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막장 드라마’ 재연 불보듯…비례대표 줄이지 말고 선관위에 넘겨야

한국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가 어딘가. 많은 이들은 ‘정치’라는 답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민주화의 성공이후 ‘민주주의’라는 의사결정 방식을 비판불가의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민의’라는 이름의 법치허물기가 횡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정치개혁, 그 길을 묻고자 자유경제원은 18일 '정치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를 토론회를 개최했다. 아래 글은 패널로 참석한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가 발표한 토론문 원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도·농간의 경제력 격차 및 면적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이런 현실을 고려하여 선진국보다 훨씬 큰 2대1 편차를 허용하면서도 헌법상 표의 평등 원칙을 지키고자 균형을 잘 유지한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따지면 2:1의 편차도 표의 등가성 원칙에 비춰보면 허용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농촌인구가 급속히 줄기 시작하여 인구편차를 조정해야 할 상황이 어제오늘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회는 20년 가까이 이를 방치한 채 헌재가 개입해야만 마지못해 이를 수용해 왔다.

더구나 지난 2001년 헌재가 4:1편차를 3:1로 줄이라는 결정을 할 때, ‘2:1을 넘기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나 갑작스러운 변화가 줄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일단 3:1로 조정하라’고 했으니 이번 결정은 오래전에 예고된 상황이었다.

   
▲ 18일 열린 자유경제원 주최 제11차 정치실패 연속 토론회 <정치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의 전경.

국회의원들의 선거구 획정에 대한 높은 관심이 합리적 문제해결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겪었던 동일한 경험을 돌아보면 ‘여의도 막장 드라마’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 헌재가 기존의 4대1을 3대1이하로 하라는 결정을 했을 때, 국회는 지역구 상실위기에 직면한 의원들의 막가파식 저항에 우왕좌왕하다가 2004년 4월 총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선거구 획정 법 개정을 했다. 결국 국회는 통합선거구를 최소화하고 지역구 의원 16명을 늘리는 편의적 선택을 했다.

이번 헌재 결정을 계기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 새로운 제도에 대한 검토를 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 국회의 문제해결 능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를 볼 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는 시간만 허비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여 진다.

특히 주류양당 모두 당내 의원들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대승적 결론을 이끌어 낼 만한 리더십이 부재하고, 특히 ‘자영업자 네트워크’로 불리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당인지 조차 의심 받는 상황이다. 나아가 선거제도 변경논의와 개헌 논의가 중첩되어 진행될 것이 틀림없고 이미 각 당에서 활동을 시작한 차기 대선주자들은 당내에서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분위기로 끌고 갈 수도 있다.

   
▲ 18일 열린 자유경제원 주최 제11차 정치실패 연속 토론회 <정치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에서 토론하고 있는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

국회가 2015년에 지루한 논의 끝에 선거구제도 변화에 합의를 못하면 자동적으로 현행 소선거구제로 다시 회귀하게 된다. 이때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정당의 리더십이 작동되지 못하면 지역구 상실 위험에 노출된 의원들의 목숨을 건 투쟁이 상황을 주도하게 될 것이며, 인구 하한선을 최소화하는 기득권 지키기 선택이 유력하다.

이미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의원수를 300명으로 늘리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아서인지 그 대신 비례대표 수를 줄이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양당 독과점 체제를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현재 비례대표는 54명으로 전체의원의 18% 수준이다. 적정 비중이 얼마인지 증명할 길은 없지만, 비례대표제는 지역구에 속박되지 않는 전문가나 직능 대표자를 뽑아 국회활동에만 전념하게 하고 여성의 50% 의무공천제를 통해 남녀불균형을 교정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나아가 소수정당이나 신생정당이 진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일각에서 현재 비례대표 의원들의 수준을 문제 삼아 축소나 폐지론에 불을 지피려 하지만 이는 제도의 오류가 아니고 운영의 실패이다. 특히 국회의 무능과 실패를 가져온 주류 양당의 후진성은 그 독과점 체제에 어느 정도 기인한 면이 있는 만큼 이를 더욱 강화하는 비례대표의 축소는 정치발전에 역행한다.

   
▲ 18일 열린 자유경제원 주최 제11차 정치실패 연속 토론회 <정치개혁, 더 이상 늦출 수 없다>에서 사회자로 수고하고 있는 김영봉 세종대 석좌교수.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무능한 국회의 최선의 선택은 국회의원 수를 포함 현행 선거제도를 그대로 둔 채 국회는 손을 떼고 선거구획정 작업을 선관위에 맡기는 것이다. 이때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반드시 선관위의 안을 국회에서 의결하는 과정에서 고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두어야 한다. 둘째, 이른바 정개특위의 논의시한을 정해 그때까지 합의가 안 되면 ‘무능’을 솔직히 시인하고 기존 선거제도, 국회의원 수, 비례대표 수도 그대로 둔 채 선관위에 ‘선거구 획정 작업’을 의뢰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