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과 앚비 버려야…상대방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방민준의 골프탐험(33)- 고수는 손에도 마음에도 칼이 없다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리롄제(李漣杰)는 무술배우로서보다는 진정한 무술인으로서 더욱 값지다. 극한에 이른 그의 무술이 주는 아름다움은 필설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란하면서도 절제된 그의 무술은 리샤오룡(李小龍)과 함께 타임캡슐에 담겨야 할 지구촌의 보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영화배우가 된 것은 지구촌의 당대인은 물론 후세인들에게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무술이 필름 속에 살아남아 후세 사람들까지 불세출의 무술세계를 감상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동작을 그대로 담아내는 영화라 해도 그의 내면을 완벽히 전해주지 못해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볼 때마다 2% 모자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런 무술을 펼치는 사람의 정신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것이 궁금증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궁금증이 풀렸다.

수년 전 영화 ‘무인 곽원갑’의 개봉에 즈음해 우리나라를 찾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무술인의 세계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무술의 단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말했다.
“무술에는 3단계가 있다. 첫째는 손에도, 마음에도 칼이 있는 단계다. 최고가 되겠다고 무술을 연마하는 때다. 둘째는 손에는 칼이 없지만, 마음에는 칼이 있는 단계다. 상대를 직접적으로 해치지는 않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오만과 승리에 대한 집착이 도사리고 있다. 셋째는 손에도, 마음에도 칼이 없는 단계다. 절대적인 적이 없는 단계다. 이 경지는 아마 종교적인 경지일 것이다.”

   
▲ 처음 골프를 시작하면 무조건 상대방을 이기려 덤벼들며 순응하려 하지 않는다. 이력이 쌓여가며 매너를 배우고 요령을 터득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자만과 아집에 빠져 이기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삽화=방민준

어렸을 적부터 비범했던 그의 무술 이력을 안다 해도 그의 입에서 이런 무술철학을 듣는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했다. ‘저래서 그런 무술이 나올 수 있었구나!’

6살 때부터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1972년 9살의 나이에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에서 처음 열린 전국 유수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아 이듬해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1974년 중국 전국무술대회에 출전, 권법 봉술 검술 등 3개 부문을 석권해 대회사상 최연소(11세) 종합우승기록을 세운 뒤 5년 연속 중국 무술대회 챔피언을 차지하는 등 전무후무한 이력을 쌓아 중국 무술가들로부터 진정한 ‘무신(武神)’으로 추앙받게 된다.
 

영화 ‘무인 곽원갑’의 주인공 곽원갑은 무도 정무문(精武門)의 창시자이자 1900년대 밀어닥친 외세에 강직하게 맞선 전설적인 무술인이다. 리롄제는 “처음에는 승리에만 집착하다 무술이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닫는 곽원갑의 인생역정을 이해하고는 영화화를 먼저 제의했다.”며 “적은 외부에 있는 어려움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이며 폭력은 폭력을,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그는 무술정신을 한자 武자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武는 그칠 지(止)와 창 과(戈)의 합성어로, 창 싸움을 그친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술이란 얘기다. “무술의 본질은 화려한 액션 뒤에 감춰진 정신이다.”는 설명은 무술인이자 배우인 그가 할 수 있는 최고 경지의 깨달음으로 이해되었다.

이 같은 리롄제의 무술철학은 바로 골프철학과 바로 연결된다. 특히 무술의 3단계는 골프의 그것과 너무나도 닮지 않았는가.
 

처음 골프를 시작하면 무조건 상대방을 이기려 덤벼들며 순응하려 하지 않는다. 이력이 쌓여가며 매너를 배우고 요령을 터득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자만과 아집에 빠져 이기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이런 단계를 지나서야 겨우 골프란 상대방이 아니라 나와 싸우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는 나와도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무술에서나 골프에서나 진정한 고수가 되기란 이처럼 멀고 험난한 것이다.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