대중 통속 콘텐츠도 사회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강력하게 이번 ‘불효소송’이라는 평범한 연속극 소재 하나가 우리 사회 체질 변화를 알려주는 정밀 바로미터로 다가오고 있다.
 

우선 세대 간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역시 KBS가 하는 부부 막장 드라마 「사랑과 전쟁」이 횡축인 남녀 싸움을 보여준다면 이번 「가족끼리 왜 이래」는 세대를 오르내리는 종축의 노소 대결을 설정하고 있다.

전통 주제였던 고부갈등이나 부자지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모녀지간 엘렉트라 콤플렉스 같은 심리 전쟁과는 종류가 다른 경제주의, 경제 갈등, 경제 투쟁이 노출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확대하면 부모 세대는 그들끼리 뭉쳐 위안을 얻고 자식 세대는 또 그들대로 항거하는 구도를 드라마 한 편이 영상으로 명확하게 원 샷으로 설명해주는 격이다.
 

그 다음 중요 대목은 가족까지도 무력화시키는 겁나는 개인주의다. 물론 삼화네트웍스는 상습적으로 극적 효과를 위해 휴가 통보하는 엄마, 자식 이기는 부모, 젊은 자식이나 며느리, 사위보다 더 멋있고 매력적인 부모 세대 캐릭터들을 애용해왔다. 방영중인 「가족끼리 왜 이래」도 기본 구도는 엇비슷하다.

하지만 이번처럼 아버지가 마이 웨이를 전격 선언하고 창조적 파괴를 해보인 경우는 매우 센 편이다. 한국 아버지 대명사 최불암 유형이 종언을 알리고 새로운 차세대형 아버지 모델로서 ‘불효소송’과 마이웨이를 내건 유동근 캐릭터가 세대교체를 하는 순간이다.

극중에서 유동근이 ‘불효소송’으로 자식들에게 한 방 먹여놓고 노래 <아빠의 청춘>에 맞춰 막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이게 바로 모두가 개인주의로 돌아서기 시작한 세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메타포가 아닌가 한다. 부모도 자식으로부터 독립하는 새로운 전 방위 개인주의. 경제가 나빠지고 불투명, 불확실성이 극심해지는 요즈음 가족들도 각자 알아서 개인이 살아가야 하는 절대고립과 고독이 득세하는 예감이 깃든다.
 

한 가지 더 신경 쓰이는 지점이 있다. 노친네 꼰대와 응석받이 철부지들 사이 감정싸움이다. 극중 그 가족 맏딸 차강심(김현주 분)은 이런 내레이션을 한다. “먹고 사는 게 바빠서 나 강재 달봉이 모두 아버지 생일도 못 챙겼다. 그건 아버지 무시한 게 아니라 열심히 살려고 기를 쓰다가 그렇게 된 거다. 세상은 인정사정없지만 아버지는 언제를 우리를 봐주는 사람이니까"라며 울부짖는다.

그렇게까지 호소하지만 ‘불효소송’은 즉각 취하되지 않고 지식도 아버지에게 최후통첩을 해댄다. 꼰대일 뿐이라는 한쪽 생각과 철부지 응석은 그만 두라는 다른 쪽은 이렇게 계속 치고 받는다. 이러다 부모 자식 세대가 맞서고 386세대와 88만원 세대가 불꽃 튀기고 노년층 세대와 주니어 세대가 노후소박, 상후하박으로 뜨악해하는 신종 분단 사태가 저어될 정도다.
 

물론 이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는 그냥 코미디 장르다. 좀 있으면 다시 뭉치고 해피엔딩으로 교훈을 주는 신파요 계몽주의일게 뻔하다. 그럼에도 제작사 삼화네트웍스가 한 번 심어 본 러브 마크(love mark)는 아주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여운을 단단하게 남긴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불효소송’으로 시청자들로부터 열렬한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러브 마크를 아로새겼다.

동시에 사랑이 너무 고갈되어 세대 간 전쟁을 촉발시키는 화약으로 비화되는 결핍된 러브 마크로서도 받아들여진다. 사랑이 너무 넘치거나 줄어들어 막장으로 가는 남녀간 <사랑과 전쟁>이나 사랑이 빠져나가 쓸쓸해진 노소간 세대 간 전쟁이 뭐가 다르냐는 느낌마저 든다.
 

이제 ‘불효소송’에 이어 국가가 국민에게 묻는 ‘불충소송’도 나오고 국민이 국가에게 묻는 각종 위자료 소송들이 상식과 통념을 뒤집어 속출할지도 모른다. 연금 파동은 또 어떤가? 드라마 한 편이 우연찮게 지목했듯 우리 사회 남녀노소, 부모자식, 가족, 군신, 사제지간, 직장선후배, 동료 등등 수많은 인간관계 시스템 설계를 탈바꿈하는 파격과 충돌, 대립이 노골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예민한 작가나 배우는 묘사하고 툭 던질 뿐이다. 이들이 가리키는 쇼킹한 문제와 갈등은 경제하는 일꾼들, 리더들이 실물경제에서 풀어야 할 몫이다. 이번 참에 경제 소득이라는 파이를 확실하게 키우지 않으면 결국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얼룩지고 말 터이다.

‘가족끼리 왜 이래?’, ‘친구끼리 왜 이래?’하는 쇳소리 균열과 해체는 성장과 발전 없이 쓰러지는 외발 자전거, 즉 무너진 경제 파열음에 다름 아님을 각성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백전노장 콘텐츠 딴따라 업체 삼화네트웍스가 2014년 늦가을 대한민국을 환기시켜주고 있구나.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