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자본 생산성 증가시켜 잠재성장률 높여야 장기침체 탈피
   
▲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

최근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경제에 장기침체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경고가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아시아금융학회와 공동으로 17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세계경제 장기정체론의 배경과 한국의 정책대응 방향'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1)

이날 세미나에서 한경연은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의 주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세계경제 장기정체론을 검토하고 새로운 정부정책 수립을 주문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써 6년 전인데 세계경기가 회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위기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세계졍제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권 원장은 “장기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한다는 주장”이라고 지적하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면서 “글로벌 경제 침체 상황을 감안한 경제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경제연구원은 아시아금융학회와 공동으로 17일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세계경제 장기정체론의 배경과 한국의 정책대응 방향』 세미나를 개최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주제발표자로 수고한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서머스 교수의 분석을 인용해, “올해 미국의 실제 GDP(국내총생산) 수준이 2007년에 전망했던 2014년 잠재GDP 수준보다 10% 정도 낮다”고 밝혔다.

오 학회장은 이러한 잠재성장 추세 하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노동시장의 이력현상(hysteresis),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투자장기부진, 기술혁신수준이나 교육의 질 하락 등을 들었다.

최근 국내외에서 장기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오 학회장은 “침체된 인플레이션 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한국은행의 전향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 학회장은 “우리도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과제로는 ▶근로자 이력현상 방지 위한 2차 노동시장(시간선택제 일자리 등) 활성화, ▶실효성 있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 ▶규제혁파를 통한 기업투자환경 개선, ▶기술혁신과 창의적 교육정책 등을 들었다.

오 학회장은 중장기성장의 핵심 조건으로 잠재성장률을 꼽았으며, 구체적으로는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노동 자본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길 밖에 없다”고 밝혔다.

오 학회장은 맺는 말에서 “어떻게 노동 자본 생산성을 증가시킬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며, 이에 반하는 정책은 포퓰리즘 미사여구일 뿐 잠재성장률을 하락시켜 일자리를 앗아가는 등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린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이 주제발표한 발제문 원문이다.

I. 세계경제 장기정체론의 배경

금년 들어 세계경제학계에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는 세계경제의 장기정체론(secular stagnation thesis)이다. 세계경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지도 6년이 경과했으나 아직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도 않지만 회복이 된다고 하더라도 위기 이전의 성장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고 저성장기조가 장기화된다는 주장이다.

미국 재무장관, 하바드대 총장,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역임한 하버드대의 래리 서머스(Larry Simmers) 교수가 지난 해 11월 국제통화기금(IMF) 포럼과 금년 2월 미국경영경제학회(NABE) 기조연설을 통해 주장하면서 대두된 주장이다.

그 후 폴 크루그만 프린스턴대 교수, 스탠리 피셔 미연준 부의장, 올리버 블랭셔 국제통화기금 수석이코노미스트, 배리 아이첸그린 버클리대 교수 등이 동조하거나 우호적인 견해를 발표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통계를 보면 전세계 연평균 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2003~07년에는 3.7%였으나 위기 이후 2009~14년에는 2.9%에 머물고 있다. 주요국 동향을 보면 독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들의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더구나 이 정도도 미국 영국 유로존 일본 등 주요국들이 양적 완화라는 전대미문의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결과다.

장기정체론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거나 경기순환상의 경기부진 때문이 아니라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이에 대한 대책도 통상적인 대책과는 다른 보다 전향적인 대책을 사용해야 이러한 장기정체의 터널을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주요국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이후 연평균 성장률(%) 비교. (자료출처: 국제통화기금, 세계경제전망 2014.10) 

II. 세계경제 장기정체의 원인

장기정체론자들은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원인으로 △ 잠재성장 수준 추락 △ 잠재성장률 하락 △ 마이너스 GDP갭 장기 지속의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아래 그림 참조).

1. 잠재성장 수준 추락

첫째, 성장률이 아니라 잠재성장 수준 자체가 한 단계 추락하는 현상 때문이다. 수준 자체가 추락하므로 그 수준에서 단기적으로 변화하는 성장률은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장 수준 자체가 추락했으므로 고용수준이 개선되지 않게 된다. 말하자면 잠재성장 수준에 구조적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는 경우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로 경기불황이 장기화하면 실업도 장기화되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근로자가 많아지는 데 이들 중 상당부분은 경기가 회복되어도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에게 체화되어 있는 기술이나 지적재산 등 인적자본이 훼손되거나 상실되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없게 되는 경우다. 이를 노동시장의 이력현상(hystersis)이라고 한다.

한국처럼 신규 대졸자만 뽑는 경우가 많은 경우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면 아예 노동시장 접근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2008년 위기 때의 대졸자가 2014년에 경기가 회복되었다고 해도 신규취업도 어렵고 그렇다고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경력직으로 취업도 안되는 경우다.

1990년대 중반 독일은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경기가 불황일 때 일단 근로자들이 비정규직으로라도 노동시장에 남아 있어야 경기가 회복될 때 정규직 상용직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고용촉진법’이라는 법을 만들어 비정규직을 활성화한 적이 있다. 경기가 불황인데도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된다고 해서 실업자만 늘리는 한국과는 다른 접근이다.

   
▲ 주요국의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성장률(%) 추이 (자료 출처: 국제통화기금, 세계경제전망 2014.10) 

2. 잠재성장률 하락

둘째, 잠재성장률 하락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 성장률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잠재성장 수준을 넘어서는 성장을 하게 되면 버블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생산요소 투입의 감소와 생산성 증가율 하락이 원인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거나 장기적으로 자본투자가 일어나지 않아서 생산요소 투입이 감소하게 된다. 국가부채가 늘어나서 공공서비스가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도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이 된다. 기술혁신수준이나 교육의 질이 하락해서 생산성 증가율이 하락하게 된다.

3. 마이너스 GDP갭 장기 지속

셋째, 실제 성장이 잠재 성장 수준을 하회하는 마이너스 GDP갭이 장기적으로 지속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장기적으로 하회하면서 저성장을 초래한다. 이처럼 마이너스 GDP갭이 장기화하는 데는 저축이 투자보다 많은 과잉저축, 즉 과소투자현상이 지속되고 있는데 따른 것인데, 과잉저축, 즉 과소투자현상의 원인으로는 두 가지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하나는 제로금리와 저인플레이션 하에서 실질금리가 저축과 투자를 균형시키는 자연이자율 수준 까지 하락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크루그만은 미국에서 경기정점과 정점간의 실질금리가 1980년대는 5%, 1990년대는 2%, 2000년대는 1%,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로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실질금리가 –% 정도가 되지 않으면 완전고용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명목금리는 제로 이하로 내려 갈 수 없으므로 저인플레이션 상태에서는 마이너스 실질금리가 되지 못해 과소투자, 즉 과잉저축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 미국의 자연이자율 추이 (자료출처: Summers, 2014) 

서머스는 완전고용실질이자율 또는 균형실질이자율이 이처럼 크게 하락한 원인으로 △ 과도한 부채증가와 금융중개기능 위축에 따른 부채금융투자 수요의 감소,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실물투자수요 감소 등 투자수요 감소, △인구증가율 하락 △소득분배 악화 △자본재 가격의 하락 △세후실질이자율을 필요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디스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세전실질이자율을 더 낮추어야 하는 문제 △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증가와 미국국채 투자 증가의 여섯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Summers,2014, pp. 69-71).

과잉저축, 즉 과소투자현상의 또 다른 원인은 거품기간 중에 쌓인 부채를 갚기 위해 가계나 기업이 소비나 투자를 할 수 없게 되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불황을 흔히 대차대조표 불황이라고 한다. 언제나 거품이 발생하고 난후 거품이 붕괴되면서 초래되는 대차대조표 불황에서 회복되려면 가계나 기업이 지고 있는 부채가 어느 정도 줄어들어야 된다는 점이 불황을 장기화시키는 큰 요인이다(Koo, 2014).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데는 미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중앙은행인 연준이 주택저당채권을 직접 매입하는 양적 완화정책을 통해 자산가격 회복과 그에 따른 가계부채 부담 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때문이다. 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에는 135%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5%로 낮아지면서 민간소비가 회복되고 있다(아래 그림 참조).

이 정도 부채부담을 줄이는데 양적 완화 정책을 쓰는 등 갖은 노력을 하면서도 6년이 소요되었다는 점은 한국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이 비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43%였으나 현재 163%로 높아진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 비율이 100~110% 내로 들어와야 민간소비가 회복되기 시작한다는 것이 학계의 분석이다.

   
▲ 미국의 가계부채/가처분소득 비율 추이 (자료출처: Summers, 2014) 

장기정체론자들은 이와 같은 세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경제성장이 장기적으로 정체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의 경우 2014년 미국의 실제 GDP 수준이 2007년에 전망했던 2014년 잠재GDP 수준 보다 10% 정도 낮은데 이 중 5%는 잠재GDP수준의 하락에 따른 것이고 나머지 5%는 마이너스 GDP갭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유로존의 경우는 2014년 실제 GDP 수준이 2008년에 전망했던 2014년 잠재GDP 수준보다 15% 정도 낮은데 이 중 10%는 잠재GDP수준의 하락에 따른 것이고 나머지 5%는 마이너스 GDP갭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III. 장기정체에 대한 정책대응 방향

따라서 장기정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마이너스 GDP갭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정화정책과 중장기적으로 잠재 GDP 성장률과 잠재 GDP 수준을 제고하는 성장정책들에 대한 처방이 종래와는 달라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1. 단기 안정화 정책

가. 통화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먼저 단기 안정화 정책으로서 통화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중요하다. 장기정체 상황에서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효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장기정체기에는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는 실질이자율인 ‘완전고용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명목금리는 제로가 하한선이고 저인플레이션율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마이너스인 완전고용실질이자율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실질이자율을 마이너스인 완전고용실질이자율로 가져 가려면 인플레이션율을 올리는 방법이 최선이다. 인플레인션 목표치를 높게 책정하는 방법이 권고되고 있다. 동 목표를 공개적으로 달성할 것을 천명해 경제주체들의 침체된 인플레이션 심리를 회복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만약 저인플레인션을 반영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낮추게 되면 저성장을 고착화시키는 결과가 된다.

한국에서는 장기 디플레이션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여러 분석들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통화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은 논의조차 없는 실정이다.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해 인플레인션율은 얼마로 가져가야 할 것인지, 한은의 중기물가목표가 제시되고 있으나 2년 넘게 하한선도 지키지 못하는데도 명시적인 목표달성 계획 선언 등 경제주체들의 침체된 인플레이션 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전향적인 노력이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실제 인플레이션율과 괴리가 큰 목표인플레이션율을 낮추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장기정체론자들과는 상반된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원래 물가안정목표제에서 목표인플레이션율이란 완전고용상태의 인플레이션율이 얼마 정도인가를 추정해서 설정하는 것인데 장기정체가 우려될 정도로 경기가 장기간 저조한 상황에서 초래된 낮은 인플레이션율을 고려해서 목표인플레이션율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한국경제의 장기저성장과 장기디플레이션을 받아들이자는 주장과 다름이 없는 위험한 주장이다.

나. 확장적 정부투자지출

이처럼 경제가 장기정체기에 진입한 경우에는 재정정책도 확장적으로 운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재정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성장잠재력이 제고되고 다른 한편 마이너스 GDP갭을 축소시켜 주는 정부투자지출이 바람직하다. 정부투자지출은 정부소비지출이나 이전지출에 비해서는 재정승수도 높아 성장률 제고효과도 크다.

지난 10월 발간된 국제통화기금의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강조하면서 글로벌 사회간접자본구상(Global Infrastructure Initiative: GII)를 출범시키고 있고 세계은행도 최근 글로벌 사회간접자본기금(Global Infrastructure Facility: GIF)을 조성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 설립추진도 중국의 성장둔화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중서부의 사회간접자본을 개발하기 위한 ‘신실크로드 프로젝트’ 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구상이다.

전세계적으로 장기정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간접투자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머스 교수는 케네디공항이라도 보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정도다. 대공황 때의 테네시계곡 개발을 연상케 하는 주장이다,

최근 한국은 이러한 세계적 추세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우려가 적지 않다. 사회간접자본 투자는 개발연대의 구시대적 사고라는 듯이 비판하면서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재정투자지출 비중을 줄이는 반면 복지 민생안정 중소기업지원 농어촌지원 등 정부소비지출과 이전지출의 비중은 높이고 있어 정부지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일회성 단기에 그치고 부채만 증가시킬 우려가 크다.

다. 가계와 기업의 부채감축

다음으로 대차대조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가계나 기업의 부채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의 주택담보대출과 같이 자산구입으로 인해 늘어난 가계부채의 부담을 완화해 주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자산가격을 적정한 정상수준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합리적 거품’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고 래리 서머스, 리차드 쿠 교수 등은 주장하고 있다(Summers 2014, Koo, 2014).

기업의 경우에는 채무재조정과 기업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에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정책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와 투자가 회복되려면 실질순자산(자산-부채)가 증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에 135%였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가계소비 회복이 가능한 수준인 105%로 낮아지는데 주택저당채권 매입 등 갖은 노력을 하면서도 6년이 소요되었다. 한국은 현재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63%다. 이 비율이 민간소비가 회복되기 시작한다는 100~110% 내로 낮아지는 데 몇 년이 필요할까.

미국의 경우를 보면 미국처럼 노력을 하는 경우 최소 10년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에서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정책당국자들도 많지 않거니와 정치권에서는 그러한 정책은 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정책이라는 반대정서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현재 2% 안팎의 민간소비 증가율로는 성장률 회복이 불가능한데 이런 분위기에서는 언제쯤 민간소비가 회복될 것인지 가늠도 하기 힘들 정도다.

라. 수출증대

서머스는 수출증대정책도 주장하고 있다. 무역협정, 수출통제완화, 수출촉진정책, 여타 국들의 중상주의에 대한 대처 등을 대책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는 명시적으로 환율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여타 국들의 중상주의에 대한 대처’를 주장해 다른 국가들의 통화가치 절하에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처럼 기축통화국의 확대 통화정책은 그 자체가 통화가치를 하락시키는 환율정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일제히 파격적인 양적완화 또는 급격한 확대 통화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배경중 하나로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통한 수출촉진 의도도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한국경제연구원은 아시아금융학회와 공동으로 17일(월)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세계경제 장기정체론의 배경과 한국의 정책대응 방향』 세미나를 개최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백승관 홍익대학교 교수, 김인철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김기흥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장,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의 모습이다. 

2. 중장기 성장정책

중장기적으로 잠재 GDP 성장률과 잠재 GDP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앞서 살펴 보았던 원인들을 제거하거나 해소하는 정책들을 종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첫째, 근로자의 인적자본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불황기에는 비정규직이나 시간선택제를 활성화해 상용직으로 취업 못하는 근로자들을 일단 2차 노동시장에 잔류하게 해서 노동시장의 이력현상을 막는 정책을 추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저투자 저성장 속에서 무조건 정규직만 고집하고 있으니 일용직 임시직 자영업자만 증가하고 있다. 노동자의 인적 자본 훼손으로 경기가 회복되어도 취업이 어려워질 것은 불문가지다.

둘째, 실효성 있는 저출산 고령화대책으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를 막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 실효성이 없는 가운데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셋째, 규제혁파 등 기업투자환경 개선으로 기업투자를 촉진해야 한다. 한국은 규제혁파를 위한 대통령주재 끝장토론에도 불구하고 경제민주화라는 이름하에 규제개혁심의도 그치지 않고 추진되는 의원입법 등 규제가 더욱 증가하고 있다.

설상가상 기업의 사내유보를 환류시키기 위한 패널티까지 포함된 법안도 제안되어 있고 기업투자 촉진을 위해 법인세를 인하하는 세계적 추세는 아랑곳 없이 법인세를 인상하자는 주장이 여야 중진들로 부터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10여 년 동안 2% 수준을 지속해 오다 작년부터는 드디어 마이너스로 추락한 민간설비투자증가율은 국회나 정책당국자들에게는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아닌 듯이 보인다. 중국은 추격해 오고 일본도 재기하고 있는데 그저 인기영합적인 주장만 하고 있으니 투자회복은 언제쯤 될는지 기약이 없는 실정이다.

넷째, 기술혁신과 우수한 교육으로 생산성 증가를 도모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정책도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연구개발투자액과 동 투자액의 GDP에 대한 비중은 선진국 수준이다. 그러나 효과는 빈약하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연구기관이나 연구인력의 우수성과 상관 없이 연구개발비를 고르게 나누어 갖는 데만 주력해 온 결과라는 것이다.

교육면에서도 기본적인 학업의 연마 없이 혁신적인 창의성이 나오기 힘들다. 더욱이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우수 상품을 출시하려면 기초실력은 물론 기초실력을 뛰어 넘는 대단한 실력이 필요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세계 학계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배경으로 중국과 인도에서는 일류대학을 들어가서 신분을 상승하기 위한 중국과 인도 전역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이 있고 그 결과 초일류 학생들만 최고 대학에 진학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그 졸업생들은 오늘날 미국 실리콘밸리의 주역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지난 30여 년 가까이 지속되어 온 교육평준화 정책은 대학진학률만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을 뿐 우수인력 양성과는 반대로 가고 있지 않는지 우려된다. 심지어 수월성 교육은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주장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요즘 한국 고등학교에서 수학수업을 제대로 듣는 학생들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무엇으로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우려된다.

IV. 맺음말

경제란 결국 원론으로 돌아가야 회복된다. 오늘날의 많은 경제정책들은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인 이유들로 인해 원론적인 처방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그 결과 수많은 경제정책들과 막대한 재정투입 등 비용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없고 경제는 장기정체로 빠져들고 있다. 오히려 잘못된 막대한 재정투입으로 국가부채만 늘어 경제 정책 운용을 제약하고 있다.

중장기 성장은 생산함수에서 도출된 성장률=노동증가율+자본증가율+생산성증가율이라는 성장률의 항등식에 의해 결정된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노동 자본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길 밖에 없다. 어떻게 노동 자본 생산성을 증가시킬 것인가만 중요하다.

여기에 반하는 정책은 인기영합적인 미사여구일 뿐 잠재성장률을 하락시켜 일자리를 앗아가는 등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린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복잡다단한 여러 경제사회정책들이 여기에 부합하는지를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단기적 안정화 정책을 위해서는 국민소득=소비+투자+정부지출+수출-수입이라는 경제원론에 나오는 국민소득의 항등식을 되새겨보아야 한다. 경제가 장기정체기에 들어가면서 마이너스 GDP갭이 지속되고 있는 경우에는 소비 투자 정부지출 수출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투자는 단기 안정화정책의 중요 변수이면서 동시에 장기 성장정책의 중요한 변수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단기 정책의 장기적 영향이 연결되는 고리다. 그 만큼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기업의 투자가 중요하다. 오늘날 한국경제의 위기는 기업투자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있는데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생산성증가 보다는 연구개발이나 교육의 평준화논리가 앞서고, 소비증가를 위한 가계의 실질순자산 증가는 부유층을 위한 대책이라서 안되고, 규제완화, 법인세 인하, 환율상승 등 투자환경개선과 수출촉진정책은 수출대기업정책이라서 안되고, 정부지출은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투자지출보다는 복지 민생안정 중소기업지원 농어촌지원 등 소비지출이나 이전지출의 비중이 더 커야 되는 반기업 반부유층 좌파논리와 국민정서가 커질수록 잠재성장률은 하락하고 마이너스 GDP갭은 지속되어 경제는 장기불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성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는 주장이 서슴없이 나오는 등 사회적 주장들이 경제 논리들을 압도하는 실정에 이르면 경기회복과 건실한 일자리 창출은 사실상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 없다. 온갖 종류의 사회적 일자리, 정부부문 일자리만 늘어나서 재정을 악화시키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구축하고, 늘어나는 저생산성 부문이 고생산성 부문을 밀어내어 국가경제는 마침내 추락하게 된다.

결국 경제논리에 충실하지 못하게 하는 좌파논리와 국민정서, 이에 인기영합하는 데만 골몰하는 정치세력이 장기불황의 근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것은 설득하고 이해를 구할 것은 구하면서 정공법으로 경제를 이끌어 가는 진정한 경제리더쉽이 아쉬운 때다.

아담 스미스 이후 250여 년 동안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연구하면서 축적해 온 이론을 벗어난 새로운 길이란 사실상 없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항하는 공산주의 계획경제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지만 생산성의 추락으로 구 소련연방이 붕괴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를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제논리에 충실하는 길만이 장기정체나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건국대 특임교수)

1) 세계경제 장기정체론(secular stagnation thesis)은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2013년 11월 IMF포럼과 2014년 2월 미국경영경제학회(NABE) 기조연설을 통해 주장하면서 대두

동조(또는 우호적 견해) 학자: 폴 크루그만 프린스턴대 교수, 스탠리 피셔 미연준 부의장, 올리버 블랭셔 국제통화기금 수석이코노미스트, 배리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 등

(이 글은 한국경제연구원과 아시아금융학회가 17일 공동으로 개최한 '세계경제 장기정체론의 배경과 한국의 정책대응 방향' 심포지움에서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이 발표한 주제 발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