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전통 깃든 한류 문화의 심장…술과 투기자본에 몰락 위기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불타는 금요일 밤 홍대 앞은 참 대단하다. 흔히들 홍대, 홍대 앞이라고 부르지만 지금은 홍대 뒷산 빼놓고 인근 사방팔방이 죄다 거대한 유흥 테마파크로 변신하고 있다. 본디 서교동을 중심으로 하는 홍대 정문 앞 부지는 이미 유흥과 환락을 주제로 한 어른들 놀이공원 발상지, 즉 그라운드 제로로 넘어간 지 오래다.

홍대 앞은 이내 홍대 옆으로 팽창했다. 마포구 상수동, 합정동 일대가 먼저 들끓고 있다. 아주 많이 낡고 헐어버렸지만 홍대 옆이고 여의도 너머 한강 강변이라는 이점을 살려 상수, 합정 구역은 여태껏 촌스러운 서민 동네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창 상전벽해 중이다.

재개발, 재건축 붐에다 공항철도, 지하철 크로스까지 이 곳 홍대 옆 한강 방면은 그야말로 도심재활성화를 넘어 광폭질주하고 있다. 이쪽 언저리 팽창은 머잖아 한강 옆 흉물로 남아 있는 당인리 화력 발전소 재창조와 결합해 그야말로 런던의 데이트 모던 미술관 급 랜드 마크로 변모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도 단연 합정역 가까이 들어선 YG 패밀리 사옥은 홍대 옆 팽창 1차 종결자 쯤 된다. 싸이, 2NE1, 에픽하이를 보유한 YG 패밀리는 전통의 연예기획사 클러스터 강남구 청담동을 이탈해 소속 팀 빅뱅 이름답게 서울의 노스웨스턴, 홍대 인근 확대와 팽창을 주도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가출해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자리 잡은 루카스 필름이 벌인 창조적 파괴와도 흡사하다. 결국 루카스 필름은 인근 실리콘 밸리와 협업한 컴퓨터 애니메이션 개척자 픽사(Pixar)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런 핑크빛 예상과 기대가 현실과 맞아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부푼 꿈을 쫓아버리는 현실을 직시해보자. 방향을 돌려 또 다른 홍대 옆, 홍대 인근을 보면 제 3 공구 유흥 테마파크가 몹시도 흉측하게 난 개발되고 있다. 연남동 일대다. 들리느니 집장사다, 시세차익이다, 부동산 투기다, 대기업 큰손이다 해가며 빠르게 얼룩지고 있다.

   
▲ 문화 예술의 산실 홍대 앞이 유흥주점과 부동산 투기 광풍으로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들어서느니 술집, 프랜차이즈 커피하우스, 외래어 표기로 채운 빵집, 카페 등속이다. 아주 조금씩은 부티크 가게라고 해서 아담한 공예 방이나 소상공인 소자본 터전들도 생겨나고는 있다. 이 점이 유흥과 환락 테마파크가 들어선 그라운드 제로라고 부른 홍대 앞 제 1 공구와는 다른 제 3 공구 연남동의 동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론도 인터넷 블로그도 연남동 탐사를 부쩍 늘리고 옛날 화교 거리와 묶어 뭔가 이야기가 있는 문화취향을 끌어들여가며 다뤄주는 듯하다. 좀 더 자생적인 문화, 예술 생태계가 홍대 인근, 신촌 근처에 하나쯤은 만들어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순수한 바람과 내밀한 응원을 불어 넣어 가면서. 

서울 전체 문화지형도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명동은 중국 요우커들 쇼핑 특구로 넘어갔고 이태원은 얼마 전 눈살 찌푸린 할로윈 파티 광경에서 보듯 웨스턴 컬처가 접수한지 오래다. 화랑이 밀집했던 가로수길은 어떤가? TV 다큐멘터리, 시사 프로그램들이 여러 번 체크한대로 대기업 브랜드, 글로벌 메이커 수중으로 팔려간 극단적 상업주의 명소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런 급변사태 때문에 홍대 앞이나 대학로는 여전히 막연하게나마 우리 문화와 예술을 품은 모꼬지로 사람들 마음속에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정도 되는 상징적인 홍대 앞이나 홍대 옆, 홍대 인근이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유흥과 환락 보채는 알코올 냄새만 가득 들어차고 있다. 투기와 머니게임 짜릿한 부동산 광풍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원형을 지켜왔던 상점들이 하나둘 퇴출된다는 소식들은 이제 진부할 정도다. 아직은 인디 클럽이나 언더그라운드 음악 같은 비주류 문화 아마추어리즘이 건재하다지만 역사와 전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오래 된 명소 재즈 클럽 「블루문」은 홍대 앞 서교동 문화산업 제 1공구에서 소멸되었다. 근처 카페 「얼굴」 하나 정도만 살아남아 버티고 있는 중이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이란 아름다운 가사로 기억되는 가수 윤연선이 홍대 앞 파수꾼 역할을 힘겹게 감내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홍대 앞 라스트 모히칸 또는 마지막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는 또 있다. 서교동 일대 터줏대감인 출판사들이다. 두말할 것 없이 출판은 그 나라 문화산업의 기본이요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홍대 앞, 마포구 출판 클러스터는 비싼 임대료, 휘황찬란한 주변 분위기 때문에 점차 떼밀리고 있는 중이다. 출판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인 홍대 앞에서 취객들이 무리 지어 휘청댈수록 맑고 향기로운 대화와 기획, 창작과 도전은 멀어져만 간다. 

출판이나 인디 음악뿐이랴? 홍대 하면 떠오르는 미술, 디자인은 더 뿌옇다. 멋진 K 아트를 체험할 조형물 하나 홍대 앞에서 마주하기 힘들 정도다. 홍대 앞이 컨템퍼러리라고 하는 동시대 당대 현대 실험 예술을 잉태하지 못한다면 이후 산업화하는 드라마나 영화, K POP은 기어이 우주 미아가 될 공산이 크다. 

K 아트 아닌 K 알코올, K 부동산으로 엉뚱한 한류를 자아내는 홍대 앞 통속 문화가 창조적 미디어, 콘텐츠산업과 떨어져 영영 다가서지 못할 인터스텔라 거리로 밀려나기 직전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