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소유권과 자유민주주의 이념 정초…인류 문명·세계사의 분수령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40) - 개인의 자유와 사적 소유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통치의 원리
존 로크(1632~1704)의 『통치론』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인류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문명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단 한 권의 고전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을 들겠다.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존 로크의 『통치론』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형성과 통치의 근원적 원리를 종합적으로 정립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의 혁신적 사상이 단순히 상아탑 속의 정치사상에 머문 게 아니라, 영국의 입헌민주주의는 물론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선언에 영향을 미치는 등 세계사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과 변혁에 직접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존 로크는 『통치론』에서 자연법의 지배와 인간이성의 합리성, 다수에 의한 지배, 개인의 자유의 신성함과 사유 재산의 절대성, 사회계약에 의한 정부의 형성과 불의(不義)한 통치에 대한 저항권 인정 등 자유민주주의의 정치질서를 구성하는 핵심 개념과 원리를 정초(定礎)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 그리고 그 자유를 담보할 수 있는 정치구조에 대해 가장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틀을 만들어준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존 로크에 빚을 지지 않은 현대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존 로크가 이 책을 발간한 것은 1689년이지만, 로크의 사상은 그가 나중에 휘그당의 창시자가 되는 애슐리 경(Lord Ashley)(뒷날 섀프츠베리 백작 1세, Earl of Shaftesbury, 1801~1885)과 만나게 된 1666년 이후 다양한 정치역정을 그와 함께 하면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가의 양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철학적 고뇌를 통해서 잉태․숙성되고 체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은 자신뿐 아니라 같은 정파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건 투쟁의 과정과 함께 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당시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신봉하는 왕당파와 의회주권을 주장하는 의회파간의 정치적 분쟁과 내란이 지속되던 혼란한 시기로, 크롬웰이 주도한 청교도혁명(1648)에 의해 찰스 1세가 처형되고 공화정이 실시되다, 다시 찰스 2세의 왕정으로 복원되었다가 명예혁명에 의해 윌리엄 3세와 메리 여왕이 공동왕위로 즉위하는 등 정치적 격변이 극심했던 상황이었다.

이 때 존 로크는 의회파에 속하는 얘슐리 경의 주치의로 인연을 맺은 후, 그의 정무비서 격으로 수장의 정파인 휘그당의 이데올로그(ideologue) 역할을 하게 된다. 이에 따라 얘슐리 경의 정치적 부침에 따라 존 로크 역시 프랑스와 네덜란드로 망명을 다니는 등 험난한 정치역정을 함께 겪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당시 비국교도인 가톨릭과 청교도가 정치적 반목과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고, 『종교적 관용에 관한 에세이』(1667)를 써서 종교간 화해와 관용을 주장하기도 했고, 인간은 경험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는 관념을 체계화한 『인간지성론』(1671)을 써서 계몽철학 및 경험철학을 창시하게 된다.

존 로크는 찰스 2세의 종교탄압은 물론, 제임스 1세 이후 계속 강화되어온 왕권신수설에 기초한 절대주의를 근본적으로 반대했고, 의회주권을 옹호하는 명확한 정치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후견인인 얘슐리 경의 정치적 보좌 과정에서 그의 정치사상은 보다 현실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립된다.

특히 로크는 명예혁명(1688)의 성공으로 망명지 네덜란드에서 얘슐리 경과 금의환향한 이후 입헌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통치론』을 완성하였고, 그의 저서는 명예혁명의 완수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 존 로크의 저서 『통치론』(1690)의 표지, 이 책은 1690년 발행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689년 11월 경에 출판 배포되기 시작했다.

로크의 『통치론』은 자유로운 사회를 향한 국가 형성과 운영의 전략적 설계도이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자연 상태에서 어떻게 정치사회 또는 시민사회가 만들어지는지, 정치사회를 작동시키는 수탁자인 국가는 어떤 체계로 구성되어야 하며, 운용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했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자연 상태를 힘과 폭력에 의한 만인(萬人) 간의 투쟁 상태로 전제했던 데 반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이성적이고 평화로운 존재였던 것으로 보고자 했다. 자연 상태를 완전한 자유의 상태로 보고, 인간 이성이 작용하는 자연법을 가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 상태 역시, 영원한 평화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 아닌 잠재적인 전쟁상태이므로, 이런 불완전한 자연 상태를 벗어나 공동의 질서유지를 위한 사람들 간의 ‘동의(consent)’에 의해 사회 상태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홉스에 이어, 로크, 루소로 체계화되는 '사회계약'의 관념이 나온다.

물론 근대시민 계급의 이데올로기적 기둥이 된 ‘사회계약설(Theory of social contract)’을 존 로크가 최초로 창안한 것은 아니다. 이미 영국의 신학자이자 정치학자이던 리처드 후커(Richard Hooker, 1554~1600)가 『교회조직론』을 통해, 자연 상태에서 사람들의 ‘동의’에 의해 정치 조직과 정치적 권력이 성립하게 된다는 사회계약설을 먼저 주장했고, 로크는 그의 주장에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아무튼 홉스나 로크 모두 자연 상태에서 자연법 위반자들로부터 평화와 질서를 지키기 위해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고 본 최종적 결과에서는 동일하지만, 로크의 경우 이런 과정에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자발적 동의’가 중요 동인으로 작용한다고 본 점이 대비된다.

자연 상태의 한계는 필연적으로 사회 상태의 출현을 요구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모든 분쟁을 해결할 공통의 척도인 법률,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재판관, 판결을 지원하고 적절하게 집행할 권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입법의 부재가 핵심적인 한계인 것이다. 이는 국가의 운영체계 설계 시 제도적인 해결방안의 수반을 요청한다.

로크가 이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하는 정치사회의 운영원리가 바로 다수결의 원리, 입법권, 집행(행정)권, 연합(외교)권이다. 이런 원리들은 현대 국가들의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의 원리로 정착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존 로크는 사회 상태에서 모든 구성원의 만장일치가 불가능하므로 다수결의 원리를 최상의 동의방식으로 제시한다.

또한 다수의 의지를 반영한 최고 권력으로 입법권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가 구분한 입법권, 집행권, 연합권은 서로 엄밀하게 독립된 기관을 상정한 것은 아니다. 이들 최고 권력은 서로 결합되어 행사된다고 보았다. 훗날 몽테스키외가 구분한 삼권분립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로크가 그 삼권개념을 미리 고안했다고 볼 수 있다.

로크가 통치론에서 확립한 또 하나의 핵심 개념은 모든 개인들의 ‘사적 소유권(property)’이다. 왕권신수설에 따라 나라의 모든 영토는 왕의 절대적 소유권이던 상황에서 사적 소유권의 주장은 반역적이고 혁명적 발상이다. 그는 개인의 ‘노동’을 통해 자연물의 사적 지배권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물건이 남아있는 경우, 노동을 통해 물건을 손상하거나 낭비하지 않는 경우의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비로소 ‘소유권’이 생성된다는 이른바 ‘로크적 단서(Lockean proviso)'가 달린다. 즉 인간의 탐욕이 만드는 사적 소유권의 충돌을 자연법의 조화로 제어하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로크는 ‘소유권’을 자연물과 재산 등 소유물에 국한하는 소극적 개념에서, 한 사람의 인격이나 몸을 말하는 인신(person)까지 넓혀서, 인간의 자유와 생명을 포괄하는 적극적 개념으로 확대했다.

로크는 유사 이래 수천 년 간 영토와 백성이 모두 왕의 소유물로 인식되던 철칙에 반기를 들며, 군주라도 마음대로 빼앗아 갈 수 없는, 자기 스스로도 마음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자유로운 개인의 생명과 재산 등 사적 소유권의 절대성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불온하고도 감격적인 권리선언이란 말인가?

   
▲ 존 로크의 초상화, Sir Godfrey Kneller 1697년.

로크의 이런 도발적 사상이 바로 그를 ‘자유주의(liberalism) 사상의 아버지’로 부르게 하는 근거가 되고,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루면서, 다른 한 측면에선 후대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노동가치설’을 옹호하는 사상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로크의 소유권 사상은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와 평등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원리의 핵심을 이룬다. 이런 사적 소유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상은 훗날 애덤 스미스가 자유주의 경제학을 창시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나아가 자유로운 개인은 자기 재산의 처분권은 물론, 신체의 처분권도 갖고 있으므로 국왕의 대권이나, 부권(父權)으로도 사사로이 침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소유권의 본질이 그 사람 자신의 동의 없이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국왕과 부권에게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존 로크는 사람들이 자연 상태에서 자발적 동의를 거쳐 사회 상태로 들어가는 근본 목적은 소유권을 보전하기 위해서라고 보았다. 따라서 국가가 통치를 수탁한 상황에서도 국민의 소유물을 보전하지 못하거나, 자의적인 권력으로 탈취하거나 노예상태로 만들려고 할 경우 국민과 국가 간에 전쟁 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는 사회계약의 파기 상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경우 새로운 입법자를 만들 권리가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바로 정부의 해체를 옹호하는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존 로크의 저항권이 정부에 대한 모든 반란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신탁자(국민)가 사회계약에 따른 신탁을 철회하거나 정치공동체의 상당 부분이 저항을 할 경우에 한해 저항권을 용인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체제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부과하면 좋을 듯하다. 존 로크의 저항권 이론은 1688년의 영국의 명예혁명이나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한다.

로크의 정치사상은 현대 정치 이론 및 정치 현실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크는 오늘날 전 세계의 보편적 정치질서를 대변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확립시켜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구상하여 제시한 새로운 정치질서는 우선은 로버트 필머(Robert Filmer, 1589~1653)경이 주장한 왕권신수설을 논박하고, 단기적으론 의회주권론자들의 정치사상을 대변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창의적으로 도출해 낸 개념과 사유의 폭과 깊이는 당대를 뛰어넘어 인류사에 새로운 정치체계를 탄생시키는데 필요한 충격적 성찰과 풍부한 영감을 주었다.

존 로크가 『통치론』에서 제기한 다양한 자유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고루한 유교적 사상에 억압받고 순치(順治)되어온 우리의 역사가 안타깝게 대비된다. 서구 사회는 17세기부터 이런 정치사상을 태동시키고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를 가꾸어왔다.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도 봉건적 국가체제를 유지해왔다. 왜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이에 기초한 ‘사적 소유권’의 신성한 관념을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왜 왕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꿈꾸지 못했을까?

유교의 가부장적 관념 속에서는 개인의 천부적 자유와 평등, 사적 소유권의 개념은 물론이고, 국가 정치권력과 백성 간의 사회계약적 개념과 정치권력의 분권적 개념이 탄생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혹자는 유교의 천명사상(天命思想)에서 사회계약과 유사한 요소를 발견하려 애쓰기도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추론에 불과하다.

사회계약의 관념의 핵심 요소인, 자연법적 권리의 소재가 국민에 있고 그들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주권의 신탁 개념이 전혀 전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일반 백성이 주권을 절대 넘볼 수 없도록 구획한 가부장적 부권과도 연계해서 강조해준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변형에 불과하다.

동양에서 존 로크와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한 유교사상의 한계는 자유주의적 사회통념과 전통을 만들어 내는 토양의 형성을 어렵게 했고,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착근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특히 자유민주적 정치사상의 전통 부재가, 수세기 동안 서구사회가 피를 흘리는 투쟁과 사회 변혁을 향한 처절한 희생과 열망의 결과로 쟁취하여 전수해준 자유민주주의를 가벼이 여기는 사회풍조를 낳았는지도 모른다.

존 로크의 『통치론』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의 원초적 의미를 파악해 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의 사고와 행태가 퇴색되고 느슨해질 때마다 언제든지 다시 펼쳐들어야 할 첫 번째 고전이다. 특히 국민주권의 사상적 논거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계의 작동원리를 체득해야 할 위정자에게 입문적 텍스트가 됨은 물론이다.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 ☞추천도서: 『통치론』, 존 로크 저, 강정인․문지영 역, 까치(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