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시장 경직성 갈수록 높아져

2014년 노사관계 평가와 2015년 노사관계 전망

   
▲ 이동응 경총 전무
노사관계가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산업현장 속에 들어가 보면 전혀 그렇지 않고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온도가 차츰차츰 올라간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전보다 더 차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올해 노사관계는 시작부터 험난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정부가 철도노조 파업 대응과정에서 민주노총 사무국에 진입한 것을 이유로 연초부터 총파업에 나섰으며, 한국노총도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주요 노동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사회적 대화’는 시작부터 암초에 걸려 어려움을 겪었다. 이하에서는 2014년 정부의 정책방향과 노사관계 이슈들을 살펴보고, 내년도를 전망해 본다. 

연초부터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핵심목표로 설정하고,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세부 정책들을 다방면으로 추진했다. 청년 및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을 적극 지원하고,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대했다. 이 결과 고용률이 소폭 상승하는 등 고용지표는 개선됐다.

그러나 일자리 확대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에 대한 배려가 아쉬웠다. 일례로 고용형태공시제의 경우 소속 외 근로자의 비율까지 공시토록 하고, 공시내용을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특히, 일자리 확대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규제완화나 인력의 유연성 확보 정책은 매우 부족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노사정 대타협’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노사정위원회는 연초부터 진행된 민주노총의 정권 퇴진 투쟁과 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로 파행을 겪었다. 2월 14일부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하에 소위원회가 구성돼 노사정과 국회가 참여하는 논의기구가 가동됐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지난 8월 중순에야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한 가운데 노사정은 노사관계 현안을 논의 중이다. 특히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정년, 비정규직 등 시급한 현안들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동 위원회는 올해 연말까지 현안 해결과 관련한 기본 원칙을 도출해 내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노사가 양보와 타협을 통해 슬기로운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산업현장 노사관계는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에 비해 불안한 양상으로 전개됐고, 일부 정치권의 과도한 현장개입도 여전했다. 특히 민주노총이 대기업 협력사 노조 조직화에 주력하면서 삼성전자서비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대기업 협력사에 노조가 설립되고 노사분규가 장기화됐다.

또한 단위사업장 중 최대 규모의 조합원을 보유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실리형 집행부라는 주변의 평가가 무색하게 40시간(잔업 포함 시 67시간)의 파업을 진행함에 따라 연쇄적으로 기아자동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계의 노사관계가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올해 노사관계 이슈 중에서 가장 뜨거웠던 쟁점은 통상임금이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금년 단체교섭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느냐 여부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고, 노사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됐다. 이에 따라 단체교섭이 예년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협약임금인상률도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들어 하급심판결이 이어지면서 통상임금의 적용 요건이 구체화됐다. 그러나 일부 법원이 통상임금의 고정성 요건(‘재직자 한정 지급’), 신의칙 적용 요건(‘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 등과 관련해 상이한 해석을 내림에 따라 혼선이 초래됐다. 현재 약 250건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계류되어 있는 가운데 소송이 확산될 우려도 있다.

통상임금과 더불어 금년 노사관계의 화두는 근로시간 단축이었다. 현재 여야는 각각 근로시간 단축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세부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큰 틀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현행 주 68시간까지 가능한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자는 것이다. 그

러나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노동시장의 경직성, 낮은 노동생산성, 중소기업의 구인란, 소득조정의 어려움 등을 감안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그 동안 일부 기업은 근로시간 조정을 경기상황에 대응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들 기업에서 근로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인력조정이 불가피하다. 또한, 중소기업의 경우 인력난에 처해 있어 근로시간이 단축되더라도 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니면 생산물량을 억지로 줄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근로자의 소득 감소는 피할 수 없고, 이를 둘러싼 노사갈등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단기간에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법 개정을 추진키보다는 기업의 여건, 노사의 부담능력 등을 충분히 감안해 합리적인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노사관계의 또 하나의 이슈는 사내하도급과 비정규직 문제였다. 지난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완성차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를 원청의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특히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조립공정에 있는 1차 협력업체 뿐 아니라 출고, 포장, 보전 등을 담당하는 2차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근로자성을 확대하고 도급계약에 근거한 정당한 업무협조와 지시마저도 파견계약상의 노무지휘로 간주했다.

이와 관련해 현장에서는 기업현실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완성차 업체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동화, 업무도급, 아웃소싱, 파견 등을 활용한 탄력적이고 유연한 생산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례로 BMW 라이프치히 공장은 근로자의 57% 이상을 파견과 도급 인력으로 운영하고 있다. 업종 특성과 현실을 고려치 않은 판결로 기업들의 인력운용에 대한 부담이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한편, 정부는 조만간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비정규직 활용이 더욱 제한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정부의 대책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기업들이 유연하게 인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길 기대한다. 

내년도 노사관계를 둘러싼 환경은 낙관적이지 않다. 특히, 경제상황이 녹록치 않다.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중단과 일본의 엔저 정책은 대외무역 중심인 우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내년도 공공기관 임금인상률을 금년 대비 2.1% 인상된 3.8%로 확정했다.

정부의 공공부문에 대한 고율의 임금인상은 민간부문의 임금인상을 유인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통상임금,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건비 부담을 걱정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년간 법정 최저임금도 연간 7%이상 인상됐다. 이러한 기조는 내년에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최근 노동계와 야당을 중심으로 법정 최저임금제를 유명무실화 하려는 움직임마저 있다. 당장 서울시는 지난 9월 법정 최저임금에 비해 26%가 높은 시급 6천580원의 생활임금을 2015년부터 도입키로 하는 내용의‘서울시 생활임금제도’를 발표했다. 향후 이러한 움직임은 진보성향의 지자체장들을 중심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생활임금제가 민간부문까지 확대 적용될 경우 시장이 가지는 임금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노사관계도 험난한 한 해가 예상된다. 출범 20년을 맞는 민주노총은 조합원 직접 선거를 통해 당선된 위원장이 민주노총의 재도약을 위해 강력한 조직화사업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대기업 협력사 노조 조직화사업을 타 업종으로 확대해 나가면서 아울러 중소영세 공단, 유통서비스, 이주근로자 조직화 등에 집중할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사업장의 노사분규가 빈발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편 산업현장도 곳곳에 불안요소가 많다.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사회적 대화나 국회 법안 논의가 진전되지 않을 경우 사업장 단위에서 노사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 단체교섭에서 많은 기업들이 통상임금 문제를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키로 합의함에 따라 통상임금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통상임금, 정년연장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금체계 개편이 불가피하지만, 노동계의 협조적인 태도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한, 기업경영 여건이 갈수록 악화됨에 따라 구조조정과 관련한 노사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크다. 

노정(勞政)간 갈등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결과 38개 중점관리대상 공공기관 전부가 정상화 계획 이행을 완료했다. 그러나 정부가 내년부터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본격화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실시된 1단계 정상화 대책이 부채 감축과 방만 경영 근절에 초점을 맞췄다면 2단계 대책은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이라는 목표 하에 대(對) 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이를 공공기관 민영화 정책이라고 주장하면서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정부가 공적 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공무원, 교원의 불만도 고조될 것으로 보여 정부가 노정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가 재정위기를 심각하게 겪은 가장 큰 이유가 과거의 잘못을 제때제때 개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무엇인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