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퓨리’의 주요내용 일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 이원우 기자
‘퓨리’는 전쟁영화다. 러닝타임은 134분. 관객들은 이 시간동안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의 현장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생사의 경계가 종이 한 장이다. 쓰레기처럼 쌓이고 밟히는 시체들. 하지만 시각보다 더 부담스러운 건 청각의 공포다. 어디에서 뭐가 터질지 모른다. 2D로 봐도 4D 같은 영화가 ‘퓨리’다.

‘퓨리’는 어떤 면에선 전쟁영화가 아니다. 탱크를 다루지만 대규모 전쟁장면은 없다. 연합군을 공포에 빠뜨렸던 독일군의 티거 탱크는 딱 한 대 등장한다.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한숨을 쉴 법 하다. 물론 그 한 대와 싸우는 장면이 매우 흡입력 있게 연출됐지만, 영화는 탱크 안의 ‘사람들’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주요 인물은 총 5명. 주인공 워대디(브래드 피드)는 팀원들 앞에서 능수능란한 전쟁 베테랑을 연기하지만 내심은 두려움에 떤다.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감당 못할 공포를 관객에게만 노출한다. 바이블(샤이아 라보프)은 별명처럼 늘 성경 구절을 왼다. 멕시코 출신 고르도(마이클 페나), 쿤 애스(존 번탈)는 탱크를 움직이고 탄을 쏘면서 전쟁에 몸을 맡긴다. 관객들에게 드물게나마 웃음을 주는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워대디의 “살려서 집으로 보내주겠다”는 말만 믿고 있다. 실제로도 가장 오래 생존한 팀이라는 자부심으로 버텨왔다. 이 끈끈한 멤버십에 신참 노먼(로건 레먼)이 가세한다. 행정병으로 가야 할 ‘스펙’이지만 전장으로 와버렸다. 깨끗한 양심을 지키겠다며 절대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다. 전장에서 만난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 영화 '퓨리'(감독 데이비드 에이어)의 한 장면.
관객들은 바로 이 노먼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게 된다. 누군들 사람을 죽이고 싶겠는가? 누군들 그곳에 있고 싶겠는가?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이 그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듯, 군인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먼은 점점 전쟁에 섞여간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어진다.

“이상은 평화롭지만 역사는 폭력적이야.” (워대디)

이 시대의 많은 영화들이 전쟁을 그저 공포의 대상으로만 바라본다. ‘이렇게 무서운 거니까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린다. 어떤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는 말이 정설로 굳어가고 있는 시대. 살인병기인 탱크 속에서 자신들의 일을 ‘최고의 직업’이라 표현하며 기꺼이 죽음을 불사하는 이들의 모습을 조망하며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한 번쯤 주목할 인물은 영화 속에서 틈날 때마다 성경을 읽는 ‘바이블’이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워대디에게 이사야서 6장의 일부를 읽어준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기독교가 신뢰를 잃어버린 한국 땅에서 바이블의 행동은 분별없는 신앙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영화에 대한 많은 리뷰들은 ‘성경 읽으며 사람 죽이는 바이블의 이중성’에 대해서 주로 언급한다.

하지만 그 이중성 없이는 분노(fury)라는 이름의 탱크가 희생이라는 이름의 숭고한 가치로 용기 있게 전진할 수도 없었을지 모른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단순한 전쟁영화 이상의 어떤 묵직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