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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우 기자 |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의 명운이 2014년 4월16일,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 이후 갈렸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명운은 그보다 조금 뒤인 6월24일, 그러니까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 이후 갈렸다.
세월호 참사가 아무리 충격적인 비극이었을지언정 양심과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사고(事故)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세월호 문제를 엉뚱하게 ‘박근혜 퇴진’으로 연결시키는 무리수에 많은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껴버린 것이 현재의 상태다. 누군가 마지막 용기를 내어 “벌거벗은 임금님!”을 외치면 마법은 풀리게 될 것이다.
문창극 사태는 달랐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가 시작해서 박근혜 정부가 망쳐버린 한 편의 장엄한 부조리극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문창극이란 남자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지명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안다. 그랬기에 그의 과거 강연을 멋대로 날조해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암호’를 완성시킨 공영방송 KBS의 책략에 박근혜 정부는 속절없이 말려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창극이 얼마나 훌륭한 국무총리가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적어도 청문회까지는 갔어야 했다. 그것이 적어도 박근혜 정부가 최소한의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정표는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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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
진보라는 이름의 퇴보, 파격이란 이름의 破則
지난 얘기는 이쯤 하자. 어차피 문창극은 이제 잊힌 이름이다. 우리는 새로운 이름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 18일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김상률 교수가 대통령 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으로 내정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김 교수를 ‘진보 인사’라 부르며 파격(破格)을 말했다.
이는 사안을 너무 표피적으로 본 것이다. 굳이 단어를 만든다면 이것은 파격이 아닌 파칙(破則), 그러니까 최소한의 원칙마저 붕괴돼버린 박근혜 정부의 인사정책이 경계를 넘어 방황하고 있음을 보여준 징후에 불과했다. 김상률을 둘러싼 작금의 논란이 바로 그 증거다. 그는 진보 인사가 아니라 ‘퇴보 인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상률 교수 본인의 과거 발언이 과연 이 사람을 ‘교육문화수석’으로 둬도 좋을지 의심하게 만든다. “북핵(北核)은 약소국 생존을 위한 비장의 무기”라고 서술했던 ‘차이를 넘어서’라는 책에 대해 김 교수는 ‘표현이 서툴렀다’고 해명한 모양이다. 질문. 6월24일엔 뭘 하고 계셨는지? 우리는 지금 표현이 서투르면 절대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응답하라, 박근혜 정부여!
사실 북핵에 대한 김 교수의 표현은 빙산의 일각이다. 북핵에 대한 관점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가 현대사회의 결혼과 가족제도에 대해 매우 급진적인 폐지론을 펴고 있다는 지점에 존재한다(“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조장하는 식민적인 노예 제도… 발전적인 해체가 필요하다”). 제국주의적 서구문화를 비판하면서도 (으레 그렇듯) 유학은 미국으로 다녀온 그는 미국의 급진 리버럴(liberal) 노선을 충실하게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적당히 멋스런 페미니즘까지 완벽한 ‘깔맞춤’이다.
김상률 교수의 급진 리버럴 노선(리버테리언과는 다름)이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의 자리가 다름 아닌 ‘교육문화수석’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착취적 산물이요 청산해야 할 적폐쯤으로 보고 있을 그가 어떻게 정부에서 교육과 문화를 논한단 말인가.
최근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도저히 정상으로 봐줄 수 없는 좌편향 사상들마저 교육과 문화의 이름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반미(反美)를 강조하고 체 게바라를 찬양하며 민주노총의 투쟁노선을 충실히 답습하고 있는 ‘동화책’들을 우수교양도서로 선정하기도 했다.
급기야 박근혜 정부는 이제 결혼과 노예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교육문화수석으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만약 누군가 ‘기자정신’을 발휘한다면, KBS가 문창극에게 했던 것처럼 그의 과거 발언을 이용해 날조를 시도한다면 김상률을 ‘망언과 편향의 아이콘’으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마이크는 다시 김상률과 청와대에게로 돌아간다. 응답하라 박근혜 정부여. 문창극은 안 되는데 김상률은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