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과 비관의 오류 극복…철저한 자유시장경제 원칙 따라

서론: “한국경제발전사와 함께하는 정주영의 성취들”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현대그룹의 창업자 故 정주영 회장은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유명하다. 현대조선을 만들 1972년 당시 세계최대의 조선소를 짓겠다는 말에 모두 “미쳤다”며 반대했다. 그의 제안에 대해 “안 된다”는 반응에 대해 그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이봐 해봤어?”이 말은 이제 정주영회장 하면 떠오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사실 정주영 회장이 서거할 당시 Time 지는 그를 “A Man Who Proved Many People Wrong”이라고 평했으며,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많은 것들을 해낸 사람이다.

사실 정주영 회장의 스토리는 해방 이후 한국경제발전사의 중요한 궤적들과 겹친다. 현대그룹의 성장사는 곧 한국경제의 발전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최악의 조건에서도 박정희 대통령과 교호하며 완성한 경부고속도로,” 거북선 일화로 유명한 조선사업, 포드의 조립생산업체를 넘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10여개밖에 안 되는 자체모델을 생산하고 자동차를 수출하는 국가가 되게 한 자동차산업, 석유파동을 맞아 국가적 외환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을 때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중동진출을 감행해서 가뭄 속 단비 같은 달러를 벌어들인 건설사업 등 우리경제 발전사에서 커다란 이정표를 이루는 일들을 해내었다.

현대자동차, 현대조선(현대중공업), 현대건설은 이제 모두 한국의 대표적인 간판 기업들이자 세계경제 무대에서 중요한 경쟁자인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하였다.

그는 또한 입지전적이자 하늘이 낸 인물이다. 『이봐 해봤어』의 저자 박정웅은 정주영회장에 대한 강연을 하면, 자주 “초등학교 학력, 그리고 가출소년으로, 부두노동자와 쌀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어떻게 그런 도전정신, 통찰력, 번뜩이는 창의력으로 점철된 위대한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그냥 “그는 하늘이 낸 인물”이라는 것 이외에는 답변을 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박정웅이 지적하고 있듯이, 당시 우리나라는 자본, 기술, 경험, 개척된 시장, 어느 하나도 갖춘 것이 없던 1인당 소득 80달러 (1961년) 수준의 아프리카 가나 수준의 매우 빈곤한 국가였다. 교육수준도 매우 낮아서 30, 40대 인력 가운데 상당수가 한글을 해독하지 못했다. 이런 환경이었기에 그는 자본을 빌리러 해외를 전전했고, 천신만고 끝에 남들이 볼 때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을 성취할 수 있었다.

   
▲ 고 정주영 명예회장. /사진=뉴시스 (현대차그룹 제공)

그의 기업가정신은: 불확실성의 부담 그리고 혹은 이윤기회에 대한 기민성

사실 정주영회장은 많은 불확실성과 위험이 있기에 다른 사람들이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전문가들도 불가능하다고 본 사업들에 뛰어들어 성공을 이루어내었다. 심지어 동생과 결별하면서까지 실행했던 중동진출 사업, 특히 20세기 최대 공사라고 했던 주베일 항만 공사, 그리고 조선 사업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를 통해 그는 소위 ‘지나친 비관의 오류’를 극복해 보임으로써 다른 국내 기업들이 이 분야에 진출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산업화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사실 이렇게 불확실성을 과감하게 감당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불가능해 보이거나 무모해 보이는 사업들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기업가정신의 핵심을 ‘불확실성의 감당’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 교수는 1977년 10월 한국을 방문해 정주영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를 경영학의 태두라 불러주셨는데, … 과분한 말씀입니다. 오히려 정 회장님을 뵈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 오랜 식민지 피지배와, 2차대전과 6·25라는 두 개의 큰 전쟁을 치르고, 극도의 빈곤과 열악한 성장 여건 하에서도 급성장한 독특한 모델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또 이런 전후의 황무지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 경제를 선두에서 이끈 정주영 회장님과 같은 아주 독특하고 위대한 기업경영 사례에 대해서도 역시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 바로 정회장님이 발휘하신 기업가정신이 제가 주창하고 가르쳐온 핵심인데, 이를 실천한 가장 극적인 정 회장님 사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정주영 회장은 경부고속도로, 중동진출, 현대조선 설립, 한국 최초의 독자 자동차모델 개발 등으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던 때였다. 피터 드러커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정 회장님만큼 돈 벌 자신이 있었다면 아마 저도 경영학 교수 안 하고 바로 사업을 했을 겁니다. 아직 제가 경영학 교수에 머물고 있는 것은 막상 그럴 배포와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불확실성과 위험요소, 난관이라는 안개로 가리워진 먼 앞의 사업기회를 날카로운 예지력으로 간파해내고 이를 강력히 실천해내는 리더십과 결행력을 정 회장님은 이론 이전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분입니다. 저는 한낱 이론가일 뿐이죠. ”

물론 정주영 회장은 ‘남들이 볼 때’ 엄청난 불확실성을 감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날카로운 이윤기회에 대한 예지력을 지닌 ‘그의 입장에서는’ 이윤기회의 발견과 실천이 기업가정신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불확실성의 감당과 도전정신으로만 분류해서는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정신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봐 해봤어”란 말은 배짱(gut)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미리 안 된다고 단정해버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고정관념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실제로 실천해봄으로써 비로소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실천은 하이에크가 강조한 구체적 장소와 시간에 대한 지식(knowledge of particular time and place)을 얻을 수 있는 귀중한 학습의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봐 해봤어”는 오히려 지식과 정보의 측면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사실 정주영 회장은 철저한 준비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그는 오랜 비행에 따른 시차적응의 어려움을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하기 이전에 테니스와 같은 매우 고된 육체적 운동을 하고 탑승해서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또 비행기 사고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침에 이륙하고 착륙하는 비행기편을 골라 이용하였다. 그는 철저한 계산을 하는 사람이었으며, 이 점을 자신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도 밝히고 있다.

   
▲ 계동사옥 집무실에서의 고 정주영 명예회장. /사진=뉴시스(현대차그룹 제공)

시장에서의 경쟁 과정을 통해 길러지는 기업가정신

정주영 회장은 유치산업이론을 주장하는 유형의 경제학자들보다 훨씬 더 자유 시장을 잘 이해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다음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경제학의 대가 미제스의 서적을 읽는 느낌을 주게 할 정도이다.

"현대조선을 시작할 때 … 모든 사람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운데 출발했습니다만 처음부터 세계를 상대로 자유경쟁을 했기 때문에 조선공업은 급진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자동차 산업은 그 역사가 조선보다 훨씬 오래지만 처음부터 정부의 행정주도로 허가제 아래서 경쟁을 억제하고 보호·육성되기 때문에 국내시장 위주로 이권화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경쟁력이 거의 배양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느 산업이고 자유경쟁 속에서만 질과 가격에 있어서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경쟁을 억제하고 기업을 보호·육성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생산업종이 이권화되어서 결국 생산활동의 진정한 발전을 저해하고, 그 결과 만성적인 독과점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독과점 업체들은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시설과 기술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질과 가격 면에서 국제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되고 결국은 그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국내시장의 보호를 통한 이권의 추구보다는 세계시장에서 나아가 더 질과 가격 면에서 소비자들이 선택을 받고자 경쟁을 할 때 질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려는 노력이 배가되고 진정한 경쟁력이 길러진다는 위의 설명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과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정주영 회장의 말은 경쟁과정이론에 대한 훌륭한 경험적 증언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경쟁과정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더 경제적인지 발견되어 가는 것이며,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기업가정신은 바로 이런 경쟁과정을 통해 길러진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주영 회장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윤기회에 대한 기민성(alertness): 소비자들의 필요(시장)를 읽는 눈

정주영회장이 초창기 ‘아도자동차서비스’를 차려 자동차 수리업을 할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 자동차는 큰 부자들이 타고 다니는 것이었다. 당시 다른 자동차수리업체들은 자동차수리를 맡기면 실제 필요한 시간에 비해 더 오래 맡아두고 그 기간에 비례해서 더 많은 수리비를 청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이 하루라도 빨리 수리를 해서 빨리 타고 다니고 싶어한다는 ‘소비자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이를 충족시켜주기로 한다. 즉, 더 빨리 수리해 주고 더 많은 수리비를 받는 ‘전략’을 발휘해서 성공한다. 이는 정회장이 소비자들의 필요를 남들보다 더 빨리 알아차리고 실행하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한 좋은 사례이다.

소비자들의 필요를 정확히 간파해서 얻는 이윤기회의 발견 사례는 정중영회장의 경우 무수히 많지만 건설업을 하던 초창기의 사례를 하나 더 들면 이렇다. 미군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주한미군에서는 전물장병들의 묘지 터에 잔디 깔기 공사를 발주했다.

그러나 겨울에 잔디를 구할 수 없어서 애를 태우고 있을 때 정주영은 미군이 대통령에게 전몰 군인들의 묘지가 방치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고 싶어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는 잔디 대신 겨울에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보리밭 보리들을 퍼와서 이 공사를 해낸다.

전통 경제학교과서에는 기업가정신이 일종의 탐색이론으로 전개된다. 탐색의 한계비용과 예상되는 한계수익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최적탐색이 이루어지고 그 지점에서 탐색을 멈춘다고 말한다. 이윤기회의 탐색과 발견도 그런 식으로 설명이 시도된다.

그러나 비용을 들이는 탐색을 통해서만 이윤기회를 인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탐색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하는데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모르는, 즉 무지에 대해 무지한 상태(ignorance about ignorance, sheer ignorance)도 많다. 다시 말해 기회의 발견은 깨어있는 기민한 기업가들에게 우연치 않게 발견된다. 커즈너 참고.

정주영 회장은 아이디어를 씨앗처럼 마음속에 품고 깨어있는 마음자세로, 현장을 살피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견학을 하게 되면 그 아이디어가 자란다고 말했다. 그런 깨어있는 자세로 있으면 사업 아이디어가 불현듯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미리 탐색할 것을 정하고 그 확률분포를 알아서 최적의 탐색비용과 기간을 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자동차 수리업을 하던 당시 정주영 회장이 전후 복구에 핵심적인 분야인 건설업이라는 전망이 있는 시장에 진출하게 된 계기도 이윤기회에 대한 기민성을 보여준다. 관청의 차를 수리하는 일을 맡은 정 회장은 월말에 결산을 위해 관청에 들르면서 자신이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돈을 받아가는 건설업자들을 보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장 현대건설을 시작한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똑같이 죽을 만큼 노력하는데 그 사람들은 정말 자기와는 너무나 엄청나게 다른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자동차산업협회 조찬연설에서 당시의 사정으로는 왜 조선업보다는 자동차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자동차 산업에서 자본력의 미국, 경쟁력을 지닌 일본, 소형차의 유럽이 있지만, 우수한 기능공을 가진 우리가 그 속에서 니치 마켓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시장의 전개를 매우 정확하게 읽고 있을 뿐 아니라 매우 분석적이며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정 회장은 결코 단순히 위험을 무릅쓰는 배짱으로만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보에 매우 민감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정보를 얻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소양강 댐 공사에서 일본기업이 발주한 것을 사력댐으로 다시 바꾸어 시공하도록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하게 된 계기는 다른 나라에서의 사력댐에 대한 정보를 우연히 접하면서였다. 이 사례는 그의 정보를 얻고 이를 응용해내는 기업가정신의 발휘의 또 다른 사례이다.

정보에 대한 정보 (지식에 대한 지식) 커츠너의 기업가적 기민성(Entrepreneurial Alertness)은 이윤 기회와 관련해 지식, 정보의 중요성, 지식에 대한 지식(knowledge about knowledge) 등의 개념들이 설명된다.

정주영 회장은 연설과 자서전 등에서 현대조선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차관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느 은행에 가서 어떤 식으로 말하고 어떤 서류들을 제시하면, 어느 정도의 돈을 빌릴 수 있는지에 대해 정말 족집게처럼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서 그 사람이 가진 그런 유형의 정보가 사업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 정보를 지닌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기민성에 대한 기민성(alertness about alertness)이다. 정주영 회장은 그런 기초 정보를 아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그런 정보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비록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깨달았을 것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1984년 10월 15일에 한 <자동차공업협동조합> 조찬회 연설문에도 지식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그 연설에서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외국인 기술자를 고용해야 한다. 그러나 반도체와 같은 “잘 모르는” 산업일 경우 그런 고용 가운데 십중팔구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기술자를 고르는 것도 그 산업을 알아야 가능하다. 자동차 산업은 이런 점에서 그런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식에 대한 지식이란 그 분야에 정통한 기술(지식)을 가진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지식을 말한다.

 

   
▲ 1985년 포니 엑셀 신차 발표회장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진=뉴시스(정주영 사이버박물관 제공)

지식에 대한 지식: 정주영식 변용

사실 지식에 대한 지식에도 불확실성이 개재될 수 있다. 아래의 인용문에서 그는 “회사에서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덮어놓고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에 대해서도 일종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사람을 무턱대고 믿기보다는 그런 사람으로 길러내고자 했다. 정주영 회장이 택한 방법은 현대의 사람들을 시장경쟁의 현장에 내몰아 그 사람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서 믿을 만하도록 만들고 신뢰했던 것이다.

그는 혹독한 경쟁과정을 거쳐야 그리고 이것을 이겨내야 진정한 경쟁력이 생긴다고 본 것이다. 직원들도 그렇게 내몰아 믿고 맡길만하게 성장시켰다. 그에 의하면 비바람을 맞고 자란 자연산 채소라야 비바람을 차단한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채소에서 나지 않는 향기와 맛을 풍기듯이 그런 혹독한 경쟁을 이겨낸 사람은 벌써 얼굴이나 일하는 자세가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커츠너는 믿을 만한 사람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론화한다면, 정주영 회장의 방식은 그런 발견에도 불확실성이 개재해 있으므로 그런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하이에크식 경쟁을 통한 발견의 절차를 활용했던 것이다. 경쟁에 내모는 것을 통한 불확실성의 극복, 매우 인상적인 방법이다.

“힘닿는 대로 현장을 직접 챙겼던 다른 이유는 직원들의 성장 때문입니다. 회사는 단순히 월급을 주는 곳이어서는 안 됩니다. 직원들을 성장시키고 발전시켜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혹독한 시련과 경험 속에서 성장해왔고, 그랬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시련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성공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직원들도 혹독한 과정을 거쳐서 더욱 빠르게, 그리고 더욱 많이 발전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비록 마음에 상처를 입는 직원들도 많았으리라 짐작하지만 이를 무릅쓰고 확인하고, 점검하고, 독려하면서 훈련시킨 결과가 바로 현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대의 성공을 함께했던 중역들은 예외 없이 눈물이 쏙 빠지도록 야단을 맞으면서 커온 사람들입니다. … 회사에서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덮어놓고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당장 저 사람을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저 사람을 훈련시키고 독려하면 믿을 수 있는 ‘진짜 일꾼’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정주영 경영을 말하다』(27-28)

고정관념(관습적 사고)에서 탈피하라

정주영 회장은 관습적 사고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통해 유난히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어낸 기업가로 거의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주영 회장은 불균형 가격에서 ‘이윤기회’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가격중재(price-arbitrage)형 기업가라기보다는, 가격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윤기회에 기민성을 발휘하는 즉 혁신(innovation)을 행하는 슘페터형 창조적 파괴자이다.

개구리가 앞에서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있으면 혹시 뱀(손실)일 수 있으므로 일단 도망가는 규칙을 택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개구리가 불확실성 아래 그런 규칙을 택하고 있을 때, 어떤 특별한 개구리가 앞에서 움직이는 것이 자신보다 더 큰지 여부를 확인하고 작으면 자기의 먹잇감인 파리(이윤)인지 확인하러 나가는 새로운 규칙을 택한다면 그는 관습적 방식을 깨는 슘페터형 기업가이다.

그의 전기는 이런 일화들로 가득하다. 정부 관료들을 비롯해서 모두가 반대한 조선업을 시작한 것이라든지, 모두가 조선소를 건설한 다음 배를 수주하러 다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 “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진행할 수 없는지” 의문을 품고 이를 동시에 진행하는 혁신을 해낸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런 사례들이다. 그 외에도 중동의 주베일 항만 공사에서 바다에 설치할 구조물을 육지, 그것도 한국에서 만든 다음 이것을 배로 실어와 바다 속에 설치하는 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것들도 이에 해당한다.

사실 과거의 관습적 사고에 얽매이면 새로운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 이에 얽매이지 않아야 새로운 방법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정주영 회장은 ‘관습의 속박’에서 아주 자유로웠던 특별한 기업가이다. 정주영 회장이 자주 인용하는 다음의 사례는 왜 관습적 사고에 얽매이면 특별한 아이디어가 아닌 경우에도 떠올리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매우 시사적으로 보여준다.

“주베일 공사를 진행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콘크리트로 만드는 스타비트가 16만개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하루에 200개씩 800일이 걸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현장에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레미콘 트럭에서 직접 거푸집으로 콘크리트를 부어넣은 게 아니라 트랙에서 크레인 버킷으로 일단 큰크리트를 쏟아낸 다음에 이것을 다시 거푸집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두 단계면 될 일을 세 단계에 걸쳐서 하니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리는 것입니다. 왜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하느냐고 물으니, 레미콘 트럭의 배출구 높이와 거푸집 높이가 안 맞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고정관념입니다. 나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그들의 모습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레미콘 트럭의 배출구를 개조해서 높이를 거푸집에 맞추는 것은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그런데 레미콘 트럭은 완제품으로 나오는 것이니 아무도 개조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장 배출구를 개조하라고 불호령을 내렸고, 그 이후 스타비트 생산량이 200개에서 350개로 대폭 늘어났습니다.”(정주영 경영을 말하다, 79-80)

그는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방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꼭 하고 싶은 일, 꼭 해야만 하는 동기가 충만한 일을 생각한다면,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의 씨앗을 키우고, 자주자주 생각하고, 또 많이 보고 듣는 자세를 견지하면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산간척지 물막이 공사에서, 스웨덴 사례를 듣고 곧바로 폐선을 이용하는 것으로 응용해냄. (이근미) ‘learning by doing'을 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learning by learning'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learning by learning'이란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에 접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합쳐져 또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되는 과정을 지칭한다.

그는 언제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더 빨리’ ‘더 훌륭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습관적으로 ‘기민하게’ 암중모색하고 있었다. 일본 자동차업체에서 우리나라 정부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는 사실로부터도 자동차사업이 우리나라 사업가가 하더라도 충분히 사업성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빠르게 간파할 수 있는 ‘기민성’(alertness)을 가지고 있었다.

공식교육은 자칫 고정관념의 포로가 되게 하고 현장을 경시할 위험이 있다는 점도 정주영 회장은 강조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기업가정신의 발휘에서 학력 자체는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식적 학교 공부가 고정관념의 포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정주영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더 이윤기회를 발견하는 기민한 기업가적 면모를 가지고 있다. 다만 커츠너 식의 기민한 기업가정신과 불확실성의 감당을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띤다.

즉, 그는 실제로 해봄으로써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고, 심지어 그것이 손실로 귀결되더라도 단지 그 사업에만 국한해보면 실패로 보일지 모르지만 좀 더 긴 시각으로 보면 실패가 아니라 실수에 불과하며 여러 번 비슷한 실수를 하거나 더 큰 규모로 하지 않도록 해준다는 의미에서 시련에 불과하며 다른 일을 할 때 좋은 자산이 된다고 보았다.

커츠너와는 달리 확실한 이윤기회가 존재한다고 보기 보다는 불확실성을 감당하며 시도하는 행동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남들보다 더 빨리, 더 훌륭하게 할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은 마침내 그 방법, 즉 따라야 할 더 나은 ‘규칙’을 찾아내지만 그런 시도가 없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런 방법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끊임없이 그런 규칙을 탐색해왔다는 것을 뜻한다.

정주영 회장은 2종 오류(지나친 비관의 오류)에 갇히면 조그만 손실을 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결코 큰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남들이 비관적인 습성으로 인해 보지 못하는 그러나 ‘불확실한’ 이윤기회를 찾아내는 데 뛰어났다.

불확실성의 감당과 지나친 비관의 오류 극복

우리가 앞에서 정주영 회장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슘페터형 기업가로 유형화했지만 똑 같은 정주영 회장의 행동을 두고 불확실성의 감당하는 기업가로 유형화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프랭크 나이트는 기업가를 ‘어깨 위에 불확실성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경영학의 대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도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기업 경영에 대해 학식이 풍부한 당신은 왜 직접 사업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정주영 회장이 지닌 배짱(gut)을 자신은 지니지 못해서 사업을 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무도 심지어 정부의 관료들조차 ‘안 된다’고 했을 때, 조선공업을 시작했으며, 동생과 결별하면서까지 중동 건설 시장에 진출해서 주베일 항만 공사를 성공시켜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왔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 자신의 입장에서는 이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면 보이는 사업기회이다. 자신은 결코 무모한 사람이 아니며 나름대로 매우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으며 단지 고정관념으로부터 보기 때문에 무모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의 트레이드마크인 “이봐 해봤어”는 그래서 불확실성을 감당하면서 도전하라는 메시지라기보다는 고정관념에 빠져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경계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고정관념에 빠진’ 제3자의 눈으로 볼 때 ‘불확실성의 감당’을 통해 남들이 비관적으로 보고 시도하지 않는 것들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렇게 해서 성공을 보여줌으로써 남들도 지나친 비관의 오류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오일 쇼크 후 오일달러가 넘치는 중동건설 현장에 가서 주베일항만 공사 계약을 성사시키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혁신적 방법으로 공사를 해냄으로써 우리나라의 다른 건설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그런 일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 계동 사옥 집무실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진=뉴시스(정주영 사이버박물관 제공)

자본의 소유와 기업가정신: 신용 또 하나의 자본

정주영 회장은 또한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신용은 목숨보다 소중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소년은 더 빨리 배달하기 위해 자전거 타기를 밤에 연습하고 회계장부를 정리하고 곡물들을 분류해서 잘 쌓아놓은 등 쌀가게 주인의 신임을 얻음으로써 그 쌀가게 주인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정주영에게 쌀가게를 넘겨준다.

물론 아직 신용이 쌓이기 이전에는 사업에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은 결국 자신의 노동력과 근검을 통해 축적한 저축에 국한된다. 그러나 신용이 쌓이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는 고령교 공사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도 계약대로 해냈다. 그는 이 공사로부터 장비의 중요성,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계약의 중요성 등을 배웠다고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친척들의 집까지 팔아가면서도 그는 고령교 공사를 손해를 무릅쓰고 마쳤다. 그 덕분에 나중에 한강교 복구공사를 현대건설이 맡게 된다. 그는 성공하는 데 자본이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니며 신용을 쌓아놓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말은 기업가정신의 핵심을 불확실성의 최종적 부담, 혹은 최종책임의 부담으로 보고 자본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최종적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다는 점에서 자본의 소유를 기업가정신으로부터 분리할 수 없다는 이론을 검토하게 한다. 물론 그는 신용을 쌓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으며 좋은 평판을 쌓아나가야 비로소 신용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무튼 자본을 소유하지 않은 채 시작하더라도 기업가정신의 발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쌓은 신용, 평판 자체가 하나의 자본

말하자면, 그렇게 쌓은 신용 자체가 일종의 자본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은행에 가서 담보 없이 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재산권으로 변환되는 현대자본주의 사회를 생각하면, 이런 정주영 회장 식의 논리는 가능하며 재산권을 강조하는 이론과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평판을 쌓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일단 평판이 쌓여 신용을 얻을 수 있게 되면, 그 자체가 일종의 자본이어서 그는 이미 자본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실패하면 평판이라는 자본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최종적 책임의 부담자가 될 수 있다.

결론

지금까지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살펴보았다. 그는 가끔 마치 오스트리아학파의 대가들인 미제스나 하이에크처럼 말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유치산업이론의 주창자들은 나중에 경쟁력을 가질 때까지 국내 산업을 해외경쟁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오스트리아학파는 기업가정신은 오직 시장에서의 실제 경쟁을 통해 함양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주영 회장은 놀랍게도 정확하게 이 점을 말하고 있다.

정주영 회장은 연설과 자서전 등에서 현대조선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지식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보통 그는 위험의 부담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는 단순히 배짱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정보에도 민감했으며 그런 정보를 얻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실제 행동을 해보지 않고서 고정된 선입견에 따라 사업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매우 경계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말, “이봐, 해봤어”는 불확실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미리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관습(Convention)에 갇힌 고정관념일 수 있으므로 관습의 포로가 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렇게 해야 단순히 배짱을 강조했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슘페터적 혁신은 미리 안 된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으로부터는 나오기 어렵다. 정주영 회장은 슘페터가 말하는 혁신, 즉 관습에 얽매인 것을 벗어남으로써 이윤기회를 발견하는 데 뛰어났다. 다른 사람이 인습적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를 돌파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이윤기회가 열린다는 의미이다.

정주영 회장의 적극적 실천과 현장의 강조는 관습적 사고에 빠진 많은 이들의 지나친 비관의 오류를 극복하게 해서 우리나라 경제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기업가가 지나친 낙관의 오류를 범하게 되면, 이윤을 낼 수 없는 사업에 뛰어드는 오류를 범한다.

지나친 낙관의 오류는 손실을 봄으로써 사후적으로 오류였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반대로 지나친 비관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 기업가들은 성공할 수 있는 사업에도 뛰어들지 않는다. 그럴 경우 장부상으로는 손실이 나타나지 않지만, 경제학적으로 그 사업기회는 활용되지 않은 채 영원히 묻히게 된다.

정주영 회장은 대다수 사람들이 실제로는 성공할 수 있음에도 반대한 사업들에 뛰어들어 성공을 일군 것으로 유명하다. 조선업 진출을 비롯해서 중동 주베일 항만 공사 등이 모두 그런 사업들의 사례들이다. 그는 성공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친 비관의 오류를 드러냄으로써 이윤기회가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다른 기업가들로 하여금 이제 그런 일에 뛰어들게 한 것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제5차 기업가연구회에서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회장의 기업가 정신에 대해 다뤘다. 이 글은 정주영 회장에 대한 발표를 담당한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이 발표한 내용이다)